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신경과학의 세계 5
음악과 두뇌는
마음과 지성이 교감하는 관계
석봉래
미국 앨버니아 대학교 니액 연구 교수
최근 한국의 대중음악가들과 고전음악가들이 국제적인 인기와 명성을 누리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한국인들의 음악적 재능은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데 음악적 감수성과 자질은 두뇌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음악은 두뇌의 기능을 넓고 깊게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음악적 자극을 받아들이는 두뇌의 활동을 자기 공명 영상술(MRI, Magnetic Resonance Imaging)과 같은 두뇌 영상 기법을 사용해 살펴보면 음악적 자극이 다른 자극보다 두뇌의 활동을 더욱 폭넓게 활성화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음악이 두뇌라는 큰 빌딩의 여러 창문들을 모두 밝혀 각 기관들을 활성화시키는 듯한 패턴이 두뇌 영상에서 나타난다. 신체의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 운동이 필요하다면 두뇌의 일반적인 기능 증진을 위해서는 음악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음악은 이해와 감상을 통한 인지적 자극 이외에도 그 독특한 감성적 즐거움과 감정적 공감을 통해 두뇌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음악이 주는 즐거움은 철학자들과 미학자들의 분석을 통해 자세히 설명되었는데 크게는 인지적 즐거움(음악적 주제가 변화를 겪으면서도 다시 재조직되어 긴장이 해소될 때 마치 서로 상관이 없을 것 같던 퍼즐 조각들이 어느 순간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으로 쾌감이 발생하는 것), 감정적 생리적 즐거움(음악이 주는 감정적 영감과 소름이 돋는 감동), 그리고 신체 행동적 즐거움(몸을 움직이고 춤을 추고 싶은 쾌감)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음악이 주는 즐거움은 음악에 맞추어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고 춤을 추고 싶은 운동적 쾌감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이외에 인지적 쾌감이나 감정적 생리적 쾌감도 음악이 줄 수 있는 즐거움에 중요한 요소들이다.
이러한 음악적 쾌감 중에는 음악과 깊은 감정적 교감을 통해서 머리털이 쭈뼛하게 서고 피부에 작은 돌기가 생기며 척추에 차가운 기운이 도는 현상 같은 신체적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신체 생리적 반응은 음악이 주는 매우 독특한 경험 중에 하나다. 음악 이외의 다른 종류의 예술에서 이런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50% 정도의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피부에 소름이 돋는 아름다움의 전율감이나 깊은 감동의 느낌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러한 생리적 변화로 나타나는 음악의 즐거움은 두뇌의 세 가지 다른 기관, 즉 청각 피질(auditory cortex), 전방 뇌섬 피질(anterior insular cortex), 그리고 내측 전전두 피질(medial prefrontal cortex)을 연결하는 신경섬유가 매우 발달된 사람들에서 많이 나타난다는 연구가 있다. 이들 기관이 함께 활성화할 때 피부에서는 짜릿한 소름이 돋고 척추에 한기가 도는 감동적 즐거움이 나타난다. 물론 눈물을 흘린다든지 창조적 영감이 떠오른다든지 위안과 용기가 되는 느낌이 일어난다든지 하는 정신적 교감의 경험도 나타난다. 이러한 깊고 넓은 두뇌 활동이 의미하는 바는 음악이 주는 즐거움이 단순히 소리의 패턴에 머물지 않고 주제의 이해와 감정적 풍부화 그리고 신체적 변화를 모두 아우르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되는 점은 이러한 신체의 생리적 변화가 음악적 자극이 우리 몸에 일으키는 우연한 물리적 반응이 아니라 마음과 두뇌가 음악을 받아들이고 그것과 깊은 관계를 맺는 기본적인 방식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음악은 귀를 통해 전달된 신호지만 신경과학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두뇌에서 음악은 단순한 소리의 파장을 넘어서서 몸이 된 마음과 감성이 된 지성이 소리의 울림과 교감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음악이 주는 다양한 종류의 즐거움은 최근 신경과학의 발전을 통해 그 경험적 본성의 통일적 기반이 드러나고 있다. 음악적 쾌감은 다른 쾌감들과 마찬가지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활동과 관련이 있다. 음악을 듣고 짜릿한 쾌감을 느끼는 경우 두뇌의 쾌락 센터인 측좌핵(Nucleus Accumbens)의 도파민 활동이 활발해진다는 연구가 있다. 그러나 음악적 쾌감은 단순히 측좌핵 하나로 모두 설명되지는 않는다. 음악이 주는 쾌감, 특별히 음악을 들었을 때 나타나는 감정적 절정감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음악적 즐거움은 두 가지 다른 두뇌 활동의 결과로 나타난다. 먼저 음악이 감정의 최고점을 향해 갈 때 생기는 기대감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다음으로 음악의 절정감을 만끽할 때 나타나는 폭발적 쾌감이 있다. 이 두 종류의 음악적 쾌감은 서로 다른 두뇌 기관의 활동을 통해 관측되었다. 첫 번째 즐거움은 순차적으로 나타나는 음악적 패턴이 절정을 예상하며 나아갈 때 나타나는 기대감이 주는 즐거움인데 이것은 미상핵(Caudate Nucleus)이라는 두뇌 기관의 활동과 연계된 것으로 관찰되었다. 반면에 음악의 클라이맥스에서 나타나는 감정적 절정감은 측좌핵의 활동과 연결된 것으로 관찰되었다. 그러니까 두뇌의 시각으로 볼 때, 우리 마음은 음악적 즐거움을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기대의 즐거움과 절정감의 즐거움은 보통 음악적 즐거움에서 서로 혼재되어 있지만 신경과학의 세밀한 관찰을 통해서 이제까지 분명히 구분하기 어려웠던 즐거움의 두 가지 종류를 구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즐거움의 이중적 성격은 욕구의 두 가지 과정, 즉 원함(wanting)과 좋아함(liking)과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의 마음에는 쾌락에 대한 원함과 좋아함의 두 가지 다른 과정이 있다. 이러한 두 가지 과정은 배측 창백(Ventral Pallidum)과 측좌핵에서 원함의 구역과 좋아함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관찰되었다. 원함은 대상에 관해 기대하고 기억하고 접근해 소유하려는 동기를 일으키는 과정이다. 이것은 욕구의 대상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과정이며 그런 이유로 인해서 경제적 가치에 관한 우리의 선택과 관련이 있다. 원함과 구매 의욕은 대체로 연관 관계가 강하다. 그러나 좋아함은 대상의 일정한 특징이나 속성과 상호작용하고 그 의미를 실제로 즐기는 것이다. 좋아함은 경험 그 자체에 집중하며 탐미적 체험과 관련이 있다. 이 두 가지 과정은 보통 함께 일어나지만 이 둘이 각각 서로 다른 독립적인 활동을 하게 되면 욕구와 쾌락에 대한 서로 상반된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쾌락에서 원함이 강화되고 좋아함이 약화되면 식탐이 된다. 배가 불러서 음식을 통한 즐거움은 더 이상 없는 경우에도 음식에 대한 소유욕은 (즉 원함의 욕구는) 남아 있어서 계속 음식을 찾게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배가 충분히 부르면 맛의 즐거움은 감소하지만 그래도 맛에 대한 기대가 음식을 다시 찾도록 만드는 것이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이런 상태를 중독의 한 형태로 본다. 중독의 행동 양태는 원함과 기대는 강화되지만 즐거움이 변형된(주로 감소하는) 패턴을 보인다. 많은 중독증(약물 중독, 게임 중독, 도박 중독 등)의 패턴이 이러하다. 그 결과 중독의 악순환이 발생한다. 즉 만족을 기대해 원함의 대상을 찾고 또 찾지만 실제로는 즐거움이 많이 발생하지 않아서 또 끊임없이 찾고 또 찾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필자가 이러한 두 가지 종류의 즐거움 혹은 두 가지 종류의 두뇌 과정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이 두 가지 종류의 활동이 욕구와 쾌락에 대한 인간의 서로 다른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음악을 듣고 즐기는 것은 음악에 대해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좋아함이 집착과 과도한 기대로 향하면 오히려 헤어 나올 수 없는 함정이 될 수 있다. 이것은 불교 사성제 중 두 번째 진리인 집제(集諦, 고통과 번민의 원인을 집착적 욕망과 맹목적 갈망으로 보는 것)와 관련이 있다. 인간이 필요한 욕구를 충족하는 것은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욕구가 집착적인 욕망을 일으키면 원함(wanting)이 즐거움(liking)을 빼앗고 오로지 기대와 대상화와 소유의 방식으로 욕구를 해결하고자 하는 성향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고통과 번민의 시작이다. 원함과 즐거움이 건강한 균형을 이룰 때 음악이 주는 아름다움이 의미 있는 즐거움이 될 것이다. 신경과학은 이러한 음악이 주는 즐거움의 구체적 성격을 두뇌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좋은 음악은 즐거움의 열린 감각이 기대감과 잘 어우러질 때 더욱 감동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음악은 두뇌를 폭넓게 활성화시키고 몸과 마음을 모두 열린 즐거움을 통해 성장시키는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다.
석봉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애리조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신경과학 박사 후 과정을 거쳐 현재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앨버니아 대학교(Alvernia University)에서 니액 연구 교수(Neag Professor of Philosophy)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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