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
마음공부
정계섭
전 덕성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모든 동물은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곤경에 처하게 된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결코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자연은 미물에게도 모성애를 부여한 것 같다.
우리 인간은 성인이 되어서도 생활고(生活苦)와 인생고(人生苦) 때문에 근심 걱정이 그칠 날이 드물다. 생활고란 각자의 업(karma)에 따라 하게 되는 몸 걱정, 사람 걱정, 돈 걱정이다. 요즘엔 나라 걱정 하나가 더 늘었다. 여기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인생고의 문제에 대해서 잠시 성찰해볼까 한다.
인생고란 생로병사의 문제이다. 인생이라는 코미디의 마지막 장은 결국 비극으로 끝난다. 죽으면 영원히 ‘내일’을 볼 수 없다. 하이데거(Heidegger)가 ‘근본 불안’이라고 부른 이유도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라고도 불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서는 결코 번뇌의 불을 끌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말한다. 이렇듯 어떤 지혜를 추구해서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고 인류는 예술과 종교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왔다. 현재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외부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지식이라면, 마음에 대해 아는 것은 지혜다. 지혜를 얻으려면 스스로 수행해서 깨우치는 ‘마음공부’를 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마음을 닦을 수 있을까?
여기에서는 아직 규칙적으로 수행하는 습관이 정착되지 않은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밝혀둔다.
마음공부를 하는 최상의 방법은 단연 명상(meditation)이다.
우선 아침에 ‘10분 명상’부터 시작해야 부담이 적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초보자는 5분도 여삼추처럼 느껴질 것이다. 아무튼 원리는 간단하다.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앉아 있으면 된다. 이때 호흡의 들숨과 날숨에 주의를 집중한다. 들이쉴 때는 들숨을 알아차리고, 내쉴 때는 날숨을 알아차린다. 이때 들숨과 날숨 사이의 공백도 주시한다. 단순하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것은,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온갖 상념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마음은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로 치닫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과거의 유감스러웠던 일에 대한 회한과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으로 시달리기 때문이다. 어느 면에서는 동물이 인간보다 더 편안해 보인다. 우울한 개구리, 불행한 다람쥐, 내일 먹을거리를 염려하는 박새를 본 적이 있는가?
수행 자체를 그리고 호흡을 즐기기만 하면 훌륭한 수행이다.
호흡을 알아차리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잡념을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깨어 있는 마음’이다.
이들은 모두 ‘현재’에 살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원망으로 괴로워하거나 내일 먹을 양식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이 진공을 싫어하기 때문에 생각의 늪에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이러이러한 생각에 빠져 있구나’ 하고 알아차려야(awareness)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에 함몰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이 그 속에 빠져 있는 생각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슬프거나 기쁘거나 어떤 감정 상태에 빠져 있을 때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마음은 인식 주체도 될 수 있고 대상도 될 수 있다. 알아차리는 쪽은 주체이고 일어난 생각은 대상이다. 알아차리면 그 생각은 사라진다.
왜 그러한가?
원리는 어렵지 않다. 화를 내면서 동시에 기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음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할 수 없어서 두 가지 다른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없다. 그래서 떠오르는 생각을 알아차리면 그 생각은 사라지게 되어 있다. 대분망천(戴盆望天), 물동이를 이고 하늘을 볼 수 없는 이치나 마찬가지다. 다만 얼마나 빨리 알아차리는가가 관건이다. 그래서 잡념이 떠오르는 것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그 잡념을 너무 늦게 알아차리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이어서 다시 호흡 현상으로 돌아와 들숨과 날숨을 관찰하면서 또 다른 생각이 떠오르면 알아차리고, 이런 식으로 계속 진행하면 된다.
이게 무슨 수행인가? 처음에는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수행하는 바가 없는 수행(無修之修)’의 원리다. 의도가 배제된 수행이란 말이다. 무엇을 얻기 위한 것도 아니고, 어떤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 수행한다면, 그것은 수행의 핵심인 ‘지금 여기’를 놓치는 것이다. 수행 자체를 그리고 호흡을 즐기기만 하면 훌륭한 수행이다. 호흡을 알아차리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잡념을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깨어 있는 마음(mindfulness)’이다. 자신이 늘 무익하고도 해로운 생각들로부터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은 진정한 영적 여행의 출발점이다. 일찍이 철인 황제 아우렐리우스도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모르는 자는 반드시 불행에 빠지게 된다”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이와 같은 마음공부를 꾸준히 하다 보면 콩나물시루에 물을 붓는 것만으로 콩나물이 자라듯이 마음 근육이 발달한다. 그렇게 되면 현상과 사물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如實知見) 힘이 생긴다.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의 현상학(phenomenology)이 내건 슬로건 ‘사태 자체로!’가 가르치는 바와 일치한다.
이런 경지에 올라서야 어떤 경계(境界: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온갖 상황)에 부딪쳐도 흔들리지 않고 ‘영원의 상 아래서’ 맞이할 수 있게 되며, 이때 비로소 선종(善終)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공부는 ‘지금 여기’에 머무르면서 매사 알아차리는 수행으로서, 단언하건대 그 어떤 공부보다 수승(秀勝)한 공부다. 과거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미래의 신기루에 빠지지 않으면서 조용히 자신을 지켜보는 일은 그 어떤 공부보다 시급하고 중요하다. 그래서 예전의 선사들은 “요즘 젊은이들은 공부는 하지 않고 책만 본다!”고 개탄했던 것이다. 조선 최대의 실학자 정약용 선생의 마지막 공부도 바로 마음공부였다.
정계섭 프랑스 파리 쥐시외(Paris -7) 대학에서 일반언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덕성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마르세유대학 IML(루미니 수학연구소) 초빙교수, 소르본 대학 응용인문학연구소 초빙교수, 파리-에스트-크레테유(Paris -12) 대학 철학연구소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말로 배운 지식은 왜 산지식이 못 되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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