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에 걸린 풍경(風磬) 같은 절, 봉화 청량사

하늘에서 본 아름다운 우리 절

봉화 청량산 청량사


봄은 늘 수상한 바람을 동반합니다. ‘꽃샘바람’이라 불리는 이 바람은 겨울과 봄이 갈마드는 이 계절의 ‘풍경(風磬)’입니다. 그 바람 소리에 보습은 기지개를 켜고, 고치 속 나비 애벌레는 우화(羽化)를 꿈꾸기 시작합니다. 풍경 소리는, 비록 ‘신성한 침묵’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 안주하지는 말라는 모든 옛부처님의 음성입니다.

가을 청량사 전경

청량사는 청량산에 걸린 풍경(風磬) 같은 절입니다. 옛 청량사는 33개의 전각이 들어찬 큰 절이었다 하나 굳이 그 흔적을 더듬어볼 일은 아닙니다. 청량산이 곧 청량사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랜 옛적 청량산의 이름은 ‘수산(水山)’이었는데 조선시대에 들어 금탑봉 아래에 자리 잡은 청량사가 널리 알려지면서 산 이름도 절 이름을 따라 바뀌었다고 합니다. 청량산 봉우리의 옛 이름은 보살봉, 의상봉, 반야봉, 문수봉, 원효봉 등이었습니다. 산 자체를 깨달음의 집으로 삼고 봉우리를 불보살의 현현으로 여겼던 곳이 청량사입니다.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 원효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오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청량산은 불가의 산입니다. 이런 산에 유가의 흔적이 드리운 것은 1544년(중종 39) 당시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청량산을 찾아 열두 봉우리 이름을 일부 고치고 새로 짓기도 하면서부터입니다. 하지만 그는 겉모습에 집착했을 뿐이고, 사무치게 청량산을 사랑한 이는 퇴계 이황이었습니다. 퇴계는 13세에 숙부를 따라 들어와 공부한 것을 시작으로 청량산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53세가 되던 해(1553년)부터는 ‘청량산인’이라는 호를 쓰기도 했습니다.


우리 땅 곳곳에 밝은 눈길을 남겼던 이중환이 청량산을 지나쳤을 리 없습니다.

“청량산은 태백산의 줄기가 들에 내렸다가 예안 강가에서 우뚝 맺혔다. 밖에서 바라보면 흙 멧부리 두어 송이뿐이지만 강을 건너 골 안으로 들어가면 사면이 석벽인데, 모두 만 길로 높아서 험하고 기이하기가 형용할 수 없다.”

청량산(870m)은 낙동강가에 바투 앉은 골산입니다. 골산이지만 첨봉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깊은 골짜기는 별유천지가 예 아닌가 싶게 만듭니다. 기반암인 역암(石歷岩)이 풍화해 벼랑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이중환이 말한 석벽이 그것입니다. 청량사는 그 석벽의 한 허리에 풍경처럼 걸린 절입니다.

고요(靜)에도 집착하지 않는 풍경 소리의 단단한 적막은 사자후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청량사에서는 그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사진│우태하(항공사진가), 글│윤제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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