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萬海) 한용운 시문학 작품 바로 읽기 | 문학으로 읽는 불교

임을 통한 사랑의 미학

이명재
문학평론가,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만해 한용운

만해 한용운(1879~1944)은 66년에 걸친 삶을 줄곧 일제 강점하에서 영위하면서 도 시대를 올바로 이끌었던 민족 지도자였다. 그 자신보다 10여 년 아래인 이광 수 최남선 등 신문명을 받아들인 선각자들이 친일의 나락에 빠져든 모습들과는 대조된다. 청소년기이던 동학 농민 운동의 회오리에 가친과 친형을 잃고 고향을 떠나온 한용운은 민족 시인으로 거듭났다. 그의 일생은 흔히 이야기하듯 학덕 깊 은 스님으로서, 꿋꿋한 독립투사인 동시에 드높은 민족 시인으로 빛나는 삼위일 체의 전인적 존재로서 우뚝 서 있다.

구한말 충남 홍주에서 태어난 만해는 소년기에 시골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고 청년기에는 입산수도해 불교 경전을 익혔다. 이렇게 동양 전통적인 전적을 바탕 으로 양계초의 『음빙실문집』 등을 통해서 서양의 근대 문물도 알아가는 과정을 거쳤다. 그의 전통 지향적 근대 사상이나 반제국적인 항일 운동도 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만해는 한일병합조약 전후부터 친일적인 불교계를 석전 스님과 함께 앞장서서 막았다. 자신이 주창한 불교유신론 역시 당시의 친 체제적이고 퇴영적인 불교계 를 쇄신하려던 정풍 노력이었다. 그리고 40대 이후 강원도 산사에서 서울로 올라 와서 펴내던 교양지 『유심(惟心)』은 서책을 통한 불교 선양의 문화적 발걸음이었다. 이런 활동은 모처럼 그를 기미년 3.1운동의 발기인 33인 중에 백용성 스님과 더불 어 불교계의 민족 대표로 발돋움한 디딤돌이 되었다. 만해는 물산장려운동과 민 립대학 설립 운동, 신간회 운동 등으로 자주독립과 사회계몽에도 앞장서 왔다.

더욱이 만해 한용운을 민족사에 높이 서게 한 것은 문학적인 공적이다. 만해가 3년 투옥을 끝내고 47세 되던 1926년 여름에 펴낸 시집 『님의 침묵』은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더불어 한국 민족시의 으뜸으로 꼽힌다. 88편의 시편은 그야말로 유현심수한 동양적 사색에다 겨레의 애환과 갈망을 담은 주옥들이다. 개화기 이 후 신문학 초기에 쓴 시편들이지만 당시 동인지 문단이나 카프의 이념 문단 속에 서도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다. 만해는 이런 시 작품과 시조 및 한시를 통틀어 300여 편에 이르는 시문학 작품은 물론 산문적인 수필들과 굵직한 소설 작품 너덧 편도 뒷받침된다.

3.1운동 100주년을 넘긴 시점에서 만해 한용운 시문학을 새롭게 되새겨보는 일 또한 뜻깊다. 정해진 지면에 맞춰 만해 시문학에 두드러진 몇 가지 특성 몇 가 지를 살펴본다. 한용운 시문학의 키워드인 ‘임’의 정체와 여성적인 취향의 효용 가치 등이다.

시집의 표제에서부터 두드러진 ‘님(임)’은 여러 시편에 ‘당신’으로 활용되고 있 어서 참고된다. 이 정체에 대해서는 시집의 서문으로 나와 있는 「군말」에 나타나 있다. -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티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 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느니라.”

그러기에 그리워하거나 사랑할 대상은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간절하게 필요로 하는 사물이나 국가와 학문 등에 이를 만큼 다양하고 폭이 넓다. 따라서 「님의 침묵」의 경우, 수용미학상 흔히 ‘임’을 일제 강점기의 빼앗긴 조국이나 민족으로 확대 해석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문맥상으로, 이 시편 속의 ‘임’은 주변 스님들의 증언처럼 만해가 백담사 오세암에서 시집을 준비하던 당시 함께 지내던 속초의 서여연화 보살이란 심증이 짙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임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빛나던 옛 맹세는 차 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 줌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중략)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그런 반면에, 「당신을 보았습니다」의 경우는 ‘당신’이 빼앗긴 조국이나 국권의 인격화로 드러난 고발, 하소연한 시편이다. 서두와 중반부 일부에서도 심각한 인 권침해를 마주한다. 여기에는 만해의 선(禪)사상, 공(空)사상, 유마힐사상, 반야사 상, 화엄사상 속에 꿈틀대는 항일 민족주의, 자유 민주주의 등이 엿보인다.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중간 연 생략) 나는 집도 없고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貞操)냐” 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변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후략)

위처럼 만해 시에 애절한 사랑을 노래하며 소월의 진달래꽃의 경우와 달리 이지적인 퍼스나로 등장한 여성은 페미니테 효과로 독자들의 이목을 끈다. 동시에 시인은 애인을 향한 그녀를 통해 다의적으로 함축한 언어로써 일제의 횡포를 고발하고 항일의 메시지를 전한다. 시인은 연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노자 『도덕경』의 이유제강(以柔制剛) 지혜를 발휘해 악명 높은 일제 의 검열망을 벗어나는 효과를 거두었다.

이명재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중앙대 문리대학 교수, 동 사회개발대학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197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및 2011년 『한국소설』 신인상 당선. 현재 중앙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월간문학』 동리상, PEN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는 『글쓰는 생활의 보람』, 『한국현대민족문학사론』, 『전환기의 글쓰기와 상상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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