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장생은 생명과학적으로 가능한가? | 과학과 생명의 존엄성 사이

불로장생은 생명과학적으로 가능한가?

양병찬
약사, 과학 전문 번역가

벌거숭이두더지쥐(출처 : 『Science』)

다 자란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일간 사망률(daily chance of dying)은 1만 분의 1로, 나이가 들어도 항상 일정하다. 이것은 기존의 생물학적 노화 법칙을 거부하는 엽기적인 확률로, 불로장생이 생명과학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벌거숭이두더지쥐(naked mole rat)는 동물 모델의 세계에서도 단연 슈퍼 모델이다. 그들은 암에 거의 걸리지 않고(참고 1), 몇 가지 종류의 통증에 저항하며, 산소 없이도 최대 18분 동안 살 수 있다(참고 2). 그러나 이번에 새로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대단한 것은 늙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천 마리의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생활사를 분석한 사상 최초의 연구에서, 그들의 사망 위험은 -지금껏 알려진 다른 모든 포유류와 달리- 나이가 들어도 증가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 과학자들은 지나치게 광범위한 결론을 경계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이번에 제시된 데이터의 중요성과 두드러짐에 주목하고 있다.

“그들의 낮은 사망률은 독보적이다. 노년에 이르렀을 때 그들의 사망률은 지금까지 발표된 어떤 포유류의 사망률보다도 낮다”며 남가주대학교(USC)의 칼렙핀치 박사(생물노인학)는 논평했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땅굴을 파는 설치류로, 쭈글쭈글한 핑크색 피부와 커다란 뻐드렁니를 가지고 있으며, 지하에서 큰 무리를 지어 사는 습성이 있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노화의 징후가 별로 보이지 않으며, 몸집이 비슷한 설치류를 훨씬 능가하는 기대 수명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왔다. 실험실의 쥐들은 기껏해야 4년 동안 사는데, 몸집을 감안한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수명은 6년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일부 벌거숭이두더지쥐들의 수명은 30년을 훌쩍 넘으며, 그 나이가 되어도 번식하는 암컷의 생식력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구글의 바이오텍 분사(spinoff)인 샌프란시스코의 칼리코에서 근무하는 로셸 부펜스타인 박사(비교생물학자)는 30여 년 동안 벌거숭이두더지쥐를 연구하며, 문자 그대로 한평생에 해당하는 데이터를 수집했다. 그녀는 보살피던 벌거숭이두더지쥐 전원에 대해 출생 일자와 사망 일자를 기록하고, 실험 도중에 사망하거나 다른 연구자들에게 양도했는지도 낱낱이 기록했다.

그녀가 발견한 것은 놀라웠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곰페르츠의 법칙(노화를 기술하는 수학식)을 거부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영국의 독학파 수학자 벤저민 곰페르츠는 1825년, 사망 위험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컨대 인간의 경우, 서른 살 이후의 사망 위험은 8년마다 약 두 배로 증가한다. “그 법칙은 성년기 이후의 모든 포유동물에게 적용된다”고 영국 리버풀대학교의 조아우 페드루 드 마갈랴으스 박사(노인학)는 말했다.

그러나 부펜스타인 박사는 자신이 실험실에서 사육하는 설치류에서 그런 경향을 관찰하지 못했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생후 6개월째에 성적으로 성숙한 후, 일간 사망률이 1만 분의 1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그리고는 평생 동안 동일한 사망률을 유지했으며, 심지어 약간 더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평생 동안 사망률이 일정하다면, 벌거숭이두더지쥐는 불로장생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연구진은 이 연구 결과를 지난 1월 24일 『e라이프(elife)』에 보고했다(참고 3). “지금껏 이보다 더 흥미로운 데이터는 없었다. 우리가 아는 포유류의 생물학 법칙에 모두 위배된다”고 부펜스타인 박사는 말했다.

벌거숭이두더지쥐가 불로장생하는 비결은 뭘까? 선행 연구에서, 벌거숭이두더지쥐는 DNA 수리가 매우 활발하고 샤프롱(chaperone: 다른 단백질들이 정확히 접히도록 도와주는 단백질)의 수준이 매우 높은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생각하건대, 그들은 신체 내에 (연령 증가에 따른 신체의 노후화를 초래하는) 각종 손상을 축적하지 않고, 수시로 말끔히 치우고 정돈하는 것 같다”고 부펜스타인 박사는 설명했다.

그러나 핀치 박사는 이번 데이터의 지나친 확대해석을 경계(警戒)한다. “대부분의 실험 동물들은 살해되거나 다른 연구실에 양도되므로, 이번 연구에 사용된 동물 중에서 15년 이상 생존한 것은 50마리 미만이었다. (부펜스타인의 연구실에서 현재 최고령 벌거숭이두더지쥐의 나이는 서른다섯 살이다.) 사망률이 정말로 일정하게 유지되는지를 확인하려면, 좀 더 많은 (그리고 좀 더 나이 든) 벌거숭이두더지쥐들이 필요하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나 부펜스타인 박사는 이번 데이터가 다른 포유류나 동물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노화 패턴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느 설치류의 노화 연구를 살펴보더라도, 곰페르츠 법칙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마릿수는 100마리면 충분하다. 우리는 3,000개의 데이터 포인트(data point)를 확보하고 있는데, 곰페르츠 법칙의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벌거숭이두더지쥐가 불로장생한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들의 경우에도 노화가 일어나기는 하지만, 통상적인 포유류의 경우보다 훨씬 더 나중에 일어날 수 있다”고 마갈랴으스 박사는 지적했다.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최대 미스터리는 ‘20~30세가 지난 후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때부터 노화가 빨리 진행될 수도 있다. 부펜스타인 박사도 이 부분에 대한 데이터는 갖고 있지 않다고 독일 라이프니츠 노화연구소의 마티아스 플라처 박사(생물학)는 말했다. 그러나 플라처 박사는 기뻐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연로하고 규모가 큰벌거숭이두더지쥐 집단의 데이터가 만천하에 공개되었다고 말이다.

* 참고 문헌
1. www.sciencemag.org/news/2013/06/why-naked-mole-rats-dont-get-cancer
2. www.sciencemag.org/news/2017/04/naked-mole-rats-can-survive-18-minutes-withoutoxygen-here-s-how-they-do-it
3. elifesciences.org/articles/31157

* 출처
『Science』, www.sciencemag.org/news/2018/01/naked-mole-rats-defy-biological-law-aging

<과학과 생명의 존엄성 사이>에서는 약사이며 과학 전문 번역가인 양병찬 선생이 식물과 새, 곤충 등 생명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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