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게 드리는 예불,
채식으로 한 걸음 떼기
이현주
한약학박사, 한약사
한약국에는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찾아온다. 나는 그들의 몸과 마음의 통증에 대해 귀를 기울이면서 보다 근본적인 통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자연스럽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통증에는 개개인의 아픈 스토리텔링이 있었다. 반복되는 패턴의 스토리텔링을 들으면서, 사람들의 몸과 삶에 드리워진 통증의 패턴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집단 무의식에 가까운 인간 의식의 왜곡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들의 인생에 대한 부정적인 정서를 정화시킬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편안하게 대할 수 있지 않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채식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서를 정화하는 좋은 방법이다. 채식을 통해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고, 더욱 평안해지며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 도달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내가 채식을 시작한 이유도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이유 없는 불안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잠 못 드는 밤이 많았던 시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채식이 내게는 좋은 스승이 되었다. 나는 그때 100일 정도의 채식만으로도 대단한 변화가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마다 100일의 기간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테지만, 나의 경우엔 채식이 그 해답이었던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환경문제나 반려동물들에 대한 사랑, 또는 체중 감량을 위해 채식에 관심을 갖지만, 채식은 역사적으로 영적 수행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선택되어왔던 명상적 삶의 방식이었다.
현대 물리학에서는 우주 전체가 에너지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존재는 서로 다른 진동수로 구성되었으며 얼마나 정밀한가에 따라 상호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달라진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음식물도 고유의 진동수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 몸에 들어와 각기 다른 영향을 미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의학인 아유르베다에서는 모든 존재가 세 가지의 우주적 진동의 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첫 번째 우주의 힘은 사트바구나(Sattvaguna)라 불리는데, 영적으로 순수하고 사랑의 에너지, 기쁨과 평화, 고요함을 느끼게 되는 정밀한 파동의 에너지다. 이러한 선한 힘을 주는 음식에는 좋은 에너지가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영적인 수행자들은 이러한 음식을 먹어야 수행을 계속할 수 있다. 몸을 건강하게 만들 뿐 아니라 마음과 정서적 안정, 나아가서 영적인 각성에 이르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음식의 종류에는 과일과 채소, 콩, 견과류, 통곡류와 유제품, 향신료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 공장식 축산 방식으로 사육되는 소와 양, 염소 등에게서 착취하는 우유에는 사트빅 에너지의 진동이 사라지고, 무력감과 우울, 불안, 스트레스, 분노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친환경 재배 방식으로 농부가 정성을 다해 재배하거나 직접 텃밭 농사를 지어 수확한 채소들은 우주적으로 고양된 에너지가 가득하고, 이러한 음식을 먹을수록 건강해질 뿐 아니라 보다 순수한 상태가 된다.
두 번째 우주적 힘은 변화하는 동적인 에너지로 매우 활동적이며 변화무쌍한 운동에너지를 가진 라자구나(Rajaguna)이다. 이 힘은 신경이 예민하고 활동적이며, 쉽게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불안정해서 마음의 균형을 잃기 쉽고 정서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를 초래하기 때문에 영적인 수행자들은 삼가야 할 음식으로 분류된다. 여기에 속하는 음식으로는 커피, 홍차와 같은 카페인류, 탄산수, 초콜릿, 고추 등의 매운 음식들이 포함된다. 주로 기호식품에 해당되는 음식들로 리프레시를 위해 가끔 즐길 수는 있으나 너무 많이 먹으면 마음의 균형을 잃고 정서적 안정감을 깨기 쉬우니 절제하는 것이 좋다.
세 번째 우주적 힘은 우리를 나약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에너지로 타모구나(Tamoguna)라고 불린다. 생명이란 동적인 자유로움과 정적인 평온함의 조화와 균형 속에서 존재하는데, 이 두 가지 힘이 아닌 무기력하고 정체된 상태가 되면, 생명은 죽음에 빠지게 된다. 이 힘이 우리의 마음에서 작용하게 되면, 우리는 활기를 잃고, 의욕을 상실하며 창조적 에너지는 사라지고 퇴보한다. 여기에 속하는 음식들로는 고기, 생선, 달걀, 버섯, 알코올, 담배, 약물, 지나치게 발효된 음식, 상한 음식 등이다. 일반적으로 영양이 많은 단백질 식품으로 알고 있는 육식과 생선, 달걀이 우주적 힘의 분류로 보면,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음식군에 속한다. 즉 고기를 많이 먹을수록 사람들은 둔해지고 무기력해진다.
우리는 이 세 가지 분류의 음식들을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다고 배웠다. 그러나 마음을 안정시키고자 하고, 창조적이고 건강하며, 순수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면 ‘사트바구나’에 속한 음식 위주로 채식을 하는 것이 좋다. 또한 육식을 멀리하고 자극적인 기호식품도 절제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그러나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 부담을 갖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에 맞는 음식 위주로 식사하면서 다른 군에 속한 음식 섭취는 점차 줄여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절제’라는 말은 ‘금기’와는 다르다. 아무리 좋은 에너지를 가진 음식이라도 과식하거나 적절한 시간이 아닐 때 먹으면 우리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식욕에 대한 지나친 억압은 정신적 심리적 즐거움을 빼앗아 정서적인 결핍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절제한다는 것은 조화와 균형을 염두에 두고 적절하게 섭취하라는 말이다. 특정 음식군에 대한 탐닉 또는 금기를 우선하기 전에 어떻게 조화와 균형을 잡아나갈 것인가에 대한 모색이 바로 건강을 챙기는 방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비건을 선택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공식품 위주의 채식을 하거나, 탄산수, 커피, 초콜릿 등의 기호식품을 너무 많이 섭취하는 ‘정크 비건’들도 있다. 이들의 식단은 살생을 통해 얻어지는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는 비건이라고 부를 수 있으나, 건강하고 평화로운 에너지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것도 강박적이 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늘 미완의 존재인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내 몸에 들어오는 것이 곧 나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을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매일 내 몸으로 들어오는 음식을 기록해보는 것이다. 한 달 정도 솔직하게 식단 일기를 적어보면, 생각보다 많은 음식이 내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아도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또한 스스로 부끄러워지거나, 무언가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도 찾아온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오는 마음을 따라, 한 걸음씩 떼면 좋겠다.
처음에는 하루에 한 끼, 또는 일주일에 하루부터 시작해보는 것도 좋다. 그것도 어렵다면, 평소의 밥상에서 한 가지 메뉴만이라도 고기 대신 의식적으로 두부 등으로 바꾸어 요리해보는 건 어떨까? 이렇게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아름답지 않을까?
이현주 한약학 박사. 동물성 한약재를 쓰지 않고 순식물성 한약과 채식 식단만을 처방하는 독특한 한약국(기린한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몸과 마음의 셀프 힐링 방법을 배우는 ‘오감테라피 학교’도 운영 중이다. ‘고기없는월요일(Meat Free Monday)’의 한국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채식 연습』, 『맛있는 채식』, 『행복한 레시피』, 『기린과 함께하는 한방채식 여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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