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열과 차별을 넘어서는 불교의 불성 | B에게 보내는 여섯 편지

불교의 평등과
장자의 제물

정세근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친애하는 B에게 :

우열과 차별을 넘어서는 불교의 불성
어느덧 한 해가 되었구려. 이제 나의 편지도 마무리할 때요. ‘무아와 불성’, ‘깨달음과 수행’, ‘무위의 뜻’, ‘자유와 소요’라는 글을 보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마지막으로 ‘평등과 제물’이라는 주제로 편지를 쓸 때가 되었소.

B여, 나는 철학이 종교를 버리는 것이 이상하오. 젊은 시절의 나도 철학은 종교적 믿음과는 다른 이성적 추론이자 합리적 판단이라는 생각을 했소. 그러나 철학을 하면 할수록, 철학도 ‘세계를 보는 틀’을 넘어 ‘믿음의 체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오. 그렇다면 철학과 종교는 그것이 초월적인 맹목을 강요하지 않는 한, 함께할 수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소. 특히 인도에서 발생한 적지 않은 무신론적 종교를 보면서 확신이 생겼소. 불교도 그런 전통 속에서 발현할 수 있었다는 것이오. 비록 인도철학사에서는 그런 무신론적 전통을 신이 있는 『베다』와 같은 정통이 아닌 별종으로 취급하는 바람에, 불교가 안타깝게도 이단(heretic)으로 분류되지만 말이요.

심리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에게는 자연의 물리적 질서가 불완전한 질서라고 볼 권리도, 영적 질서로 이 불완전한 질서를 보완할 권리’도 있다면서 그래서 삶이 살 만하다고 말하오. 그의 이러한 관점은 ‘믿을 의지(The will to believe, 1896)’를 내세운 것이지요. 그런데 많은 동양 사상은 자연이 본디 무질서했고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질서로울 뿐이라고 가르치고 있소. 당연히 자연은 본래 무질서하다는 것이오. 따라서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영적인 존재도 굳이 필요하지 않다오.

불교는 모든 사태를 연기의 과정으로 보아 질서보다는 계기, 계획보다는 우연, 운명보다는 윤리를 내세운다오. 업의 이론이 철저하게 도덕적인 까닭이 여기에 있소. 모두 나와 내 주변에서 벌인 행위의 결과이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오. 주어진 직업(職業)이나 직분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느냐는 행업(行業)이나 행위가 중요하다는 것이오. 신이 준 질서 따위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했고, 하며, 해야 하는지에 삶을 걸라는 것이오. 기존의 브라만교의 카르마 이론과는 다른 접근이었소.

B여, 삶에서 꼭 지녀야 하는 생각이 무엇이겠소? 제1 원리라 해도 되고, 자연법이라 해도 좋고, 신의 뜻이라고 해도 좋소. 우리가 말을 하고, 말로 이것저것을 나누고, 말로 나눈 것에 좋고 나쁨을 붙이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오? 구별은 곧 우열로 나뉘고, 우열은 곧 차별로 이어진다는 생각은 안 해보았소?

그것을 넘어서려고 불교에서는 불성을 말하오. 너나 나나 불성이 있고, 하다못해 마소에도 불성이 있다면 우리는 삶 앞에서, 아니, 죽음 앞에서 평등하지 않을 수 없소. 식자나 촌부나 모두 불성이 있다면, 주인에게도 노예에게도 불성이 있다면 우리는 평등하오. 그리고 그 불성은 고정된 ‘자성’이 아니라 언제나 깨달음과 수행을 통해 바뀔 수 있는 것으로 ‘무자성(無自性)’이오. 내가 늘 불교를 접할 때 무아를 말하고, 무아가 자성이 아닌 무자성임을 내세우는 까닭이 여기에 있소. 우리가 사람의 가능성, 인격의 변화성, 시간의 가소성을 내팽개치는 순간, 우리는 무지막지한 (운명)결정론자가 되고 만다오. 깨우침, 뉘우침, 만들어짐을 말하는 것이야말로 붓다가 말하는 대자대비한 수양(공부)론이란 말이오.

평등을 말하는 장자의 「제물론」
이런 평등론을 자기의 언어로 선언한 철학자가 장자(莊子)라오. 『장자』의 첫 번째 편이 자유를 말하는 「소요유」였다면, 두 번째 편이 평등을 말하는 「제물론(齊物論)」이요. 여기서 제(齊) 자는 상형문자(오른쪽 그림)에서 보듯 보리밭에 인위적인 시각으로 두 줄을 그은 것이오. 보리가 모두 다르게 자라지만, 크게 보면 수평의 물결처럼 보인다는 점에 착안한 글자지요. 사람이 다 다르지만 멀리서 보면 모두 고만고만함을 가리키오. 우리가, 우리의 삶이 바로 그렇소.

장자는 제물을 말하면서 옳고 그름을 넘어서기, 처음과 끝을 하나로 보기, 너와 나 없기, 이것 때문에 저것이 나오고 저것 때문에 이것이 나옴을 보여주오. 그렇게 보니 ‘천지가 한 손가락이고, 만물이 한 마리 말(天地一指, 萬物一馬)’이 될 수 있는 것이오. 나아가, 우리가 잘 아는 ‘조삼모사(朝三暮四)’도 아침에 셋이나 저녁에 넷이나 그게 그건데 아침에 네 개를 주면 좋아하는 원숭이를 통해 우리 인식의 같잖음을 보여주는 것이잖소.

장자는 말하오. 털 하나도 크게 보면 큰 것이요, 높은 뫼도 작게 보면 작은 것이라고. 진리가 번쩍거리면 진리가 아니요, 큰 사랑은 사랑 같지 않은 것이라고. 그리하여 천지는 나와 함께 태어나고, 만물은 나와 하나라고.

청말 국수주의자이면서도 혁명론자였던 장태염은 맹자보다는 순자를 높여 제대로 된 사회를 건설하자고 나섰소. 그때 그가 평등의 이념을 「제물론」에서 찾고, 그것을 불교 유식론으로 풀면서 자기의 사상을 정립하오. 그것이 『제물론석정(齊物論釋定)』이라는 평등과 혁명의 지침이었소.

기독교에서는 신 앞에서 평등을 내세우지만 일단 한 계단만큼은 결코 넘어설 수 없고, 넘어서서도 안 되오. 그러나 불교의 평등은 다르마 앞에서 평등이기 때문에 우리는 불법(佛法)이나 법륜(法輪) 앞에서 절대적으로 평등하오. 불교가 카르마보다는 다르마의 종교인 까닭이오. 법신(法身)은 정법(正法)으로 보신(報身)이나 응신(應身)보다 중요하다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신이 신의 성육신(成肉身; the Incarnation)인 예수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오.

불교는 평등의 종교
B여, 잊지 마시오. 자연에 강약은 있지만 귀천은 없소. 우열이란 표현은 귀천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서 조심해야 하오. 노루가 사자에게 잡힌다고 해서 사자는 귀하고 노루는 천하오? 아닐 것이오. 개구리가 뱀에게 먹힌다고 해서 개구리는 천하고 뱀은 귀하오? 아닐 것이오. 사람은 사람마다의 장단점이 있을 것이오. 세상일 혼자 다 못하니, 이 일은 이 사람이, 저 일은 저 사람이 해주어야 세상이 돌아갈 수 있을 것이오. 하다못해, 노자가 말하듯 ‘못난 놈이 있으니 잘난 척할 수 있는 것’(못난 사람은 잘난 사람의 바탕)이라오.

불교의 위대함은 누가 뭐래도 나는 그것의 평등사상에 있다고 보오. 평등으로 가기 위해 불교는 무아를 말하고 연기를 말한다오. 내가 없는데(‘무아’) 무슨 잘남과 못남이 있냐는 것이고, 나라는 것이 이것저것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니(‘연기’) 좋은 만남도 나쁜 만남도 모두 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오.

일본의 뵤도인(평등원 平等院)은 ‘극락이 의심스러운가, 그러면 이 절에 가보라’라는 자신만만한 표어로 불자를 부르고 있소. 이곳은 이름에서 평등이라는 극점을 제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명소가 아닐 수 없소. 평등을 모르고 불교를 말하지 말 것이오.

B여, 평등이 어렵소? 아니오. 우리 모두 생로병사에서 조금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람의 고만고만함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오. 이 관점에서 바라보면 인류의 평등에 바탕을 두는 사해동포주의와 더불어 삼라만상에 대한 온갖 애정도 가질 수 있을 것이오. 절에서 범종만이 아니라 운판(雲板)을 두드리고 어고(魚鼓)를 울리면서 구름과 물고기를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소.

B여, 불교와 기독교라는 이름에 들어가 있는 부처와 그리스도라는 고유명사를 빼고 그것을 말한다면,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이고 불교는 평등의 종교라고 말하고 싶소. 불교는 다름 아닌 평등교라오. 계급 종교인 힌두교 곧 브라만교에 대항해 종교개혁을 이룬 종교가 불교라오. 한 번 차별은 영원한 차별이기에, 단 한 번의 차별을 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정신이 불교에 고스란히 담겨 있소. 내가 살고 싶듯 나 아닌 모든 것도 살리는 종교가 바로 불교라오.

B가 평등의 혁명을 이루는 날을 고대하겠소. 「제물론」의 마지막에 내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의 꿈에서 내가 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한 것처럼 A가 B가 되고, A와 B 모두 나 아닌 꽃이 되는 날을 꿈꿔봅시다.

● 이번 호를 끝으로 <B에게 보내는 여섯 편지> 연재를 마칩니다.

정세근
국립대만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북대 철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사)한국철학회 제53대 회장, 국가미래교육을 위한 전국철학회연석회의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노장철학과 현대사상』, 『윤회와 반윤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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