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 불교의 최종 목표
쿠시나가르
불교의 4대 성지는 여래께서 태어나신 곳, 위없는 정등각을 깨달으신 곳,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신 곳, 반열반(般涅槃, parinirvāna)하신 곳이다. 부처님께서는 이곳을 선남자가 친견해야 하고 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 네 가지 장소이며, 이 4대 성지에 순례를 떠나는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누구든 모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이라고 직접 말씀해두신 것이 『전법륜경』에 전해지고 있다.
라즈기르에서 바이샬리를 거쳐 쿠시나가르에 이르는 부처님의 마지막 행로는 승단이 쇠퇴하지 않는 일곱 가지 불퇴법, 숨김없이 다 가르쳐서 스승의 쥔 주먹이 없는 무사권(無師拳), 자신과 법을 의지하라는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이 완전한 해탈에 확실히 이르게 하리라는 법의 거울(法鏡) 등 주옥같은 법문이 설해졌고, 이는 부처님 사후의 승단과 제자들의 의지처를 명확하게 해주었다.
마지막 제자 수밧다에게 설하신 ‘팔정도를 얻지 못하면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라는 사문이 될 수 없다(不得八正道 不得沙門)’라는 법문은 ‘중도=팔정도’라는 최초의 설법과 짝을 이루어, 성인(聖人)의 도(道)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진해 얻어야 함을 분명히 했다. 또한 이미 귀의한 제자들을 어루만지고 아직 귀의하지 못한 제자들의 귀의를 받으신 대자비의 길이었다.
부처님의 반열반은 그 3개월 전에 예고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바이샬리 인근인 벨루바에서의 마지막 안거 후에 챠팔라 탑묘에서 열반송을 읊으셨다.
내 나이 무르익어
나의 수명은 이제 한계에 달했도다.
그대들을 버리고 나는 가리니
나는 내 자신을 의지처로 삼았다.
비구들이여, 방일하지 말고
마음챙김을 가지고 계를 잘 지켜라.
사유를 잘 안주시키고
자신의 마음을 잘 보호하라
이 법과 율에서
방일하지 않고 머무는 자는
태어남의 윤회를 버리고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
부처님은 쿠시나가르에서 반열반하셨다. 그곳은 지금도 그렇고 부처님 당시에도 우리나라의 옛 농촌과도 같은 조그마한 마을이고 그만큼 고요하고 한적한 곳이었으니, 모든 갈등을 벗어나 적멸을 추구한 부처님의 정신에 잘 부합하는 장소였다.
부처님은 최후의 순간에 내린 때 아닌 꽃비를 보고도, 여래에 대한 참된 공양은 ‘법을 받아들여 이해하고, 실천하며, 깨달음의 꽃을 피우는 것(受法能行覺華)’이라고 해 노력하고 깨달을 것을 당부하셨고, 방일하지 말라는 유훈을 남기고 영원한 적멸에 드셨다.
적멸에 드신 사라쌍수 곁에 열반당과 열반탑이 세워져 있다. 열반당에는 굽타 시대에 모래와 진흙으로 조성된 6.1m의 와불상 주위를 도는 수많은 참배객들이 끊임없이 가사 공양을 올리고, 와불상 기단에 무릎 꿇고 머리를 산발한 말리카 부인이 적멸의 슬픔을 흩뿌린다.
열반당 지척에 다비장이 있다. 이곳은 원래 말라족의 역대 왕들이 대관식을 치르던 곳이다. 부처님의 다비는 전륜성왕의 예를 따라 500번 천으로 감싸고, 기름을 넣고 향으로 장엄한 이중 황금 관에 넣어 행해졌다. 지금은 기단부 직경이 47.2m, 높이 34m에 달하는 거대한 라마바르탑이 남아 있다.
부처님께서 반열반하시자, 애정을 버리지 못한 많은 이들이 손을 마구 흔들고 울부짖고, 다리가 잘린 듯이 넘어지고,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세존께서는 너무 빨리 반열반하시는구나!” 했다. 애정을 버린 이들은 마음챙김하면서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여기서 슬퍼함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했다.
열반은 불교 수행의 최종 목적이다.
열반의 존재에 대한 부처님의 최초 추론은 과거의 선혜 보살의 생에 연등불께 수기를 받고 난 직후에 숙고하는 장면에서 처음 등장한다.
괴로움도 존재하는 것과 같이 행복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이와 같이 존재(bhave)가 발견된다면 부재(不在, vibhavo)도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뜨거움도 존재하는 것과 같이 다른 차가움이 발견된다. 이와 같이 태어남이 존재하면 열반도 필요하다.
악함이 존재하는 것과도 같이 선함도 존재한다. 이와 같이 태어남이 존재하면 태어남의 여윔도 필요하다.
이와 같이 최초의 열반에 대한 사유는 태어남의 여윔이다. 이것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닫고 난 뒤 불사(不死)의 문이 열렸다는 선포로 재등장한다. 경전에서 열반에 대한 정의를 보자.
“이 인생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때문이다. (…) 격렬한 탐욕의 불꽃이 없어지면 불안이나 괴로움도 없어진다. 훨훨 타오르는 불도 그 땔감이 다하면 꺼져버리는 것과 같다. 그것을 나는 열반이라 한다.” (MN72, 『왓차곳따 불 경』)
이에 따라 사리불은 탐진치의 소멸을 열반이라 했다. 용수 보살도 “열반이란 여러 인연을 취해 생사를 윤회하는 중에 그 모든 인연을 취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그러나 열반이란 영원한 것인가 영원하지 않은 것인가? 부처님은 반열반 후에도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아라한은 반열반한 뒤에 어디로 가는가? 등의 물음이 부처님 당시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땔감이 다 타서 불이 꺼졌을 때 그 불이 어디로 갔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하셨다.
그럼에도 부처님의 반열반과 함께 부처님이 단멸했으며 그 가르침은 단멸론이라는 외도들의 비판에 직면한다. 이에 부파불교 시대의 대답은 열반은 항상한 것이라는 것이다.
“도가 이것(열반)을 생기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도로써 증득하는 것(pattabba)이지 생기게 하는 것(uppādetabba)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생긴 것이 아니다. 생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늙음도 죽음도 없다. 생김, 늙음, 죽음이 없기 때문에 항상한 것이다.”(『청정도론』, p566)
이에 대해 용수 보살은 『중론』에서 “열반은 획득되는 것도 아니고 도달되는 것도 아니며, 단멸된 것도 아니고 상주하는 것도 아니며,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소멸하는 것도 아니며,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니다”고 해 그 논의를 심화했다.
또한 열반 후 존재의 문제에 대해서 용수 보살은 “여래가 멸도한 후에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라. 또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도 말하지 말라. 여래가 지금 존재할 때 있다거나 없다고 말하지 말라. 또 있으면서 없다거나,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말하지 말라”라고 사자후를 토했다.
타오르는 불이 불이 꺼진 상태를 알 수 없듯이, 우리의 사유가 사유 너머에 있는 열반을 알 수는 없다. 동시에 열반을 정진의 목표로 설정하는 것 역시 사유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목표 설정이 없다면 불이 꺼져야 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삼독(三毒)의 불이 꺼진 열반이 존재함을 일깨워주셨고, 그것을 살아서 체현해 보이시고, 마지막으로 마침내 완전한 열반에 듦으로써 자신의 삶 자체를 통해 내면의 평화와 세계의 평화가 가능함을 웅변하셨다.
글과 사진|각전 스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39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해양수산부에 근무하다가 궁극적 진리에 대한 갈망으로 출가했다. 현재 전국 선원에서 수행 정진 중이다. 저서에 『인도 네팔 순례기』가 있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