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
요즘 그런 거 없소!
정형수
드라마 작가
신춘문예 준비하려 절집에 간 나…그 절에서 소설 쓰는 스님 만나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니 벌써 30여 년 전이다. 약간 색이 바랜 사진 같은 기억이지만, 지금도 새벽 선잠에서 깨어나 올려다본 밤하늘의 샛별처럼 선명하다. 가을이었다. 그때도 시인의 꿈을 버리지 못한 나는 인연이 있었던 한 노스님의 작은 토굴에서 두 달쯤 기거하다 나와 통영으로 향했다. 좀 더 조용한 산사로 가 신춘문예에 응모할 마지막 원고를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물론 노스님의 추천서도 있었다. 약간 민망하긴 했다. 무슨 고시 공부도 아니고 신춘문예 준비하려고 절집이라니….
통영의 어느 절집에 도착하니 오후 3시쯤 되었다. 그리 크지 않은 말사이긴 해도 세월의 더께가 느껴지는 법당. 그리고 그 절에 주석하시며 근대 불교의 선맥을 이어간 효봉 스님의 동상은 내 허리를 곧추세웠다. 종무소를 찾아갔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찾아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데, “어떻게 오셨소?”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안경을 낀 젊고 마른 스님 한 분이 약간 비탈진 언덕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정확히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청바지에 배낭 하나 덜렁 메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모습이 불자 같아 보이지도 않고, 등산객 같아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혹시 좀도둑 아닐까 의심스러워하는 눈빛이기도 했던 것 같다.
나는 노스님이 써준 추천서를 보여드리려다가, 젊은 스님의 눈빛과 말투가 거슬려 그냥 대답했다.
“방 좀 얻으려고요.”
“방? 뭐 하려고요?”
“공부하려고요.”
“하이고, 무슨 쌍팔년도 아니고, 요즘 누가 절집에서 공부합니까? 그리고 처사들한테 공부하라고 방 내주는 그런 절집 없습니다. 빈방? 요즘 그런 거 없소!”
스님은 참으로 쌀쌀맞았다. 아니, 방이 없으면 없는 거지, 무슨 공양하고 포행하다 새똥이라도 맞은 것처럼 퉁명스럽게 말씀하실 건 다 뭔가… 나는 굳은 얼굴로 합장하고 돌아섰다. 그때 다시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근데 무슨 공부하려고 그러시오?”
돌아서서 나도 퉁명스럽게 답했다.
“글공부하려고요.”
“글공부?”
하긴 의외였을 것이다.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CPA(공인회계사) 시험도 아니고, 글 쓰는 것도 고시로 치나? 했을 것이다.
“무슨 글공부요?”
“신춘문예 준비하려고요.”
스님은 그제서야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국문과나 뭐 그쪽 출신이오?”
스님 목소리는 어느새 한결 부드러워졌다.
“예, 문예창작학과 출신입니다.”
“잠깐 기다려보시오” 하더니 스님은 어디론가 갔다가 5분도 안 되어 돌아왔다.
“빈방 있소!”
조그마한 방이었지만, 정갈하고 따뜻한 방이었다. 통통한 몸매가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를 닮은 공양주 보살님은 글쓰기 위한 탁자를 하나 내어주시면서, 부엌이 가까우니 배고프면 언제든 와서 이야기하라고 하셨다. 젊은 스님의 사형인 주지 스님께 인사드리고, 저녁 공양까지 하고 나니, 여독이 풀리며 잠에 곯아떨어졌다. 그런데 아침 공양에 젊은 스님이 보이지 않았다. 보살님께 여쭤보니, 어제저녁 공양을 마치자마자 며칠 자리를 비운다며 급히 나가시더란다. 어쨌든 나는 그날부터 오랜 세월 써왔던 습작 시들을 다시 다듬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스님은 사흘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스님은 두툼한 서류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부끄럽소만 내가 쓴 소설이오.”
허걱~! 스님이 수행이 아닌 웬 소설? 스님이 며칠 출타한 이유는 바로 이 원고를 정리해 출력해 오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과 같은 레이저 프린트도 아니었다. 인쇄지 양쪽에 구멍이 종렬로 가지런히 뚫려 출력되는 도트 프린트였다. 분량은 중편은 훨씬 넘고, 장편은 조금 안 되었다.
“내가 글공부가 전공이 아니라서… 정 선생이 읽고, 부족한 것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주고… 좀 도와주시오.”
아!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말 또한 불법과도 같은 진리이리라.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나는 일단 내 시들을 뒤로 제쳐두고 스님의 원고를 집중해 읽기 시작했다. 어차피 전문적으로 글공부를 하신 것도 아니고, 수많은 허점투성이의 글일 테니, 낱낱이 샅샅이 뿌리째 문제점을 지적하고, 빨리 포기시킨 후, 내 글에 집중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런데 이것 봐라? 한 장 한 장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점점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문장은 분명 글공부를 한 문장이 아닌데 그 인물의 고뇌와 서사와 진정성의 힘이 엄청났다. 이야기인즉슨, 어느 수좌가 대학 졸업 후 일대사공부에 대한 발심을 하고 출가해, 십여 년의 안거 생활을 하며 정진했는데도 단 일보도 나아가지 못한 회한의 이야기들이었다. 구성이 산만하기는 했지만, 수좌 생활의 에피소드들은 나의 심금을 울렸다. 마치 나를 문학의 길로 이끈 김성동의 소설 『만다라』를 본 느낌이었다.
스님과 함께 산길을 걷고, 바닷길을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두어 달 후 스님의 소설과 내 시까지 정리를 마치고 산문을 나섰다. 합장을 한 후 맞잡은 스님의 손은 따뜻했고, 눈가에는 첫 만남과는 다른 온화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신춘문예에 낙선한 나, 불교 문학상에 당선된 스님…
다시 수좌의 자리로 돌아간 스님
몇 달 후, 신춘문예에 낙선한 나는 절친의 시나리오 당선 소식을 신문에서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만 놀라운 기사를 접했다. 스님의 소설이 불교 문학상에 당선된 것이다. 시상식 날, 스님과 친구를 축하하기 위해 시상식장을 찾았으나 스님은 오지 않으셨다. 나중에 출간된 책에서 스님의 서문을 보니, ‘수행에 정진하지 않고 딴짓을 한 자신을 입적하신 은사님이 보셨더라면 죽비를 내려쳤을 것’이라면서 모든 걸 잊고 다시 정진하겠다고 쓰셨다.
이후, 몇 개월 후 그 절에서 스님을 한 번 뵈었다. 스님은 다시 수좌의 자리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또 30여 년이 지났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설법하는 스님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절구통 수좌로 살아오신 스님의 온화한 얼굴에서 그 시절 젊은 수좌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스님! 빈방 있습니까?”
정형수 | 드라마 작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헌화가』, 『소림사에는 형님이 산다』, 『상도』, 『다모』, 『주몽』, 『계백』, 『드림』, 『징비록』, 『오아시스』 등 다수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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