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닫기 전의 삶은 매트릭스의 삶이다
정계섭전 덕성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사람들은 각자 스스로 만든 매트릭스 속에서 살고 있다. 간략하게 말해서 ‘매트릭스’란 진실을 못 보게 사람을 속이는 세계를 의미한다. 코딩으로 만들어진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 점점 더 실제 현실을 방불하는 상황이 되면서 이 문제는 더욱 절박한 양상을 띠고 다가온다.
아직은 실제 세계가 비트의 세계보다 훨씬 많은 양의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말하자면 연주장에서 직접 관람하는 것이 TV로 시청하는 것보다 선호된다. 가상세계와 진짜 현실 세계의 구별 불가능성 문제는 전통적 존재론의 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도 있는 매우 공포스러운 문제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실상(實相)이 아니라 허상(虛相)이 아닌지 묻는 문제는 장자의 호접몽이나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에서 보듯이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그 뒤를 이어 ‘방법적 회의’를 주창한 데카르트가 본격적으로 제기한 문제이다. 학문의 기초를 수립하기로 작정한 그는 모든 것을 철저하게 의심한 나머지, 사악한 악령이 자신의 경험까지도 조작하지는 않는지 자문하기까지 이르렀다.
데카르트의 현대판 버전이 퍼트남이 1981년에 제시한 ‘통 속의 뇌’이다.
인간의 뇌를 신체에서 분리해 통 속에 넣고 적당한 양분을 공급해 생명력을 유지시킨 다음, 외부 경험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해서 이 뇌에 주입하면 뇌는 자신이 통 속의 뇌라는 사실을 알 수 없다.
1999년에 나온 <매트릭스>는 이러한 사고 실험으로부터 착상된 영화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Real World)가 진짜가 아닐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아마도 인류보다 더 높은 존재의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믿고 있다.
단테의 『신곡』이나 셰익스피어의 『햄릿』 그리고 괴테의 『파우스트』는 모두 ‘가상현실’을 실감나게 그린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문학은 무해한 매트릭스의 전형이다. 다른 한편, 자유가 억압받고 있는 줄도 모르고 독재자에게 열광하는 대중은 영락없이 매트릭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베토벤과 괴테의 나라 독일 국민이 그러했다.
인공지능 전문가들의 예상에 따르면 2050년경이면 인간과 로봇의 결혼이 합법화될 것이라고 한다. 한술 더 떠서 ‘사실혼’은 이보다 훨씬 전에 이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수많은 결혼이 이혼으로 끝나는 작금의 사태로 미루어보건대, 인간과 로봇의 결혼은 염려와는 달리 사회에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인간과 기계 사이에 감정이입이 가능하게 된다면 ‘인간다움’이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지혜인(Homo Sapiens)’을 비롯해서 이제까지 인간에 대한 모든 정의가 무효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외부 입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는 매트릭스이다.
‘전도’는 사물을 바로 보지 못하고 거꾸로 보는 것이다. 너나없이 인간의 치명적인 오류는 괴로운 것을 즐거운 것으로 착각하는 데에 있다.
살모사의 꼬리를 잡고 있는 줄도 모르고 눈앞의 대상에 탐닉하는 것이, 제 죽는 줄도 모르고 불에 달려드는 부나방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몽상’은 헛된 꿈을 꾸면서 그것을 현실로 착각하는 것이다. 내일이 먼저 올지 내생이 먼저 올지 알지도 못하는 터에 방일하고 나태한 것이 우리 어리석은 중생들의 살림살이다.
불의 재난(火災), 바람의 재난(風災), 그리고 물의 재난(水災), 이 셋을 삼재(三災)라고 하는데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탐(貪), 진(瞋), 치(痴) 3독(三毒)이다.
탐진치에 오염된 인간은 밤에만 꿈을 꾸는 게 아니라 벌건 대낮에도 전도몽상이라는 꿈을 꾼다. 지옥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
누에고치가 스스로 만든 고치에 갇혀 번데기 신세가 되듯이,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만든 상을 진짜로 여겨 이 가짜 분별상에 묶여 스스로 만든 감옥 속에 자신을 가두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의미하는 매트릭스의 삶이다.
상을 취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은 범부의 마음놓침(mindlessness)에서 벗어나, 6근(根)에 보초병을 세워 부단히 마음챙김(mindfulness)하는 데에 있다.
‘불파염기 지파각지(不怕念起 只怕覺遲, 생각이 일어남을 두려워 말고, 다만 알아차림이 늦을까를 두려워하라)’라, 이것이 매트릭스의 삶에서 해방되는 진정한 자유의 길이 아닐까 한다.
정계섭
프랑스 파리 쥐시외(Paris -7) 대학에서 일반언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덕성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를 지냈다. 『말로 배운 지식은 왜 산지식이 못 되는가』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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