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딤과 조화로움의
지혜를 찻잔에 담아
함영
작가
찻물이 화로 위에서 참 더디게 끓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더딤’에 대해 갑갑해하거나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차(茶) 보살이 차를 준비하는 손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여유로운 손놀림은 차림새만큼이나 단아하고 기품 있어 보였다. 덴마크에서 온 명상가, 소냐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마치 오랜 왕족의 기품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까지 했다.
사실 처음 그녀의 차방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한동안 어리둥절해했다.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한 바깥 공간과는 전혀 다른 기운이 우리를 에워쌌다. 손님 수에 맞게 펼쳐놓은, 나무로 된 소담한 찻상만 보더라도 그녀가 얼마나 세심한 준비와 배려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일인용 찻상 위에는 차와 함께 먹기에 좋은 다식과 찻잔이 준비되어 있었고, 손을 닦기 위한 물티슈와 앙증맞은 들꽃까지 차림새로 곁들여 있었다.
찻물이 끓는 동안 차 보살은 조그마한 돌절구에 찻잎을 넣고 천천히 갈았다. 거친 돌의 성질을 만난 찻잎이 자신을 감싼 억센 막을 한 꺼풀 벗는 순간이었다.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면서 우리는 ‘때’를 기다렸다. 찻주전자 안에 찻잎을 넣어도 좋을 적절한 때를. 그러나 수십 년간 차와 사랑에 빠진 차 보살도 정확한 때를 맞추기란 쉽지 않다고 했다.
“물이 끓어오르면서 생기는 물방울 크기를 보고 ‘이때다!’싶을 때 찻잎을 넣어요. 차의 고유한 성분이 물 안에서 최대한 우러날 수 있는 때를 맞추는 건데, 정교하게 맞추기는 쉽지 않아요. 그래서 차를 우릴 때마다 맛이 다 다르죠.”
차 보살의 설명을 듣고 선재는 생각했다. 차의 매력은 어쩌면 그렇게 달라지는 맛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고. 돌절구를 이용해 찻잎을 갈고, 찻물이 서서히 끓어오르는 과정을 지켜보며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가, 그때를 포착해 차 본래 성분을 우려내는 과정 속에서 아마도 차 보살은 그때그때 달라지는 미세한 차 맛에 푹 빠졌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윽한 차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는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른다. 조건에 따라 달라지고 변하는 이치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녀에게 차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련의 방식이며 명상 도구와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선재는 생각했다. 언젠가 누군가가 했던 말도 생각이 났다. 세상이 아름다운 건 변하기 때문이라고. ‘변화’라는 것이 매정하고 두렵게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아직도 선재는 그러한 사실이 달갑지 않게 느껴지지만 한편 이런 생각으로 위안을 삼곤 한다. 모든 존재가 언제나 같은 상태로 머문다면 얼마나 끔찍하고 무의미할 것인가.
새로움을 위한 비움의 차 ‘백차’
드디어 첫잔이 나왔다. “고려 시대 방식을 재현해 끓인 차”라는 차 보살의 말에 우리의 기대는 더욱 커졌다.
“그런데 얼마나 비슷하게 재현됐을지는 모르겠어요. 그 시대와 다를 수는 있겠지만 고려 시대의 차 전통이 끊어져 나름 자료를 찾고 복원 실험도 해오고 있어요.”
차 보살이 쑥스러운 듯 미소 지으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찻잔을 내밀었다.
“차를 우릴 때 시간을 얼마나 두나요? 오래 두면 맛이 이상해지나요? 홍차를 티백으로 마셨을 때 물에 오래 담가두기도 하는데, 그런 것에 비하면 이 차는 우리는 시간이 상당히 짧은 거 같아요.”
“맞아요. 대신 물 온도가 높으니까 오래 담가두면 고유의 향이 사라지죠.”
이탈리아에서 온 농부이자 명상가인 피에로는 누구보다 그녀의 차에 관심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전통에 관심이 많은 농부였다. 농부가 되기 이전에는 소위 잘나가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었지만, 전통에서 세상의 진리를 찾고자 했던 그는 자신의 행복이 물질적 조건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어느 날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농부가 되었다. 그런데 그의 농경법은 독특한 데가 있었다. 피에로가 오랜 전통의 다법(茶法)과 차에 관심이 많듯, 차 보살은 피에로의 남다른 농경법에 관심이 많았다.
“인도에서 알게 된 농경법인데, 명상을 통해 종자가 수확물이 될 때까지 농작물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거예요. 어머니가 태교하는 것처럼 농사지을 때도 아이 돌보듯 씨앗을 돌보고 농작물을 키우는 거죠. 지금의 농부들은 농작물과 맺는 관계가 옛날 농부들 같지 않거든요. 말하자면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것인데, 오랫동안 잊힌 것을 되살려 복원하는 방식인 거죠.”
피에로의 설명에 그와 오랜 절친인 소냐가 그의 농경법에 대해 설명을 덧붙였다.
“요즘은 오염도가 너무 심각해서 옛날 고대의 방법을 복원해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돼요. 그래서 뭔가 오염된 상태를 넘어설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죠. 예를 들어 내가 있고 자연이 있어 나와 자연 사이에 조화를 추구하는데, 자연이 너무 오염됐기 때문에 그게 충분하지 않은 거예요. 알파 요소가 필요한 거죠. 그래서 좀 더 높은 차원의 에너지, 원천의 힘을 명상으로 끌어오는 것이 이 농법의 핵심이에요. 그런 의식과 이해를 가진 사람이 그런 에너지를 끌어당길 때, 그 에너지는 그 사람을 통해 땅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어요.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오랫동안 잃어버린 균형을 되찾을 수 있어요.”
차 보살은 그제야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아흔 노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배추농사를 지을 때 벌레들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어머니는 벌레를 죽이는 게 아니라 벌레를 잡아 대화를 하죠. 밭 한 줄을 아예 벌레용으로 주고 너희들은 이 줄에서만 먹으라고 얘기하면, 벌레들이 신기하게도 그 줄에서만 먹어요. 과일나무도 마찬가지예요. 한 그루를 벌레들한테 내주면 벌레들이 그 나무에서만 지내죠. 집에 개미들이 많을 때도 개미들한테 따로 밥을 주면 개미들이 피해를 주지 않고 그곳에서만 먹이를 먹어요. 제 어머니는 지금도 그렇게 농사를 짓고 계세요.”
차 보살의 설명에 피에로는 한 수 배운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벌레들을 위해 먹이를 따로 내주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식이 참 아름답게 느껴지네요.”
차 보살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차 만드는 과정에 집중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두 번째 차로 일명 ‘백차’라는 것을 내놓았다.
“그냥 물인데, ‘백차’라고 하죠. 다른 차를 마실 때 이전에 마신 차의 향이 입안에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잔향을 헹궈주는 차예요.”
그러한 잔향 때문일까, 그냥 물에 불과한 백차에서 물맛이 아닌 은은하고도 미세한 차 맛이 느껴졌다. 백차 한 모금으로 과거의 잔향을 씻어낸 다음 마신 차는 철관음이었다.
“15% 정도 발효시킨 차라 향이 좋아요. 잎차를 만들 때 찻잎에 상처를 많이 주는데, 상처에서 나오는 진액을 좋아하는 미생물이 붙으면 이런 향이 나죠.”
철관음의 구수한 향을 음미하며 우리의 대화는 다시 농경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로 돌아왔다. 피에로는 자신의 농장에서 말과 개 몇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정확히는 키운다기보다 동반자 개념으로 더불어 살고 있다고 했다.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저희 아버지가 해준 얘기로는, 닭만 키우면 닭이 가진 특성 때문에 닭들이 잘 걸리는 병에 노출되기 쉽다고 하더라고요. 소도 마찬가지로 소만 많이 키우면 취약점이 해결이 안 된다고 해요. 그런데 가령 소가 한 마리 있고 닭이 다섯 마리에, 마당에 소나무 한 그루와 감나무 한 그루가 있으면 집에 들어오는 기운이 정화되면서 취약점이 보완되는 거죠. 밭에도 곡식을 한 가지만 심으면 병에 취약한데, 중간중간 다른 곡식을 섞어 심으면 서로 교류되면서 치유되고 약점이 보완된다고 해요.”
‘조화’는 곧 지혜인 걸까. 그러한 지혜가 오랜 농경생활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배어 생활화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선재는 새삼 감탄했다. 차 보살의 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는 선재뿐 아니라 그 방에 모인 명상가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대화가 무르익을수록 백차의 잔 수는 늘어났고, 차 발효의 깊이도 깊어졌다.
“이건 ‘흙차’라고 하는데 100% 발효시킨 차예요. 차를 발효시킬 때는 한 번 아주 가볍게 찌죠. 그래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면 미생물이 달라붙어 지금과 같은 맛이 나죠. 습도가 적으면 말라서 발효가 안 되고, 습도가 너무 많으면 썩기 때문에 보관을 아주 잘해야 해요.”
미생물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발효 덕일까, 흙차는 발효된 세월만큼이나 깊은 맛과 향이 났다.
“여러 차를 마셔보았는데, 차마다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각각의 특징이 있나요?”
차담이 끝나갈 무렵 피에로가 차 보살에게 이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럼요, 제 경우는 정확히 느끼는 편이죠. 어떤 차는 간이 활성되는 걸 느끼고, 어떤 차는 심장에 도움을 주는 걸 느껴요. 또 어떤 차는 마시면 위로 열이 오면서 몸이 가벼워지죠. 섬세하지만 각각 차이가 있어요.”
묵묵히 차를 마시는데 집중하고 있던 소냐는 차 보살의 말에 공감하며 자신의 소감을 털어놓았다.
“저는 미세한 차이까진 알 수 없지만, 차를 마시면서 에너지가 보충되는 것을 느꼈어요. 처음 방에 들어올 때는 아주 피곤한 상태여서 졸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차는 확실히 커피 마실 때 받는 에너지와는 다른 것 같아요. 차를 만드는 걸 지켜보는 자체만으로도 명상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날, 우리가 마신 차가 과거의 방식으로 얼마나 재현이 됐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백차만큼은 인간이 존재한 당시부터 함께한, 오랜 기원의 차가 아니었을까. 아무런 맛과 향을 지니고 있지 않기에 과거의 잔향을 담아내면서도 한편 그것을 씻어주는 백차. 그것에는 비움의 미학 같은 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인연의 이치와 법칙이 담겨 있는 것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선재는 생각했다. 다른 건 몰라도 백차만큼은 종종 챙겨 즐겨 마시리라. 정갈하고 깨끗한 찻잔에 담아….
차의 매력은 우릴 때마다 달라지는 맛에 있다.
세상이 아름다운 건 변하기 때문이라고. 모든 존재가 언제나
같은 상태로 머문다면 얼마나 끔찍하고 무의미할 것인가.
함영
‘생각 없이 글쓰기’와 ‘생각 없이 사랑하기’를 꿈꾸는 글쟁이다. 주요 저서로는『밥맛이 극락이구나』, 『인연으로 밥을 짓다』, 『곰탕에꽃한송이』, 『공양간노란문이열리면』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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