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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길
『명상, 마음 그리고 심리학적 통찰』
몸을 치료하는 의사와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유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의사가 고통의 원인을 발견하고 제거하는 존재라면, 치유자는 고통의 원인과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존재가 아닐까. 불교 지도자로서 서양인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던 초감 트룽파는 치유자의 역할은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질병을 외부의 위협으로 보는 경향을 차단하는 것, 즉 질병이 ‘나의 바깥’에서 왔다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치유자의 역할이다. 환자에 대한 동료애와 공감을 통해 치유자는 ‘몸과 마음의 건강’이라는 목표 뒤에 있는 존재 스스로의 불성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치유자는 질병의 원인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환자나 내담자로 하여금 ‘영성의 상실’과 대면하게 한다. 우리의 아픔이 영성의 상실, 즉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의 상실로부터 온다는 것. 나아가 치유의 목적은 단순히 ‘건강’이 아니라 ‘에고(ego)’라는 경계 저편의 진정한 자신의 모습과 만나게 하는 것임을 일깨우는 것. 그것이 훌륭한 치유자의 역할이다
이 책은 초감 트룽파의 강연록이다. 사람들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하면서 그 대답 자체가 치유의 메시지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초감 트룽파의 경이로운 화술이 잘 드러나는 책이기도 하다. 초감 트룽파는 때로는 ‘나태’함이 자기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자세임을 설명하면서, ‘나태(slothfulness)’와 ‘게으름(laziness)’의차이를 이야기한다. 나태와 게으름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그 마음 상태는 전혀 다르다. 나태가 아무런 규칙이나 게임에도 아직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어떤 상황에도 속해 있지 않은 상태라면, 게으름은 일부러 의도적으로 고집을 부리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상태다. 나태는 아직 무언가가 스며들 수 있는 상태다. 즉 그 무엇이라도 스며들 수 있는 상태이니, 나태라는 마음 상태는 매우 긍정적으로 타자를 향해 열려 있는 것이 아닐까. 무언가가 우리 마음속으로 새롭게 스며들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고집 센 사람, 에고가 너무 강한 사람, 자신의 잇속만 차리는 사람들은 타인의 삶이 자신에게로 스며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렇게 경직된 마음 상태로는 새로운 삶을 창조할 수 없으니 때로는 타자를 향해 열려 있는 ‘아름다운 나태’를 받아들이면서 매일 새롭게, 매일 싱그럽게 삶의 에너지를 창조하면 어떨까.
초감 트룽파는 자기 자신을 향한 정직성이야말로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임을 이야기한다. 자신을 똑바로 보게 되면, 내면에서 솟아 오르는 온갖 끔찍한 상처를 보겠지만, 그것은 전혀 나쁜 일이 아니라고. 마음 깊은 곳에서 내 안의 깊은 증오와 분노를 보더라도, 그 마음을 똑바로 보려고 노력한다면, 그것은 결국 당신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길이니까. 자신을 향한 정직성은 깨달음의 출발이다. 마음 안에 붓다를 품게 되는 것, 그 출발점은 나를 향한 솔직함이다. 하루 단 10분만이라도 명상을 한다면, 그 10분은 가치가 있다고도 이야기한다. 명상을 함으로써 우리는 가슴속의 달과 머릿속의 태양에 감사할 수 있다. 달의 아름다움과 태양의 뜨거움이 내 바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도 이미 있음을 알게 된다.
마음챙김 명상을 오랫동안 꾸준히 하다 보면, 두려움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초감 트룽파는 바로 이렇게 마음챙김을 늘 실천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전사’라고 이야기한다. 그에게 진정한 전사란 엄청난 괴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 ‘나 자신과 마주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진정한 전사는 성공이나 도전 같은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싸움의 순간 속에 완전히 존재한다.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직 매 순간과 하나가 되는 용맹함. 그것이 전사의 필요조건이다. 과거에 연연하지도, 미래를 우려하지도 않으면서, 바로 이 순간에 온전히 깨어 있는 존재. 그리하여 자동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도전에 승리하는 존재.그가 바로 전사인 것이다. 전사는 또한 ‘에고’를 앞세우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며 동시에 자기 자신도 놓지 않는 존재, 타인과 함께하며 동시에 나 자신과도 함께할 수 있는 존재. 매 순간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하는 존재. 그가 바로 진정한 전사다.
진정한 마음챙김의 또 다른 시작은 ‘아침을 맞이하는 태도’에서 알 수 있다. 아침 일찍 눈을 뜰 때, ‘지겨운 하루가 또 시작되는구나. 또 고통스러운 시간이 시작되는구나’라고 느껴서는 안 된다. 아침 햇살이 눈을 간질일 때, 이불이 바스락거리고 베개가 움직일 때,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때, 그 모든 아침의 순간들이 아름답고 향기롭고 풍요롭다는 것을 이해할 때, 우리는 이 시간과 이 공간에 온전히 거주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간과 공간에, 우리의 존재 자체에 무한한 감사를 느낄 수 있을 때, 마음챙김의 축복은 시작된다. 당신이 ‘오늘은 무엇을 할까’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눈부신 생의 설렘을 느낄 수 있기를. 살아 있음의 기쁨, 존재함의 신성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매일 새로운 운명을 창조하는 진정한 전사이니까. 당신이 아침에 잠을 깨자마자 이 아름다운 우주에 초대받은 우리의 운명에 감사할 수 있기를.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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