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도량참법』
원빈 스님
송덕사 주지, 행복문화연구소 소장
‘혐오 사회’의 근본, 원결(怨結)
‘혐오 사회’의 씨앗은 원결(원한으로 묶인 관계)입니다. 이 씨앗이 꽃 핀 것이 바로 혐오이고, 열매는 지옥입니다. 『자비도량참법(慈悲道場懺法)』에서는 아귀와 축생 그리고 지옥이라는 삼악도(三惡道)가 만들어진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업[탐진치(貪瞋癡)]을 지으면 삼악도의 과보를 받게 되고, 삼악도가 있게 된 것은 탐심, 진심, 치심의 삼독이 있는 탓입니다. 세 가지 악으로 항상 불타게 되니 입으로 악을 말하고, 마음으로 악을 생각하고, 몸으로 악을 행합니다.”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이 불타는 듯하게 만드는 혐오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영락없이 지옥에 갇혀버릴 것이니 경각심을 가지고 참회법을 배워야 합니다.
서로 아끼고 존중해야 마땅한 관계의 어그러짐
원한 맺기 가장 쉬운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요? 첫째는 가족이고, 둘째는 스승과 제자, 셋째는 친구와 동료 관계입니다. 원결 그리고 혐오가 무서운 이유는 가깝게 지내는 소중한 관계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혹시 원수가 친하지 않은 관계나, 자주 만나지 않는 먼 존재와의 관계라고 생각하시나요?
“육친과 일체 권속 모두가 우리의 삼세 원한의 근본이니, 원한의 대상은 다 친한 데서 생깁니다. 만일 가까이함이 없다면 원수처럼 여기는 일도 없을 것이니, 친한 이를 여의면 곧 원수를 여읠 것입니다.”
『자비도량참법』에서 언급하는 원결이 맺히는 조건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마음을 물들이고 있는 삼독심입니다. 둘째, 삼독심의 작용으로 타인을 간섭하고 방해하며 조종하려고 드는 태도입니다. 셋째, 친하게 지내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입니다.
가족, 사제, 친구 관계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인연 아닌가요? 이 관계가 고통스러운 이유 중 하나는 괴리감(乖離感)입니다. 예를 들면 가족 간에는 일반적으로 이중적인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이를 한마디로 ‘애증’이라고 표현하는데, 혈연이라는 관계와 은혜로운 관계 때문에 분명 아끼는 마음이 있지만, 반대로 해결하지 못한 증오의 감정도 있기에 괴롭습니다. ‘가족이면 마땅히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라는 양심이 괴로움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사제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제 관계의 끝은 원결이 은결을 앞설 때, 더 이상 스승을 존경하지 않을 때, 그때입니다. 끝이 왔다는 것은 은결보다 원결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내 정신을 새롭게 태어나도록 해주신 스승에게 도대체 왜 원결이 생길까요?
“조종하려고 들면 원수 된다!”
관계에 대한 제1 원칙으로 제가 강조하는 문장입니다. 스승의 조언이 처음에는 분명 조언으로 들릴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자의 마음가짐이 올바르지 못할 때의 조언은 잔소리, 참견으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이 마음이 해결되지 못하고 쌓이면 자신을 조종하려고 드는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원한이 쌓여 혐오를 비롯한 삼독심으로 부패하고, 결국 사제 관계가 지옥처럼 변하는 것입니다.
간절한 참회로 혐오를 극복하는 길
진정으로 참회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각회단정(覺悔斷淨)’의 단계를 갖추어 참회해야 합니다. ‘각회단정’의 1단계 참회는 자각(自覺)입니다. 분명하게 느끼고, 공감하며, 알아야만 악업을 참회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2단계 참회는 후회(後悔)입니다. 악업으로 인해 삼독심이 강해지고 이에 따라 원결을 맺고 해결하지 못한다면, 분명히 고통스러운 과보를 경험하게 된다는 점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자비도량참법』 내용 중에 ‘현과보(顯果報)’와 ‘출지옥(出地獄)’ 부분에서 고통스럽게 과보받는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는 이유는 바로 이 후회의 마음을 끌어내기 위해서입니다. 3단계 참회는 결단(決斷)입니다. 죄가 있고 이에 대해 벌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 사로잡혀 멈추면 안 됩니다. 정말 후회된다면, 그 악행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 실천해야 합니다. 이 결단하는 참회가 바로 변화하는 삶의 시작입니다. 4단계 참회는 정화(淨化)입니다.
‘한마음 돌이키면 모든 죄가 사라진다?’
‘신이 모든 죄를 사하셨다?’
이는 중생의 마음속 도둑놈 심보를 자극하는 홍보 문구입니다. 속지 마세요. 악업을 저질렀다면 책임져야 합니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하고, 죄를 지었으면 벌 받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참회와 회개를 ‘도둑놈 심보’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정화는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 악업의 결과를 기꺼이 책임지는 과정입니다.
『자비도량참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으며 참회 의식을 행하면 최소한 열댓 시간이 걸리는 대참(大懺)입니다. 전통적으로 한국 불교에서는 1년에 한 번 의식을 행하는데, 먼저 일정 기간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생활하며 삼업(三業)을 청정히 하는 준비 기간을 갖습니다. 다음으로 청정해진 대중이 모여 다양한 꽃과 과일, 쌀과 재물, 가사와 경전 등을 정성스럽게 준비해 부처님께 공양 올립니다. 본격적으로 의식을 시작하면 『자비도량참법』에서 안내하는 내용에 따라 보리심을 일으켜 마음에 ‘자비도량(慈悲道場)’을 건립합니다. 이후 ‘각회단정’의 마음으로 간절하게 오체투지하며 참회합니다.
정성과 노력 그리고 땀과 눈물을 바탕으로 죄책감을 씻어내고 원결을 풀고 은결로 살아가기를 발원하며, 마음속에 자비도량이라는 보리심을 확고하게 건립해 성불인연(成佛因緣)으로 나아가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지성으로 다 같이 태산이 무너지듯 간절하게 오체투지하고 참회하여 모든 죄업이 소멸되기를 발원합니다.”
『자비도량참법』에서 반복되는 이 정형구가 알려주는 진실은 단 하나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속여도 자신의 양심은 속일 수 없다!’
자기 자신의 양심을 설득하는 것은 오직 올바른 방법으로 정직하게 피땀 흘리는 노력뿐입니다. 소중한 관계를 지키기 위해 『자비도량참법』으로 수행하기를 권선합니다.
원빈 스님
해인사에서 출가했다.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행복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경남 산청에 있는 송덕사의 주지를 맡고 있다. 저서에 『원빈 스님의 금강경에 물들다』, 『굿바이, 분노』 등이 있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