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불교를 만났다 | 나의 불교 이야기

군대에서 불교를 만났다

태호
도서출판 김영사 편집자


훈련소 때 일이다. 주 1회 열리는 종교 행사에 가면 소위 ‘싸제’ 간식을 준다는 간부의 말을 듣고, 즉시 종교 행사로 가는 대열에 줄을 섰다. 당시 종교가 따로 없었고 바깥 음식이 몹시도 그리웠던 나는 다양한 간식을 맛보기 위해 한 주는 교회, 다른 한 주는 성당, 그다음 주는 법당, 이런 식으로 종교의 문턱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훈련을 모두 마치고 곧 자대로 떠날 한 친구가 내게 귀띔을 해줬다.

“불교에서 수계받으세요. 치킨하고 피자 줘요.”

“오, 진짜요?”

재빨리 친한 동기 몇몇과 이 고급 정보를 나누고 서둘러 수계를 신청했다.

자대 배치받기 일주일도 남지 않은 일요일, 나는 기꺼이 수계를 받고, 5주간의 힘든 훈련을 보상받는 기분으로 치킨과 피자, 거기에 초코바와 여러 과자가 어우러진 만찬을 즐겼다. 피자를 크게 베어 물며 법사님의 말씀을 듣는데, 한쪽에 붙어 있는 벽보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엔 1부터 10까지 번호 앞에 짤막한 글귀들이 쓰여 있었다. ‘좋은 말씀이군’ 하며 하나하나 천천히 곱씹어보면서 내려가는데, 그만 마지막 글귀에서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억울함을 풀려고 하지 마라.”

‘아니, 대체 왜?’ 위에 있는 말씀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 있었는데, 가장 마지막에 있던 이 문장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억울함을 풀지 않으면 자기만 바보 되는 거 아닌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텐데…’ 이후 무시하려고 해도, 이 글귀는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궁금증은 자대에 가서도 계속되었고, 이후 주마다 열리는 종교 행사는 자연스럽게 법당으로 고정되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군대는 위계질서와 권위문화가 강해서 억울한 일이 생기기 쉬운 구조다. 즉 그 글귀대로 실천해볼 수 있는 계기가 너무도 많았는데, 실제로 몇 번 그 말씀을 떠올리며 목구멍까지 올라온 변론을 가까스로 삼키며 억울한 채로 둔 적이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을 하다 보니 속이 새까맣게 탔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화병이 날 것 같았다. 그 후 나는 이 글귀를 내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했다.

현재 내 직업은 출판 편집자고, 당연하게도 직장은 출판사다. 굳이 이 말을 꺼내는 까닭은 지금 다니는 회사와의 인연이 제법 특별하기 때문이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생각에 구직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전부터 호감이 있던 출판사에서 낸 채용 공고를 (마감 하루 전에) 발견하곤 서둘러 서류를 제출했다. 대개 회사 채용 절차가 그렇듯, 서류가 통과되면 그 후 여러 심사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거기엔 보내준 책을 읽고 기간 내에 독후감을 써서 제출하는 과제 심사도 있었다. 이직 성공의 꿈을 꾸며 옆에 노트까지 펼쳐놓고 분석과 정리를 해가며 성심을 다해 읽어가는데 중간쯤이었나, 나는 그 책에서 제대 이후 기억 한편에 묻어두었던 ‘억울함을 풀려고 하지 마라’에 관한 이야기와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억울한 일과 억울함을 당한 사람, 그 억울하게 만든 사람은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억울하다는 마음도 분별로 인해 일어난다는 설명과 함께. 세상 모든 이치는 연기법과 공(空)으로 설명이 정말 가능한 것인가? 그제야 그 수수께끼 같았던, 그래서 한때 그렇게 애태웠던 글귀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적잖은 심적 혹은 지적 울림에 잠시 책을 덮고 한참을 가만히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회사가 어떤 의도로 이 과제를 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말 그대로, 그저 순수하게 독후감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글귀와 관련된 경험, 그리고 그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들었던 기분과 느낌, 생각을 가감 없이 적어 제출했다.

그 인연으로 나는 만 6년째 그 회사에 다니며, 불교, 마음공부, 철학, 심리 종교 분야의 책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군대 법당에 붙어 있던 벽보가, 명나라 묘협 스님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마음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주기 위해 쓴 「보왕삼매론」이라는 것쯤은 안다. 가끔 마음이 힘들 때마다 이 글을 찾아보곤 하는데, 그 열 가지 가르침 모두가 때에 따라 결을 달리하며 마음의 동요를 잠재우고 보다 청정한 눈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이토록 오래도록 울림을 주고 내 삶을 여기까지 이끄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 글이 가진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새삼 깨닫는다.

이후 「보왕삼매론」 못지않은 보석 같은 글들을 많이 만났다. 경전, 고전뿐만 아니라 현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분들이 쓴 글들에도 번뜩이는 삶의 지혜들이 넘쳐났다. 내 삶에는 늘 책이 있었고, 그 책들이 내 삶을 가꿔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모두 빚이라 여기고 있다. 그 빚을 갚는 길은 누군가에게 그런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책들을 계속해서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게 출판을 업으로 살아가는 나의 직업적 사명이기도 하다. 오늘도 더 많은 사람과 참되고 지혜로운 생각들을 나누고자, 그리고 고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자 좀 더 다가서기 쉽고, 이해하기 쉬우며, 널리 읽힐 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마음을 쏟고 있다.

한 해를 정리하면서 ‘다사다난한 한 해’라는 표현을 안 쓴 적이 없었던 것 같지만, 2022년에는 어떠한 해보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다. 남 일처럼 여겨오던 일들이 서너 달 동안 연달아 벌어졌고, 그 여파가 여전히 진행 중인 일도 있다. 당시에는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바빴는데, 한 해를 정리하다 보니 ‘나 올 한 해 정말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올해가 힘들기만 했다고 말한다면 2022년을 살아온 내가 무척 서운해할 것 같다. 그건 감사한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문득문득 떠올라서다. 가만히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다 보면 눈시울이 따뜻해질 정도로 고마운 마음이 불쑥 올라오기도 한다. 그 사람이 혹시 ‘나’일까 생각된다면 맞다, 당신이다. 내 주위에서 함께 나를 이뤄가는 모두에게 뜨거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태호
군 훈련소에서 받은 법명은 관도(觀道). 김영사에서 출판편집자로 일하며 주로 불교와 마음공부에 관한 책을 기획 편집하고 있다. 편집한 책으로는 『명상하는 뇌』, 『마음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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