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이란 무엇인가? 3
기도와 지혜는
무슨 관계인가?
지엄 스님
전 화엄사 승가대학 강주
균여(均如) 대사께서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의 〈청전법륜가(請轉法輪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 넓은 법계 안의 부처님 회상에
나는 또 나아가서 법의 비(法雨)를 빌었더라.
무명의 흙 깊이 묻고 번뇌의 열로 달여냄에 의해
착한 싹을 못 기르는 중생의 밭을 적셔주심이여.
아! 보리의 열매가 온전한 마음 달이 밝은 가을밭이여!
저 넓은 법계의 부처님 모이신 곳에
저는 진심으로 우러러 감로의 법우(法雨) 내리시기를 빕니다.
무명토(無明土)를 깊이 묻고 번뇌의 열(熱)로 달여내매
좋은 싹(善芽)을 기르지 못한 중생의 마음 밭을 젖게 해주옵소서.
아! 보리의 열매가 결실을 맺는 깨달음의 달(覺月) 밝은 가을이여!
- <청전법륜가> 해독은 김완진, 김영동의 연구를 참고함.
이 게송에서 말하는 것은 법의 비를 비는 것이 지혜를 구하는 기도이며, 보리의 열매는 일체 종지라는 것이다. 이곳에서 논하는 기도는 신행을 실천하는 방법으로서의 기도이며, 신행은 신해행증(信解行證)의 과정에서 처음 발심해 최상승에 이르러 성불하기까지의 보살행을 이끌어가는 동력이다.
티베트 불교계와 동북아시아 불교권에서 많이 행해지는 기도는 귀의 발심에서 성불에 이르기까지 바른 신심을 생기게 하고 발전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우리나라 재가 신도들은 기복 신앙으로서의 기도를 많이 해 세간의 소원 성취를 비는 기도를 올리는 경향이 있었지만, 근래에는 사찰 불교대학의 교육을 통해 바른 신심을 내고 보리심을 실천하는 기도를 하는 추세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보리의 열매인 지혜를 얻기 위한 기도는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일까?
첫째, 기도의 동기와 목적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큰 자비심을 내어 성불하겠다고 맹서를 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기도의 대상 경계는 불보살과 자신의 스승이다. 삼보 또는 구체적으로 석가모니불과 관세음보살이다.
셋째, 불자들은 기도의 준비 단계로서 귀의계를 받고 먼저 다음과 같은 칠지공을 수행해야 한다.
① 정례지다. 이는 스승의 세 걸음 앞에서 공경스럽게 절을 올리는 것이다.
② 공양지다. 보배로운 공양물을 마련해 정해진 불단에 올리는 것이다.
③ 참회지다. 무시 이래로 쌓은 죄업을 참회하고 다시 짓지 않을 것을 맹세하는 것이다.
참회지에 대한 기도의 예문을 보면 『입보리행론』 「업장참회품」에서 “부처님께서 자비로써 제가 지난날에 지은 일체 죄업을 용서해주시기를 기도하옵니다. 그것은 착한 행위가 아니므로 저는 앞으로는 다시 짓지 않을 것을 맹세하옵니다” 라고 하니 이는 참회를 구하는 간절한 기도다.
④ 수희지다. 남의 수행 공덕을 기뻐하는 것이다.
⑤ 법륜 굴리시기를 청하는 것이다.
⑥ 부처님께 열반에 들지 마시고 중생을 제도해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다.
⑦ 회향하는 것이다. 닦은 선근 공덕을 다른 중생이나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다.
기도의 방법은 각 나라의 불교 전통과 각 종파에 따라 특징이 있어 전문 수행자와 불교 학자의 연구와 토론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생각하는 관점을 아는 대로 들어 이야기하겠다.
성불의 첫걸음은 신심이니, 믿음은 여래지(如來智, 부처님의 지혜)에 이르게 한다. 신심을 통해 발심을 하는데 발심은 출리심(出離心, 윤회에 대한 모든 욕망으로부터 마음을 다른 쪽으로 완전히 전환하는 것)을 성취해 생긴다. 출리심을 발하기 위해서는 수명무상을 사유해 무상을 체득하고 인과의 도리에 대한 믿음을 내야 하며, 또한 육도윤회의 고통을 사유해 해탈의 필요성을 절절하게 느껴야 한다.
해탈을 방해하는 아집은 무시이래로 익숙해지고 쌓여 고착화된 미세 습기로, 분별하고 사유하는 유위행으로는 끊기 어렵다. 공성을 증득하는 것이 최선이나, 중·하근기(근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대로 발동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중생을 분류한 것으로 상근기·중근기·하근기가 있다)에게는 어려운 관문이니 스승의 가피를 얻는 간절한 기도로 사유를 초월하는 지혜를 얻는 길이 좋은 방편이다.
삼보와 스승의 은덕을 생각하고 은혜를 깊이 알며, 스승을 생각할 때 몸에 전류가 흐르듯 하고 뜨거운 눈물이 솟구치는 정성으로 스승께 귀명해 기도를 올리면 스승과 상응해 마음이 청정해지고 일심 경계에 들게 된다. 삼보와 스승께 오만심이 없는 공경심으로 마장을 제하고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가피를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연화생 대사께서는 장애 소멸의 기도를 올리는 『바르체람쎌』(『티베트 사람들의 보리심기도문』)에서 설하시되,
자비로써 저에게 가피를 내려주소서!
사랑으로 저희들이 도에 들어가게 하시고
지혜로써 성취를 이루게 하소서.
위신력으로 저희들 장애를 소멸해주소서.
밖에서 오는 외부 장애를 소멸해주시고
안으로부터 오는 내부 장애를 소멸해주시며
비밀한 장애를 법계로 사라지게 하소서.
기도는 스승의 마음과 하나 되어 지혜를 얻고 성불하고자 함이니, 지혜를 얻기 위해서 무명애욕으로 인한 아집으로 생기는 번뇌를 항복받아야 한다. 무시이래로 익은 업력을 항복받기 위해서는 보리심을 내야 하고 자타상환(自他相換)과 같은 방편을 수행해 이기심을 조복(몸과 마음을 고르게 해 악한 생각이나 행동을 다스리는 것)해야 한다. 이를 행하는 방법은 『입보리행론』에 처음부터 끝까지 설해져 있다.
이기심을 극복하고 번뇌를 돌려 도의 묘용으로 삼는 이타심, 보리심(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마음)의 실천 방법은 다음과 같다. 보리심을 내려면 먼저 중생의 고통을 대신하는 수행을 하고 중생에 대해 진실한 부모의 감정이 생기도록 수련해야 한다. 또한 스승을 의지하고 스승의 경건한 모습을 관상하며, 충만한 신심으로 “스승님! 정성을 받아주세요” 또는 “스승님께서 저의 신심을 알아주시리!”라고 기도를 올린다.
수행자가 좀 모자라도 믿음이 굳건하면 수행을 통해 지혜를 얻게 되지만 분별하고 분석하는 사람은 깨달음의 지혜와 거리가 멀어진다. 법성의 뜻을 잘 이해하는 지혜로운 구도자 앞에 깨달음이 가까이 있다고 조사 스님들은 말씀하신다. 법성의 뜻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공성을 깨달아야 하며, 공성을 깨닫는 지혜는 출리심의 성취와 보리심의 실천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기도의 동기를 정하고 준비 단계를 거쳐 바른 방법으로 기도를 올린 뒤 얻은 공덕은 잘 회향해야 한다. 『입보리행론』 「회향품」에 설하신 바와 같이, “보살은 일체중생이 여여하게 이익 얻기를 원합니다. 일체 유정 중생이 구세주의 연민과 호념 얻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 올리며 회향한다.
회향은 자신의 기도 공덕을 중생 고통을 구제하는 중생 해탈로 돌려놓는 것이다. 집착이 없는 몸과 입과 뜻의 삼륜으로 본래 성품이 공한 중에 해야 한다. “불보살과 조사대덕들의 회향을 본받으며 나도 또한 이와 같이 회향합니다”라고 회향문을 염송하며 기도를 마무리 짓는다.
지엄 스님 화엄사에서 종견화상을 은사로 사미계를, 통도사에서 월하화상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화엄사 승가대학 대교과를 수료하고, 봉암사 하안거 이래 14안거 성만했다. 중국 남경대학 종교학 석사 수료 및 동 대학에서 『원측사상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화엄사 승가대학 강주 및 해인사 승가대학 강사, 중국 상해 용화선원 주지를 역임했다. 번역서에 『불자가 행해야 할 37가지 가르침』, 『대원만수행요결』, 『입보리행론강해』 등이 있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