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교 이야기 ①
진정한 ‘나’를 찾는
길에서 만난 불교
한자경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
어린 시절 아버지 서재에서 빛바랜 반가사유상 사진을 본 기억은 있지만, 어머니나 할머니 손을 잡고 산길을 걸어 절에 갔던 그런 기억은 없다. 오히려 어려서부터 서울 한복판에 살면서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녔다. 오락 요소가 가미된 어린이반보다는 목사님의 설교가 있는 성인반 예배를 더 즐겨 다녔는데, 그러다가 어느 시점인가부터 ‘나 이외의 다른 신, 우상을 섬기지 말라!’ ‘예수를 믿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리기 시작했다. 우리 조상들이 믿었을 신은 우상이란 말인가? 예수를 몰랐던 우리 조상은 모두 지옥에 있단 말인가? 이런 반문이 커짐에 따라 결국 나는 교회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물음의 답을 찾아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철학과 종교, 서양철학과 동양철학, 동양철학 중에서도 인도철학과 중국철학, 불교와 유가와 도가 관련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러면서 읽게 된 『우파니샤드』의 다음 두 구절은 나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하나는 신이 하는 말로 “너희가 어떤 이름으로 신을 부르든 그것은 결국 모두 나를 부르는 것이니라!”였다. 유한한 인간 너머 절대적 일자가 진짜 유일신으로 존재한다면, 그가 했음직한 말이라고 여겨졌고, 이로써 나의 오래된 의문은 풀렸다. 다른 민족의 신을 부정하는 신은 다툼을 벗어나지 못하는 다신 중의 하나이지 진정한 유일신일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내게 특별한 감동을 준 또 다른 한 구절은 신을 찾는 제자에게 스승이 하는 말로 “그게 바로 너이니라!”였다. 무한한 신이 유한한 인간 바깥에 있는 ‘외적 초월’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무한이 아니고 유한한 인간이 유한의 반대로 떠올린 한갓 개념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있었는데,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유한한 중생 바깥에 외적 초월자인 우주 창조자(브라만)는 따로 없다. 그러니 그가 창조한 개별적 실체(아트만)도 또한 없다. 부처님이 설하신 무아(無我)가 맞다! 그렇지만 그러한 무아와 공(空)을 깨닫는 부처의 마음, 여래심, 진여심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유한한 인간 내면의 무한한 심층 마음, 불생불멸의 마음이다! 이러한 ‘내적 초월’의 통찰을 얻게 된 것이다. 이로써 나는 불교에 심취하게 되었고, 특히 일체중생 내면의 초월성을 지시하는 여래장, 불성, 진여, 법신, 일심, 진심, 본래면목 등으로 부처님의 깨달음을 설명하는 대승불교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베단타 철학의 저 『우파니샤드』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해 영향을 받았으리라고 생각하며, 모든 진리는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부처님이 설하신 중생의 마음, 번뇌에 물들지 않는 자성청정심이 곧 원효가 말한 성자신해(性自神解)의 일심(一心)이고, 지눌이 말한 공적영지(空寂靈知)의 진심(眞心)이며, 그것이 바로 동학이 말하는 인내천(人乃天)의 마음이고, ‘우리’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내가 불교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일상생활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학 강의실의 강의나 도서관의 책을 통해서였다. 학부 때 불교 서적, 특히 유식불교 관련 책을 읽다가 유식불교의 사상적 깊이와 논리의 정교함에 놀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던지는 철학적 물음, ‘나는 누구인가’의 답, 내가 찾는 답이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예감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철학과 학생으로서 나는 처음부터 불교에만 몰두하지는 않았다. 어떤 방식, 어떤 순서로 철학을 공부할지에 대해 좀 더 고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나는 철학적 물음은 보편적 물음이니 거기에 동양과 서양이 나뉘지 않지만, 그 물음의 답을 제시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이 구분된다고 생각했다. 학부 때부터 나는 내가 동양인, 한국인이니, 동양철학을 모르면서 서양철학만 공부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철학 하는 삶을 살 거면,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함께 공부하리라고 마음먹었다. 문제는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중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인데, 현대 사회가 모두 서양화되어가고, 그런 현대 사회의 기반이 서양 근대정신이기에, 나는 우선 그걸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 안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니 나의 정신은 한국적, 동양적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서양철학은 내게 낯선 것이니까 젊을 때 기회를 놓치면 익히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서양철학을 먼저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이화여대에서 후설 현상학으로 석사를 마친 후 곧바로 독일로 유학을 갔고,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대표적인 서양 근대 철학자인 칸트를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귀국한 후에는 계명대학교에서 서양철학을 가르치면서,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의 석사 과정 그리고 다시 박사 과정을 다니면서 정식으로 불교를 공부했다. 이때에는 학부 때부터 공부해보고 싶었던 유식에 대해 마음껏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질문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했고,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불교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불교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 심오한 깊이에 놀라게 된다. 표층의식 차원의 개념적 분석이나 사변적 희론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으로 회광반조(回光返照)해 제6의식보다 더 깊고 더 넓은 심층 마음을 발견하고 그 놀라운 역량과 신비를 해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교는 팔만대장경의 교학이 곧 선학이고, 이론이 곧 실천 수행인 매력을 갖고 있다. 나는 초기 불교부터 대승불교에 이르기까지 불교적 수행의 핵심은 대상을 좇아가는 일상적 산란심을 그치고(지) 그러면서도 성성하게 깨어 관하는(관) 지관겸수(止觀兼修), 정혜쌍수(定慧雙修)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분별적 표층의식 너머 심층의 여래장, 일심, 불성을 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 화두로 촉발된 의심을 끝까지 밀어붙여 본성의 깨달음, 돈오(頓悟)에 이르는 간화선(看話禪)이야말로 지눌이 강조한 것처럼 마음의 본래자리로 나아가는 가장 빠른 길, 경절문(徑截門)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십 수년 전 어느 날 나는 7박 8일의 간화선 집중 수행에 참여했고, 의심・의정・의단을 거쳐 은산철벽과 마주하다가 화두가 타파되는 경험을 했다. 일생을 수행에 전념하는 출가 수행자들의 엄숙한 체험과는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짧고 간단한 수행 과정이었지만, 한 컵의 물로 온 바다의 물을 모두 맛본 느낌이랄까, 알 수 없는 환희심과 넘쳐나는 자비심에 세상 모든 인연을 끌어안을 수 있을 것 같은 짙은 감동의 시간을 가졌다. 이후 일상으로 되돌아오고 나서도 마음이 복잡해지거나 무거워질 때면, 나는 어김없이 마음의 본래자리로 되돌아가 그 자리에서 감사의 마음으로 세상과 나를 보고자 노력한다. 부처님과 선지식의 법력과 가피가 없었다면, 어찌 오늘의 내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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