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약을 위해
위대한 포기를
해본 적이 있는가
사문유관상도(四門遊觀相圖)
자현 스님
중앙승가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부처님 출가의 의미가 담긴 사문유관
나는 붓다의 생애에서 가장 위대한 점을 ‘체계적인 교육’으로 본다. 붓다는 왕궁에서 무술·어학·통치술의 세 가지를 학습했다. 이는 각각 강한 체력에 의한 혹독한 고행, 다양한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현장에 맞는 교화 능력. 그리고 교단의 효율적인 통제와 발전으로 연결된다.
그런데 팔상도는 <도솔내의상도>에 의한 탄생 이후, 곧장 출가와 관련된 사문유관으로 넘어간다. 이는 출가 수행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왕궁에 사신 것은 29년(혹 19년)이다. 사문유관은 이 중 마지막 해에 이루어진 사건이다. 즉 시간적인 차이가 크다는 말씀.
사문유관이란, 부처님이 가비라국 왕성의 네 문을 나가 세상의 고통을 사색한 사건으로 출가의 원인이 된다. 사건은 동쪽 문으로 나가서 노인을 보고, 남쪽 문으로 나가 병자를, 그리고 서쪽 문에서는 시신을 목도한 후 마지막 북쪽 문에서 출가자를 만나 해결의 실마리를 얻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부처님은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절친이었던 우다이의 안내를 받아 네 성문을 차례로 나간다. 우다이는 후일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아들을 보고 싶어한 아버지 정반왕의 요청으로 부처님을 가비라국으로 초청하는 특사의 역할을 한 분이기도 하다. 이 임무를 끝으로 우다이는 붓다의 제자가 되어 깨침을 증득한다. 배울 것이 있는 존경할 만한 친구를 가진 이의 성스럽고 아름다운 마침이다.
통도사 <사문유관상도>는 동북쪽에서 시작되어 시계 방향으로 회전한다.
① 동북쪽에는 동문을 나가 노인을 보는 붓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백발의 노인은 굴곡진 지팡이를 짚고, 굽은 허리를 한 모습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구불구불한 지팡이와 굽은 허리는 상호 반향을 이루며, 노인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는 ‘노인과 아이’를 대비해 늙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주름살 없이 팽팽한 노인의 얼굴이다. 여기에 더해서 얼굴에는 기미 등의 잡티마저 없다. 참으로 피부 관리를 잘한 노인이라 하겠다.
붓다는 중국식의 태자 복장을 하고 있는데, 그림의 오른쪽 위에는 태자를 일깨우기 위해 하늘의 신인 작병천자(作甁天子)가 노인으로 변신해, 늙음의 고통을 강렬하게 드러냈다고 적혀 있다. 태자는 이때 노인을 보고는 자신을 반조하며, 왕궁으로 돌아와 사색에 잠기게 된다.
작병천자는 조병천자(澡甁天子)라고도 한다. ‘병(甁)’, 즉 물병이 수행자를 상징하는 조관(澡罐), 즉 군지(軍持, kuṇḍkā)라는 점에서 ‘수행의 길을 인도하는 천신’ 정도의 뜻으로 파악된다. 『과거현재인과경』 같은 곳에서는 신들의 세계 중 최상층에 속하는 정거천(淨居天)이 변신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노인의 얼굴이 왜 그렇게 팽팽했는지를 알게 된다.
남문 그림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성문 편액(간판)에 ‘숭례문’이라고 쓰여 있다는 점이다. 숭례문은 지난 2008년 방화로 소실되며 전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한 바로 그 문이 아니던가! 그런데 인도의 부처님을 묘사한 그림에 조선의 숭례문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 아래에는 ‘이대문(离大門)’이라고 되어 있는데, 의미가 분명치 않다. 이(离)는 이(離)와 통하는 글자이므로, 출리(出離, 미혹의 세계에서 벗어남)나 이욕(離欲, 욕망에서 벗어남)에 따른 출가의 암시 정도로 이해된다.
남문의 그림에는 ‘옥에 티’가 있다. 수레를 끄는 세 필의 말 순서를 보면, 동문이나 서문에서는 흰말이 갈색 말의 사이에 위치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맨 위쪽에 있다. 옛 불교 화가인 금어(金魚)의 실수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차 앞에서 손을 모은 채 허리를 굽혀 태자께 보고하는 인물은 우다이다. 이러한 우다이의 모습은 서문의 그림에서도 확인된다. 그런데 우다이 관모의 복색이 조선 스타일이 아닌 중국풍이다. 팔상도라는 인도의 불교 스토리 위에, 숭례문의 조선과 중국풍이 가미된 다국적 그림이 완성되어 있는 것이다.
③ 서남쪽의 위에는 ‘서문(西門)’이라고 쓰여 있는데, 그 아래에는 판독이 어려워 ‘○○문’이라는 정도만이 확인될 뿐이다.
수레의 앞쪽에는 상여를 멘 모습으로 죽음이 표현되어 있다. 상여 앞에는 굴건에 참최복(최고의 상복)을 입은 상주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상주의 좌측 위에는 광주리에 술병과 참을 이고 있는 여성이 등장하고 있어 흥미롭다. 장지까지의 거리가 멀었던 조선 시대의 매장 문화에 따른 새참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④ 서북쪽에는 출가한 사문에게 예를 표하는 태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문은 언뜻 보면 지장보살의 형상으로 보이지만, 이때는 부처님께서도 깨닫기 이전이니 불교와 관련된 인물일 수는 없다. 이는 붓다 당시의 신흥 사상가이자 종교가인 슈라마나, 즉 사문을 표현한 것이다.
옆의 글(방기傍記)에는 앞의 조병천자와는 달리 정거천이 사문으로 변화해서 모습을 나타내었다고 되어 있다. 또 태자는 마차에서 내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막상 그림에는 백마 한 필만이 살펴진다. 이는 다음의 <유성출가상도>와 연결되는 태자의 애마인 건척을 나타낸 것이리라.
태자는 사문에게 ‘왜 출가했는지?’를 묻는다. 그러자 사문은 ‘마음을 평등하게 쓰며 세간에 물들지 않아 깨침을 구하는 것이 출가’라고 답해준다. 이 말을 듣고 태자는 삶과 죽음의 숙명적인 고통에서 벗어나는 해법의 가능성을 보고는 환희로운 마음에 오직 출가만을 생각했다고 쓰여 있다.
사문유관은 생로병사라는 유기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붓다의 출가 의미를 잘 나타내주는 상징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태자라는 고귀한 신분을 놓아버리는 도약의 정신을 만나게 된다. 서구에서는 출가를 ‘위대한 포기’라고 번역하는데, 매우 멋스럽고 맞춤하다.
당신은 도약을 위한 포기를 감행해본 적이 있는가? 버린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기쁨이란, 바로 그곳에 고이는 것인 것을….
자현 스님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율장), 동국대 미술사학과(건축), 고려대 철학과(선불교), 동국대 역사교육학과(한국 고대사), 동국대 국어교육학과(불교 교육), 동국대 미술학과(불화)에서 총 여섯 개의 박사 학위를 받았다. 60여 권의 저서와 180여 편의 학술진흥재단 등재지 논문을 수록했다. 현재 문화재청 동산분과 전문위원, 조계종 성보보존회 성보위원, 사)인문학과 명상연구소 이사장, 월정사 교무국장, 그리고 중앙승가대 불교학부 교수 등을 맡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헬로붓다TV’에서 강의하고 있다.
1 댓글
부처님의 사문유관 새로움으로 다가옵니다
답글삭제자세히봐야 더 이쁘다는 나태주 시가 공감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