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가, 배우 이연걸
불교와 명상으로 제2의 인생을 살다
문진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교수
이연걸(李漣杰). 1963년 중국 출생. 무술가이자 감독, 배우. 9세 때부터 베이징 무술 아카데미에서 무술을 연마했고, 무술 코치를 지냈다. 20세 때 무술시합에서 은퇴한 이후,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대표작으로 <소림사>, <황비홍> 시리즈, <방세옥>, <태극권>, <리쎌웨폰4> 등에 출연했다 |
영화 <황비홍>의 배우 이연걸은 최상의 실력을 갖춘 무술의 고수이면서 선한 미소년의 표정을 가진, 강함과 부드러움이 잘 어우러진 배우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10여 년 전부터 영화에서 보기가 쉽지 않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지난 10여 년 동안 병에 시달려 영화에 출연하기를 꺼린다고 했는데 사실은 이렇다. 이연걸이 영화 일을 많이 하지 않게 된 것은 그의 쇠약해진 몸 때문은 아니다. 명상 수행과 불교를 배우게 되면서 무술에 관한 그의 생각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에서 막강한 무술 실력으로 악인을 제압하는 것보다 영화 밖의 현실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이연걸은 영화 일보다 자선사업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63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이연걸은 홀어머니 밑에서 5남매 중 막내로 자랐다. 열 살 때 국가 대표에 선발되어 이듬해인 1974년에 중국 최고의 무술 대회에 출전 권법, 봉술, 검술 3개 부문을 석권해 대회 사상 최연소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워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 후 5년 연속 이 대회에서 우승했고, 이 5연패라는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이후 세계를 여행하며 무술 시범을 보이며 중국 문화를 알리는 일을 했다. 이러한 화려한 경력을 등에 업고 열여섯 살에 영화 <소림사>(1979년)로 영화계에 데뷔 할리우드에서도 그의 영화가 흥행하며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절제된 생활 습관과 끊임없는 훈련과 기술 연마로 그의 무술 연기는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고 평가되었다. 이처럼 그는 배우로서 수년 동안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허한 마음이 들었다. 이 공허한 마음을 불교의 가르침이 채워주었다고 이연걸은 말한다.
이후 그는 과격한 액션 장면을 자제하면서 영화 산업에서 서서히 멀어졌다. 대신에 자선사업과 대중 교육, 특히 명상과 불교에 관한 교육을 위해 세계를 여행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이연걸이 명상 수행에 입문한 것은 그가 아프기 훨씬 전인 30대 중반에 불법에 귀의할 때의 일이다. 불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에는 무술 연마와 영화 일에 바빠서 종교 생활을 거의 하지 못했으나 국제적인 스타가 되고 나서 오히려 공허해진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불법에 귀의했다고 말한다. 불교의 다르마(法)에 귀의하면서 물질이 주지 못하는 진정한 행복을 배우게 되었다고 말한다.
“저에게 1997년은 의미 있는 한 해였습니다. 저는 삶의 의미에 관해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왜 사는가? 삶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후 7년 동안 그의 마음속에서 점점 커져서 비로소 참다운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신체를 단련하기 위해 매일 매 순간 극기의 삶을 살았던 그는 30대 중반부터 영적인 문제에 심취하기 시작하면서 강한 신체를 갖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깨달았다. 그는 꾸준한 명상을 통해 마음의 두려움을 다룰 수 있었으며, 불교의 가르침을 통해 부와 명예를 좇는 그의 욕심이 헛된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지난 2003년 이연걸은 타이베이의 한 극장에서 1,500명이 넘는 대중에게 불교의 참뜻을 알리는 시간을 가졌다. 여기서 그는 불교의 지혜가 그로 하여금 부와 명성에 대한 집착과 속박을 끊도록 도와줬다고 말했다. “불교를 수행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저는 제 일에서 겪는 실패와 삶의 무상함을 기쁘게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함께 참석한 셩옌(聖嚴) 선사가 이에 덧붙여 말했다. “불교는 부와 명예를 피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불교는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만일 부와 명예를 얻게 된다면 그것을 잘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동시에 그것에 속박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2006년 미국 유력 일간지(『The San Francisco Chronicle』)와의 인터뷰에서 이연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불교는 사람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불교 수행에 지금보다 더 많은 정력과 시간을 쏟고 싶어요. 불교는 삶을 더 잘 이해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것입니다. 불교 사상은 삶을 돌아보게 하고 자신을 스스로 관찰하게 도와줍니다. 이때 얻는 느낌은 물질적인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고 우리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불교를 배우고 실천하면서 그의 진로는 영화가 아니라 서서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배우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던 이연걸은 2007년에 자선 재단을 설립하면서 자선사업가이자 교육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는 원 파운데이션(One Foundation)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통해 적십자사와 긴밀히 협력하며 재난 구호 자금을 지원하고 정신 질환 및 기타 원인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를 돕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모이는 기부금은 모두 도움이 필요한 곳에 쓰이는데, 대표적으로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당시 피해자들에게 그동안 모은 돈(한화 100억 원 이상)을 전달하면서 살 곳을 잃고, 배고픔과 추위로 힘들어하는 중국인들에게 큰 사랑을 주는 훈훈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이것은 2004년 몰디브에 있는 자신의 호텔을 덮친 쓰나미로부터 딸들을 구한 후에 결심한 것이다. 거의 죽을 뻔했던 그 체험은 이연걸이 인생을 다시 보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가족과 함께 휴가차 방문한 몰디브의 해변에서 그 당시 동남아를 휩쓸었던 쓰나미를 만난 것이다. 두 딸과 바닷가를 산책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거대한 파도가 해변으로 몰려왔다. 파도는 너무 빠르게 그들을 덮쳤고 어린 딸들을 안고 달리던 그는 금세 물속에 잠겼다. 그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고 다행히 네 사람의 구조대가 그들을 구해냈다. 물에 빠졌을 때 도와준 한 사람의 손길이 세상의 모든 돈과 권력보다 더 귀하다고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몰디브에서 겪었던 그날의 체험은 저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죠. 그때까지 나는 내 인생 41년 동안 ‘이연걸’을 가장 먼저 생각했고, 나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때까지 그는 봉사와 보시에 관한 생각은 있었지만, 선뜻 마음을 내지 못했다. 실은 은퇴 후에 남은 생을 남을 돕기 위해 살 생각이었는데 그 일을 겪은 후 그러한 생각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을 돕기 위해 은퇴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죠.”
이연걸은 한때 출가를 결심할 정도로 불교에 깊이 감화되었다. 2006년 영화 <무인 곽원갑> 홍보차 내한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난 20여 년 동안 무술 영화를 찍었다. 영화 속에서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에게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폭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교의 가르침을 이해하면서 폭력은 절대로 상대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력보다 중요한 것은 이해와 사랑이다.”
“무(武)는 창을 제지한다는 의미다. 무술이라고 하면 손발의 움직임으로 상대방의 창을 제압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무술은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무술은 마음속의 두려움과 이기심을 극복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무술은 마음을 터득하는 것, 단련과 훈련에서 얻게 되는 정신의 고귀함 같은 것이다.”
“무도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는 3단계가 있다. 1단계는 손에도 마음에도 칼이 있는 단계다. 이때는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무술을 연마한다. 2단계는 손에는 칼이 없지만, 마음에는 칼이 있다. 상대를 직접 해치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감화시키려고 한다. 3단계는 손에도 마음에도 칼이 없는 단계다. 절대적인 적이 없으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대한다.”
젊은 시절 강철 같은 의지로 자기 몸을 단련했던 무술인 이연걸은 이제 마음을 수련하는 수행자의 삶을 살며 세상 사람을 위해 사랑과 행복을 나눠주고 있다. 그의 정신세계의 밑바탕에는 지혜와 자비의 불교 가르침이 자리 잡고 있다.
문진건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통합심리대 철학 및 종교연구소에서 석사와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명상심리상담학과 책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동방문화대학원대 불교문예학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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