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 불국토 세상,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

하늘에서 본 우리 땅 우리 절

경주 토함산 불국사와 석굴암


태백산맥 남단에 자리한 경주 토함산은 산 전체가 그대로 불교의 성지를 이루고 있다. 산 서남쪽 기슭에는 천 년 고찰 불국사가 자리하고 있고 정상 부근에는 불교문화의 정수로 일컬어지는 석굴암이 있다.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때인 751년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왕명으로 창건하기 시작해 774년 그가 사망하자, 나라에서 이를 맡아 완공했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불국사고금창기』에 의하면, “이차돈이 순교한 다음 해인 법흥왕 15년(528년)에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 부인의 발원으로 창건했고, 진흥왕 35년(574년)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 부인이 절을 중건하면서 아미타부처님을 봉안했다”고 한다. 이후 경덕왕 10년(751년) 김대성에 의해 중수되면서 석탑과 다리 등을 만드는 등 대찰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석등과 석가탑, 다보탑이 있고, 앞쪽에 범영루와 좌경루가 좌우대칭이 되어 팽팽한 긴장감을 준다. 꽤 넓은 대웅전 앞 공간이 활기를 잃지 않는 것은 이런 석조물들이 계획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까닭이다.

불국사가 번창했던 8세기는 신라의 국력과 문화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 분황사 약사상이나 성덕대왕신종과 같은 위대한 예술품들이 만들어진 때이기도 하다. 불국사는 이 최고의 시기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하지만 불국사도 임진왜란은 피하지 못했다. 왜란 중인 1593년, 사찰 내에 감추어진 무기를 발견한 왜군들이 불을 지르면서 일부를 제외한 건물들이 불타버렸다. 이후 1604년부터 한 세기 동안 꾸준히 중건해 1700년대에 비로소 가람의 형태를 다시 갖추었다. 근대기에는 1973년에 대대적인 복원 공사가 이루어졌다.
불국사는 대웅전 경내에 들어서면 불교사상과 예술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국보 제21호인 석가탑과 국보 제20호인 다보탑이 시선을 끈다. 두 탑은 서로 형태가 다르나 주변 분위기와 서로 어우러지며 경내를 불국토 세상으로 만들고 있다.

대웅전, 극락전, 자하문, 안양문 등을 중수하고, 범영루, 무설전, 비로전, 관음전 등을 옛터에 새로이 복원했다. 불국사는 대웅전, 극락전, 비로전, 관음전 권역 등 크게 4개의 독립된 영역들로 이루어진 종합 가람이다. 각 권역은 각기 다른 신앙 체계를 위한 독립된 불국토를 상징하는데, 교리적 구별을 위해 회랑이나 담장으로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지었다.
국보 제24호인 석굴암은 자연석을 다듬어 돔을 쌓은 위에 흙을 덮어 굴처럼 보이게 한 석굴 사원으로, 전실의 네모난 공간과 원형의 주실로 나뉘어 있다. 석굴 사원이긴 하지만 사찰 건축이 갖는 격식을 상징적으로 다 갖추어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었다.

불국사에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정상 부근에 국보 제24호 석굴암이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석굴암의 원래 이름은 석불사이다. 1910년경부터 일본인들이 석불사 대신 현재의 석굴암(石窟庵)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삼국유사』를 보면, 불국사와 마찬가지로 김대성이 왕명에 따라 착공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석굴암 또한 김대성 생전에 완공을 보지 못해 그 조성 사업은 불국사와 더불어 국가가 완성했다. 이처럼 불국사나 석굴암은 왕실을 비롯한 당시 신라인 모두가 불국토 구현을 염원한 일대 불사(佛事)였다.
경주시 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이 강물이 휘돌아가는 강마을이라면 양동마을은 산을 의지한 산마을이다. 양동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두 씨족이 세거해온 집성촌이다.

신라인들의 신앙심과 예술적 수준을 보여주며 세계적인 걸작으로 한국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석굴암에는 굴 가운데 높이 3.48m의 본존불인 여래좌상이 모셔져 있고, 전실과 굴 입구 좌우벽에는 팔부신장, 인왕 및 사천왕 등의 입상이 부조되어 있으며, 본존불 둘레에는 천부입상, 보살입상, 나한입상, 11면 관세음보살입상을 모셔놓았다. 그리고 천장 주위에는 10개의 감실을 두었다.

석굴암의 방위는 신라 김씨 왕족의 공동 묘역인 신라의 동해구(東海口)와 일치하고 있다. 동해구란,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해중릉, 즉 대왕암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을 말한다. 동해의 용이 되어 죽어서까지도 국가 수호를 다하고자 했던 문무왕의 호국사상은 동해구의 유적인 해중릉을 비롯해 감은사나 이견대(利見臺), 그리고 석굴암과 동해구와의 관계 등에서 같은 맥락으로 파악될 수 있다. 석굴암 대불의 시선이 동해구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볼 때 불국사와 석불사(석굴암) 건축은 감은사와 이견대와 더불어 범국가적 프로젝트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호국의 염원이 담긴 불국사와 석굴암은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오늘도 불자는 물론이고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글|이민(자유기고가), 사진|신병문(다큐멘터리 항공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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