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살아가기
글쓰기를 통해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세 권의 책
정여울
작가
타인이 겪는 고통의 원인이나 의미를 손쉽게 판단하는 사람들, 타인의 아픔을 목격하고도 모른 척하는 사람들, ‘고통’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고통은 아주 작은 것마저도 과도하게 의미 부여하면서도, 타인의 고통 앞에서는 ‘내가 저런 상황이 아니어서 참 다행이다’, 또는 ‘저런 끔찍한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무감각한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더욱더 어둡고 비참해질 위험에 처한다. 이번에 소개하는 책들은 바로 이런 골치 아픈 타인의 고통을 결코 머나먼 다른 세계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이 시간을 살아가는 나의 문제, 우리의 문제’로 직면하는 작품들이다.
『사람을 목격한 사람』
고통받는 타인의 아픔에 직접 화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아픈 깨달음
그 첫 번째 자리에 고병권의 산문집 『사람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 『사람을 목격한 사람』(사계절, 2023)은 노들장애인야학의 철학 교사이자, 스무 해 넘도록 앎과 삶의 일치를 위해 노력해온 사람, 고병권의 따스하고도 명철한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집이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그가 쓴 글과 투쟁 현장 등에서 행한 연대 발언을 모은 산문집인데, 묶어놓고 보니 온통 ‘고통받고 있는 타인들’의 이야기이며, 그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던 아픔들의 모음집이 되었다. 즉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 사람들, 장애인, 이주민, 아픈 사람, 비인간 동물에 관한 이야기다. 시설에 갇힌 중증 장애인, 사냥당하듯 내쫓긴 불법 체류자, 아이를 살해하고 자살을 기도하는 부모, 아픈 몸을 미안해하게 만들고 변명하게 만들고야마는 이 사회에서 고병권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두 번째 사람의 자리에 선다. 첫 번째 사람은 고통받는 사람이고, 두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의 통곡 소리를 듣고 시뻘개진 눈알을 목격한 사람을 말한다. 즉 두 번째 사람이 선 자리는 첫 번째 사람, 즉 고통받는 타인이 도와달라고 소리칠 때 그 옷소매가 잡히는 자리, 즉 언제든지 타인을 도와줄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자리, 즉 고통받는 사람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자리들을 선호한다. 자꾸만 도망치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 수많은 아픈 사람들은 혼자서 운다는 것. 고병권의 이 아픈 깨달음 때문에 나 또한 부끄럽지 않을 수 없었다. 부디 두 번째 사람, 즉 고통받는 타인의 아픔에 직접 화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아픈 깨달음이 우리를 울리는 아름다운 책이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
사진을 찍거나 문장을 쓸 때마다 고통받는 당사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사려 깊은 글쓰기
김인정의 『고통 구경하는 사회』는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라는 문제에 천착한다. 이태원 참사, 세월호 참사를 비롯한 수많은 참사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그저 머나먼 다른 세계의 이야기’로 격리해버리는 권력의 횡포에 분노해왔지만, 여전히 참사를 목격한 사진을 찍으면서 정작 참사의 피해자를 돕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참사를 목격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면 분명 참사 피해자들을 직접 도울 수도 있는 사람들인데도, 많은 사람들은 아파하는 타인을 돕기보다는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자신의 SNS나 유튜브 방문자 수를 늘릴 생각을 한다. 오랫동안 타인의 아픔을 카메라에 담거나 글로 써온 기자 출신의 작가 김인정은 단지 보도의 윤리를 넘어 글쓰기의 윤리, 사람이라는 존재의 책임, 현장을 목격한 사람의 책임을 끝까지 지기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녀의 글은 그동안 벙어리 냉가슴 앓으며 부당한 일이 있어도 차마 용기 내어 소리치지 못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믿지 못하는 대중보다도 범죄의 무게에 걸맞지 않게 가벼운 처벌을 일삼는 사법부가 더 큰 문제여서다.” “흔한 사고일수록, 어디서나 보이는 사고일수록 그 고통을 보는 일에 능숙해지고, 주기적으로 비슷한 소식을 들은 나머지 거의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결국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되지 않는다는 패러독스에 빠진다.” ‘이런 끔찍한 일은 언제 어디서나 아주 흔하게 일어난다’는 안이한 생각 때문에, 개인이 홀로 참아야 하는 참사는 늘어만 가고, 최소한의 인권과 안전할 권리마저 보장받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산업재해라는 이름으로 죽어간다. 그렇게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편가르기식 화법은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그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궁극적인 목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고통받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이며, 사진을 찍거나 문장을 쓸 때마다 고통받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사려 깊은 글쓰기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독자의 가슴에 따스한 공감의 횃불을 지핀다. 타인의 고통을 ‘그들만의 세계’로 축소하지 않고 ‘우리 모두의 문제’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사회는 비로소 희망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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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고통’조차도 끝내 보이게 하는 글쓰기
김승섭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는 오랫동안 타인의 고통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일을 해왔던 지은이가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공감의 세계로 이행하지 못하게 만드는 힘들을 지적하고 그 속에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삶을 실천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타인의 고통을 단지 공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고통’조차도 끝내 보이게 하는 글쓰기야말로 김승섭 교수가 오랫동안 해온 연구의 핵심이다. 참사나 차별로 고통받는 피해자에게 ‘기프티콘’을 주더라도 그 속에 ‘피해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을 때 정작 당사자는 사용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이렇듯 누군가를 도우려는 노력이 오히려 누군가의 피해자로서의 현실을 ‘아웃팅’하는 부작용이 있기에, 고통을 치유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마치 살얼음판 위를 걷듯 조심스럽게 고통의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노동하는 모든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야말로 김승섭 교수가 꿈꾸는 이상이다. 서지현 검사는 “피해자야말로 행복해져야 할 사람”이라고 말하며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전형적인 피해자다움을 거부한다. 바로 그 ‘행복해져야 할 사람’이라는 표현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어떤 피해자도 ‘피해자다움’이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정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그 어떤 피해자도 결코 ‘혼자 우는 사람’이 되어 고립되지 않을 때까지, 작가는 마지막까지 고통의 복잡하고 쓰라린 얼굴을 외면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피해자가 끝내 웃는 날까지, 피해자가 끝내 행복해질 수 있는 그 순간까지.
정여울
KBS라디오 <정여울의 도서관> 진행자.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살롱드뮤즈> 연재.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진행자.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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