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준비하는 교과서 『관무량수경』
원빈 스님송덕사 주지, 행복문화연구소 소장
바야흐로 지금은 죽음의 시대다. 전 세계적으로 유행 중인 바이러스와 전쟁 등으로 죽음의 목격은 일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죽음을 잘 준비한 수행자라면 당황스럽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불자들의 경우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가르침이 필요하다.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중 하나인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은 부처님께서 마가다국(Magadha)의 위제희(vedehī) 왕비에게 설법한 가르침으로, 극락왕생을 위한 수행을 자세히 설명한 경이다. 경의 서두 「인연담」에는 아들 아사세(ajātaśatru) 왕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남편을 바라보는 위제희(vedehī) 왕비의 절절한 심정이 묘사되어 있다. 왕비는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마저 죽이려 하자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이렇게 발원한다.
“저는 이 염부제와 같이 혼탁하고 악한 세상에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 세계는 지옥, 아귀와 축생이 가득 차서 착하지 못한 무리가 많습니다. 원하옵건대 저는 미래에 나쁜 소리를 듣지 않고 악인을 보지 않기를 바라옵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트윗(tweet)
불자들은 죽음을 목격하는 것을 두려움으로만 경험해서는 안 된다. 지인의 죽음은 다음과 같은 염라왕의 메시지이다.
‘당신도 곧 죽는다. 죽음을 준비하라.’
이 글에서는 『관무량수경』을 통해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을 살펴본다. 핵심을 정리하면 경전 속 가르침은 ‘수삼복(修三福) 관십육경(觀十六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경전 속 원문을 살펴본다.
“저 국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세 가지 복을 닦아야 한다. 첫째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스승과 어른을 받들어 모시며 자비심으로 살생하지 말고 열 가지 착한 업(業)을 닦으라. 둘째는 삼귀의(三歸依) 계(戒)를 받아 지니고 여러 가지 계를 지키며 위의를 범하지 말라. 셋째는 보리심을 발해서 깊이 인과를 믿고 대승 경전을 독송하며 다른 수행자에게도 전하라.”
왕생극락하기 위해서는 세복(世福)과 계복(戒福) 그리고 수복(修福)을 쌓아야 한다. 세복이란 십선법(十善法)을 위시한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계복이란 오계(五戒)와 십계(十戒) 등 종교적인 의무를 실천하는 것이며, 수복이란 보리심을 품고 보살행을 닦아 나아가는 것이다. 삼복을 삶 속에서 실천해야 이 복으로 왕생극락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정토행자(淨土行者)의 마음 수행법
삼복을 실천하면 극락뿐 아니라 천상을 비롯한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다. 이 중 특히 극락에 태어나길 원하는 정토행자들은 마음 밭을 복의 영양분으로 가꾼 후 진일보해 직접적인 마음 수행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열여섯 가지 경계에 대한 주제로 위파사나(Vipassanā) 수행을 하는 ‘십육관법(十六觀法)’이다.
열여섯 가지 주제로 위파사나를 닦아 자연스럽게 마음이 고요해져 선정에 들어가게 되면 더 강해진 집중의 힘으로 극락의 모습을 무의식 깊이 새기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 수행이 무르익으면, 남은 생은 극락처럼 즐겁게 살게 되고 죽음 이후엔 왕생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첫 번째인 일상관만 소개한다.
“모든 중생이 장님이 아닌 눈이 있는 사람들은 다 해가 지는 것을 볼 것이니, 마땅히 생각을 일으켜서 바로 앉아 서쪽을 향해 자세히 해를 생각해 관할지니라. 마음을 굳게 하고 머물러 생각을 한곳으로 모아 움직이지 않게 하고 해가 지려고 하는 상태를 북이 매달린 것같이 보아라. 이미 해를 보고 나서도 눈을 감거나 눈을 뜨거나 다 분명하게 할지니라. 이것이 첫 번째 해를 생각하는 관이라 한다.”
일상관은 간단하다. 자주 일몰을 보는 것이다. 눈을 떠도 보이는 것처럼, 이를 넘어 마음에 새겨지도록 일몰을 보고 또 보는 것이다. 명료한 심상(心象)이 마음에 생기는 것이 선정 수행의 시작이고, 십육관법은 이를 점점 더 깊어지도록 하는 차례가 있는 극락 새김의 수행이다.
안타깝게도 바쁜 현대인들은 일몰을 볼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 그러면 십육관법의 첫 단추를 끼울 수조차 없는데, 이런 경우 일상 속의 행동을 바꾸는 세복과 계복을 닦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바쁜 이들을 위한 죽음 준비법
경전 속에서 아사세 왕자는 왜 부왕을 죽이려고 했을까? 빔비사라(Bimbisāra) 왕은 말년에 자신의 후사를 이을 왕자가 태어나지 않자 신통력이 뛰어난 선인에게 미래를 물어보았다고 한다. 선인은 히말라야에 있는 수행자가 죽은 뒤 왕의 아들로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왕은 초조한 나머지 히말라야의 선인에게 빨리 죽음을 맞이하고 다음 생을 받을 것을 명령한다. 결국 그 수행자는 죽임을 당하면서 ‘다음 생에 왕의 아들로 태어나 목숨을 빼앗으리라!’ 라는 원한을 품었다.
짧게 보면 억울할 수 있겠지만, 길게 본다면 자업자득임을 불자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현재를 극락처럼 살고 죽음 이후에는 왕생극락하고 싶다면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수행해야만 한다. 분노와 억울함과 같은 부정적인 마음의 토양에서는 극락의 행복한 경험을 꽃피우지 못한다. 그렇기에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수행은 항상 부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무조건 부처님께 감사하는 태도가 삼복의 원천이고 수행의 첫걸음이다. 다음으로 감사함에 대한 표시로 ‘나무아미타불’ 염불 공양을 올려야 한다. 부처님께서 항상 함께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온 마음을 다해 명호를 외치는 것, 이것이 정토행자의 칭명염불 수행이다.
정리하자면 죽음과 가까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관무량수경』에서는 죽음과 왕생극락을 위해 삼복을 닦고, 십육관법의 마음 수행을 권선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기본으로 항상 부처님께 감사하는 태도로 칭명염불 공양을 올려야 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일상을 살아가며 자주 이렇게 외쳐볼 것을 제안한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원빈 스님
해인사에서 출가했다. 중앙승가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행복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경남 산청에 있는 송덕사의 주지를 맡고 있다. 저서에 『원빈 스님의 금강경에 물들다』, 『굿바이, 분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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