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윤회와 열반의 갈림길이다]
죽음을 뛰어넘는 길 죽음은 태어날 때 생명과 함께 받은 선물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명 있는 존재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안고 살아간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무엇을 하더라도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불교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포함한 모든 괴로움을 소멸시키기 위해 제시된 가르침이다. 사성제로 대표되는 초기 불교의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인 멸성제, 즉 열반의 실현에 있다. 열반이란 불사(不死, amata), 적정(寂靜, santi), 무사…
생물학적 기능이 크게 저하되는 것을 ‘노화’라고 한다. 인간이라면 다들 두려워하는 사태다. 그걸 피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 노화 방지(anti-aging)를 연구하고, 노쇠 현상을 가리는 수많은 방법을 사용한다. ‘늙음’이나 ‘노화’가 마치 질병이라도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선 나이 많은 분들을 ‘어르신’이라며 최대치로 높인 말로 칭하지만, 그 ‘어르신’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르신’은 정말 경칭(敬稱)일까? 나이가 좀 든 연후에는 누가 나이 물으면 ‘실례’라고 비난한다. 나이 든 상태에 존경…
더 보기 »신행이란 무엇인가?
균여(均如) 대사께서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의 〈청전법륜가(請轉法輪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 넓은 법계 안의 부처님 회상에
나는 또 나아가서 법의 비(法雨)를 빌었더라.
무명의 흙 깊이 묻고 번뇌의 열로 달여냄에 의해
착한 싹을 못 기르는 중생의 밭을 적셔주심이여.
아! 보리의 열매가 온전한 마음 달이 밝은 가을밭이여!저 넓은 법계의 부처님 모이신 곳에
저는 진심으로 우러러 감로의 법우(法雨) 내리시기를 빕니다.
무명토(無明土)를 깊이 묻고 번뇌의 열(熱)로 달여내매
좋은 싹(善芽)을 기르…
― 수행자가 보는 무아와 윤회
[불교의 오래된 질문, 무아와 윤회]
초기불교 경전에 나타나는 윤회(輪廻, saṃsāra)는 지속되어야 할 축복이라기보다 벗어나야 할 고통의 순환이다. 수행의 궁극적 이상도 더 나은 모습으로 계속 존재하는 데 있지 않고 생과 사의 반복에서 해탈(解脫, vimutti)하는 데 있다. 그런데 오늘날 윤회를 믿고 싶은 마음에는 개인적 생존에 대한 바람과 죽음 이후에라도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인간적인 소망이 함께 들어 있어 보인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면 왜 계를 지키고 자비를 실천해야 하느냐”고 묻기…
'자아'에 관한 최신 과학, 그리고 2,500년 앞서간 부처님의 혜안
[불교의 오래된 질문, 무아와 윤회]
매년 이맘때가 되면 우리는 "가을이 왔다"고 말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가을'이라는 물건이 어딘가에 실재하다가 우리를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기온이 내려가고, 해가 짧아지고, 바람이 서늘해지고, 잎이 물드는 수많은 변화가 함께 일어날 때, 우리 마음이 그 모두를 '가을'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을 뿐이다. 가을이라는 개념은 실체가 아니다. …
[불교의 오래된 질문, 무아와 윤회]
“무아(無我)라면서 누가 윤회하는가?” 불교를 접한 이라면 한 번쯤 부딪히는 물음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붓다는 왜 하필 ‘나(我, ātman)’를 문제 삼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붓다 재세 시 인도는 우빠니샤드로 대표되는 아뜨만(ātman)설이 사상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몸과 마음의 변화 뒤에 변하지 않고 머무는 자아가 있으며, 그것이 곧 우주의 원리 브라흐만과 하나라는 가르침이다. 『뱀의 비유 경』(MN 22)에서 비판하는 “저것이 세계이고, 저것이 자아이다. 나는 …
[불교의 오래된 질문, 무아와 윤회]
1. 들어가는 말무릇 산 것은 생존을 추구한다. 진시황뿐만 아니라 현대인도 불로초와 영생을 꿈꾸고 있으며, 사후생에 관련된 신앙 또한 여전히 뿌리 깊다. 부처님께서는 이에 관하여 ‘윤회와 과보’라는 실상으로 분명하게 가르치셨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으면 그뿐, 사후생 같은 것은 없다’는 유물론적 단멸론이나, ‘불멸의 영혼’을 전제하는 아브라함계 종교 및 힌두교의 견해가 세상에 훨씬 널리 유포되어 있다. 과연 윤회는 실재하는가? 그리고 고정된 자아가 없다면,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윤회한다는 …
[시간의 흐름은 느리게 빠르게 조절할 수 있을까?]
불교의 시간은 무상의 시간이다. 시간의 방향은 연기의 방향이다. 시간의 순서는 식의 순서이다.
무상의 시간 불교는 찰나의 시간부터 겁의 시간까지를 다룬다. 겁의 시간은 우주의 팽창과 수축에서 볼 수 있다. 경전을 보면 우주의 팽창과 수축은 빛으로 된 천신인 광음천의 수명인 8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겁은 가로, 세로, 높이가 1요자나(yojana), 즉 11km인 정육면체의 바위를 100년에 한 번씩 비단 옷자락으로 스치고 지나가서 그 바위가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라고 비유로만 설명한다…
보리달마와 양무제의 대화공덕(功德)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불교에서 좋은 행위로 얻게 되는 좋은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과는 다르게 『경덕전등록』 제3권과 『벽암록』 제1칙에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서술되어 있다. “보리달마는 527년 중국 남쪽 지방에 도착하자마자 양무제의 초대를 받아 도읍이었던 난징으로 갔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양무제는 보리달마에게 이렇게 물었다.‘옥좌에 오른 뒤 짐은 셀 수 없이 많은 사찰을 건립했으며 경전을 수없이 간행했고, 또한 수많은 승려들을 먹여 살렸노라. 이만하면 꽤 공덕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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