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소중함을 노래하는 책들|정여울 작가의 이럴 땐 이 책을!

음식의 소중함을 노래하는 책들
『선재 스님의 사찰음식』, 『계절을 먹다』, 『밥 먹다가, 울컥』

정여울
작가

음식이야말로 우리 모두를 이어주는 매개체라는 사실 때문에 여전히 온갖 음식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맛집 지도와 ‘먹방’으로부터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음식에 대한 아름다운 책들을 읽으며 나는 ‘맛집’에 대한 과도한 호기심과 ‘먹방’의 탐닉, 식탐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사뭇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그저 우리 몸과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음식 그 자체를 생각하게 된다.

선재 스님 지음, 디자인하우스 刊, 2011

◦ 사찰음식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따스하고 강력한 포교의 비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책, 『선재 스님의 사찰음식』

넷플릭스 최고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인 <셰프의 테이블>에서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정관 스님의 사찰음식 이야기였다. 인간이 개발해온 온갖 요리들이 주로 양념을 더하고, 요리 기구를 발전시키고, 재료의 가짓수를 늘리는 ‘플러스의 음식’이자 ‘풀코스를 지향하는 음식’이었다면. 정관 스님의 음식은 철저히 ‘마이너스의 음식’이자, ‘풀코스가 아닌 여백이 더 많은 음식’이다. 정관 스님이 푸성귀 하나하나까지 직접 키워 정성 들여 만든 음식에는 고기나 파, 마늘 같은 자극적인 재료만 없는 것이 아니다. 정관 스님의 음식에는 ‘에고(ego)’가 없었다. 에고란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내 브랜드를 홍보해서 성공하고자 하는 마음, 소셜 미디어의 조회수를 늘리고 싶은 마음. 정관 스님의 음식에는 그런 욕심이 전혀 없었다. 다른 셰프들은 저마다 레스토랑을 경영하고 있거나 ‘미슐랭 별점’을 하나라도 더 받고 싶어 하기 때문에 아무리 순수한 사람이라도 ‘에고’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정관 스님은 음식점을 경영하지도 않고, 음식으로 돈을 벌고 싶어 하지도 않기 때문에 ‘오직 몸과 마음을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 그 자체만을 생각하는 순정한 집중력을 보여준다. 정관 스님은 마치 아름다운 수묵화를 그리듯, 새하얀 접시 위에 자연의 아름다움, 생명의 소중함, 구도자의 열정을 그려내고 있었다. 이런 사찰음식의 풍요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책이 바로 『선재 스님의 사찰음식』이다. 이 책의 독자들은 사찰음식을 통해 아토피를 치료하기도 했다고 고백하고, 사찰음식은 채소로만 만들어서 맛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서 해보니 너무 맛있었다며 감탄하기도 한다. 맛 좋고 몸에도 좋은 사찰음식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따스하고 강력한 포교의 비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이혜숙 지음, 글항아리 刊, 2023

◦ 할머니에게서 엄마로, 그리고 딸에게로 전해져 내려오는
옛사람들의 요리법에 깃든 다채로운 생의 지혜, 『계절을 먹다』

이혜숙의 『계절을 먹다』에서는 ‘제철 음식’을 즐길 줄 알았던 옛사람들의 온갖 지혜가 총출동한다. 한겨울에도 여름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된 현대 사회에서는 농사를 과학이나 산업으로 바라보게 되었지만, 옛사람들에게 농사는 일단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는 절박한 자급자족의 문제였다. 주부의 가사노동에는 온갖 농산물을 기르는 정성뿐 아니라 수백 가지 음식들을 매일 만들어 먹이고 김장이나 고추장, 된장 같은 장기 보관 음식까지 만들고 관리하는 엄청난 지혜와 기술이 포함되어 있었다. 『계절을 먹다』에는 ‘엄마’라는 한 사람이 얼마나 엄청난 가짓수의 레시피를 간직한 사람이었는지, 할머니에게서 엄마로, 그리고 딸에게로 전해져 내려오는 옛사람들의 요리법에는 얼마나 다채로운 생의 지혜가 깃들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에피소드는 밖에서 사 먹는 밥의 천편일률적인 맛에 지쳐 있던 직장인이 우연히 시골길을 지나다가 모르는 할머니가 드시고 계신 ‘평범한 시골 밥상’을 한 번 얻어먹고, 그 밥맛을 잊지 못해 직장 동료들까지 데려와 매일 그 할머니에게 밥값을 치르고 점심을 얻어먹는 장면이었다. 할머니가 자신이 먹던 밥과 달리 더 많은 반찬을 해서 좀 더 화려한 밥상을 차려주었더니, 그 사람은 ‘이런 푸짐한 밥상 말고, 할머니가 가장 간단하게 차려 드시던 바로 그 밥상’을 원했다는 이야기가 참으로 좋았다. 반찬 가짓수를 제한해 할머니의 노동을 덜어드렸던 것이다. 할머니 돌아가시면 상여는 우리가 짊어지겠다는 든든한 약속도 잊지 않는다.

박찬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刊, 2024

◦ 작가 스스로의 ‘음식에 대한 온갖 추억의 스토리텔링’을 담은 책,
『밥 먹다가, 울컥』

박찬일의 『밥 먹다가, 울컥』은 오랫동안 셰프로 살아오면서 지구상의 온갖 음식을 맛보고, 요리하고, 음식에 대한 글을 썼던 작가 스스로의 ‘음식에 대한 온갖 추억의 스토리텔링’이 담겨 있다. 쟁반에 음식을 담아 4층, 5층으로 이고 시장통을 누비는 장사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맛있게 먹었던 ‘천초’라는 해초 요리가 알고 보니 해녀들의 발을 붙들고 놔주지 않는 바닷속의 위험 신호였음을 알게 되고 차마 예전처럼 좋아할 수 없게 된 이야기, 한때 기술자였던 친구는 이제 수십 년 째 곱창을 볶으며 생계를 꾸려나가고 ‘글쟁이’였던 박찬일 셰프는 파스타를 볶으며 살아가는 이야기. 그 모든 이야기 속에는 ‘먹고 산다’는 인간의 뿌리 깊은 공통분모가 도사리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잘 먹지 않으면 잘 생각하고, 잘 사랑하고, 잘 잘 수 없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제대로 먹지 않으면 잘 생각할 수도 없고, 잘 사랑할 수도 없고, 잘 잠들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인간이기에, 우리는 잘 먹고, 잘 생각하고, 잘 사랑하고, 잘 잠들기 위해 하루하루를 정성스럽게 빚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환자를 치료할 수만 있다면 굳이 약을 처방하지 말라고도 했다. 복잡한 약물이 아니라, 음식만으로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것이 최고의 의술임을 그는 알았던 것이다.

알렉스 아탈라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가장 강력한 소셜 미디어, 그것은 인터넷도 아니고 페이스북도 아니고 음식입니다. 음식은 모든 인간을 연결합니다.” 바로 이 피할 수 없는 진실, 즉 음식이야말로 우리 모두를 이어주는 매개체라는 사실 때문에 여전히 온갖 음식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맛집 지도와 ‘먹방’으로부터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음식에 대한 아름다운 책들을 읽으며 나는 ‘맛집’에 대한 과도한 호기심과 ‘먹방’의 탐닉, 식탐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사뭇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그저 우리 몸과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음식 그 자체를 생각하게 된다. 아울러 혼잣말로라도, 마음속으로라도, 그 어떤 곳에서든 결코 반찬 투정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상에 내려진 모든 음식에는 자연과 인간의 축복이 깃들어 있기에, 그 음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결코 잊지 않아야 하기에. 또한 ‘나는 요리를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내 마음을 괴롭히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간편한 배달음식이나 살짝 데우기만 하면 되는 밀키트라도 얼마든지 좋으니 그저 소중한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미소 짓는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누구나 누릴 자격이 있는 인생의 지복(至福)임을 잊지 않았으면. 지복이란, 그 위에는 더없는 행복, 그보다 더한 기쁨은 찾기 어려운 행복이라고 하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입 안에 침을 고이게 하는 향기로운 음식, 그리고 소중한 단 한 사람. 그 두 가지만으로도 지상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오늘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정여울|작가. KBS라디오 ‘정여울의 도서관’ 진행자.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 『문학이 필요한 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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