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상과 깨달음의 세계 | 현대적으로 이해하는 불교 경전 길라잡이 『화엄경』

화엄사상과 깨달음의 세계

권탄준
금강대학교 불교인문학부 명예교수


사바세계와 화장세계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는 인연을 따라 끊임없이 생멸・변화하는 세계이기 때 문에 무상한 세계이다. 물리적인 세계도 그러하지만, 그것을 보고 느끼는 존재의 마음가짐과 업에 의해 차별이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화엄경』에서는 여러 곳 에서 중생의 세계와 부처의 세계의 모습이 다르고, 고통과 즐거움의 세계, 깨끗함 과 더러움의 세계 등의 차별과 변함이 있는 것은 마음의 분별에 따라 일어난 업력에 의한 것이라고 설하고 있다. 「세계성취품」에서 “중생·보리심·보살이 머무 름에 따라 세계가 다르게 바뀐다”고 설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화장세계품(華藏世界品)」에서는 지혜의 광명에 비추어져 아름답게 모습을 드러 낸 화장세계도 비로자나불이 과거 세상에서 큰 서원을 일으켜 보살행을 닦아왔기 때문에 그 결과로 성취한 것으로서 비로자나불이 항상 가르침을 펴는 곳이라 하고 있다.

마음은 모든 현상적 존재의 근본으로서, 오염되고 깨끗한 상반되는 두 가지 측 면을 모두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60권 『화엄경』 「야마천궁보살설계품」에서는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고 한다. 일심이 미 혹하면 중생이 되고, 깨달으면 여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혹한 세계나 괴로 움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도 우리들의 마음이고, 깨달음의 세계나 즐거운 세계 를 만들어내는 것도 우리들의 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십지품」에서는 “삼계는 허망한 것으로서, 다만 한 마음이 짓는 것이다(三界虛妄但一心作)”라고 한다. 또 「야 마궁중게찬품」에서는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간을 그려내는데… 어떤 법이라도 짓지 못함이 없다”고 하며, 또 “법계의 성질은 모든 것을 마음이 짓는 것임 을 알아야 한다(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고 한다. 모든 것이 마음에 의해 지어지는 유 심(唯心)의 세계라는 것이다.

일심이 다양한 세계를 만든다고 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부처의 경지 또는 범부의 경지라는 위계가 미리 설정되어 있어서, 마음이 그 사이를 왕래하는 것이 아니 라, 마음의 존재 방식에 따라서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양자 사이를 걸림이 없이 왕래하는 것이다. 「여래출현품」에서는 “마음의 경계가 여래의 경계와 같고, 마 음의 경계가 한량이 없고 끝이 없어서, 속박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해탈할 일도 없이 무애자재하게 한량없이 나타난다”고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세계는 외적으로 독립해 존재하는 어떤 장(場)으로 보이지만, 사실 은 각각의 마음의 흐름 속에 비쳐 나타나는 영상인 것이다. 진실로 이 현실의 세 계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에 의해 사바세계도 되고 화장세계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화엄경』의 첫머리에서, 석존의 깨달음의 순간에 온 세계가 아름다운 장엄으 로 가득찬 화장세계로 되는 것을 설하고 있다. 여기에는 중생이 온갖 괴로움을 느 끼며 살아가고 있는 이 사바세계가 정토인 화장세계로 나타나 있는 것이다.

보살행과 깨달음의 세계
화엄의 보살행은 부처의 교설에 의해 밝혀진 존재의 진실한 이치[法]를 여실히 파악하고, 이를 자신의 삶에 적극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진실의 세계에 들어가도 록 한다. 이처럼 화엄의 보살행이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진실에 대한 종교적 자각과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자신을 영원히 진실한 이치와 일치시키면서 살아가는 참된 인간 생존의 모습이다.

『화엄경』에서는 중생 누구에게나 여래성(如來性)이 있어서 본질적으로 부처와 동일하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한다. 이것은 미혹한 범부에게도 절대적인 가치가 있음을 천명하는 대긍정의 가르침이며, 깨달음이라고 하는 이상적인 경지에 도 달할 수 있도록 하는 종교적 실천의 근거와 원동력을 중생 자신의 속에서 찾아낸 것이다. 그러나 비록 모든 존재가 불성을 내재적으로 갖추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보살행으로 구현되지 않는 한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중생 내면의 진실한 생명인 불성을 진정으로 자각한다는 것은 자신의 본질이 부처임을 굳게 믿고 부처의 거룩한 삶을 본받아 깨달음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보리심을 일으킴으로써 시작 된다. 그렇기 때문에 「범행품」에서는 “처음으로 보리심을 일으킬 때에 바로 정각 을 이룬다(初發心時便成正覺)”라 하고, 「초발심보살공덕품」에서는 “초발심보살은 그 가 곧 여래이다”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처음으로 보리심을 일으킬 때에 깨달음의 삶이 열린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처음으로 보리심을 일으킬 때에 깨어나기 시작한 이 참된 본성의 실질적인 현 실화는 보살행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더 드러난다. 「여래출현품」에서는 “여래성 이 보살행이요, 보살행이 여래성”이라고 해, 보살행이란 본질적으로 중생의 내면 에 잠재되어 있는 여래성이 현실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 하고 있다. 따라서 깨달 음의 세계는 언제나 보살의 수행에 의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행 을 실천하는 것은 미망의 생존을 그치게 하고, 자신의 본연의 모습인 여래의 모습 을 되찾도록 하는 새로운 여래 출현의 도(道)인 것이다.

화엄의 보살행은 항상 부처를 공경 공양하고, 부처의 가르침대로 현실 생활 속 에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려 하고, 부처의 훌륭한 교법을 중생에게 가르쳐 부처의 공덕을 배우게 하며, 고통받는 중생에게 의지처가 되고자 한다. 모든 존재의 진실 한 모습과 연기의 도리에 대한 바른 파악이나 이해를 통해서 지혜를 얻음과 동시 에 중생에 대한 자비의 구제가 실현된다. 수행이 향상되는 만큼 보살의 지혜도 증 장되고 대비심에 바탕을 둔 중생의 교화와 구제 활동도 심화되어간다. 이와 같은 보살행이야말로 자신의 참생명인 여래성을 현실 세계에서 무한히 발현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끝날 수가 없다. 깨달음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52단계의 하늘 로 향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끝에 바로소 도달한 세계가 아닌 것이다.

보현행과 부처의 행
『화엄경』에서는 보살을 대표하는 것은 보현보살이고, 여러 가지 보살행이 설해 지지만, 그것을 대표하는 것 또한 보현행이다.

이것은 『화엄경』의 중요 설법이 비로자나불의 위신력을 받아서 보현보살에 의해 행해질 뿐만 아니라, 보살의 온갖 수행과 부처의 중생 교화 활동이 모두 보현 의 원행을 근거로 해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쉽게 알 수 있는 점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문수(文殊)는 깨달음의 지혜를 상징하고, 보현은 깨달음의 실천을 상징하는 보살이다. 『화엄경』에서 보현보살을 대표적인 보살로서 부각하 는 것은 이 경이 대승보살의 깨달음의 실천을 주제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화엄경』의 교설은 지혜에 의한 깨달음과 그것을 현실 세계 속에서 주체적으로 실현해나아가는 자비행을 설하는 것이다. 『화엄경』에서 이러한 자비행을 실천해 나아가는 구체적인 행자의 모습을 보현보살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보현보살이란 어떤 특정의 보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보현행을 행하면 누구나 보현보살이 되는 것이다. 「보현행품」이나 「여래출현품」에서 시방세계의 무수한 보살들이 이 세계로 와서, 보현보살의 훌륭한 자비 행을 찬탄하면서 “불자여, 우리들은 모두 같은 이름의 보현이다”라고 하는 것에서도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보살행은 여래의 덕을 실천해가는 것이며, 여래의 덕은 보살행의 수행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다. 귀의의 대상이 되는 여래의 덕은 귀의하는 보살에게 모두 그대 로 나타나 보현행으로 되고, 보살은 보현행을 닦아 여래의 덕을 실천하는 데 동참 해 그것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부처의 깨달음의 눈으로 본 세계의 진실한 존재 모습은 한량없이 차별된 모습 의 이 세계가 그대로 평등한 하나의 세계이며, 만물이 무한의 상관관계로 끊임없 이 아름다운 상생(相生)의 생명 세계를 펼치는 영원의 세계이다. 이러한 세계의 실 상(實相)을 증득한다는 것은 그 세계의 본질적인 체계에 대한 진실한 눈뜸과 함께 그것을 믿고, 그러한 존재의 세계의 실상에 부합되는 삶을 펼치는 일이 될 것이 다. 보현행은 바로 이러한 ‘일즉일체 일체즉일’의 사사무애법계의 실상에 입각한 진정한 인간 생존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부처의 세계를 가득 채운 아름다운 장엄의 광경들도 보현의 행원을 살아가는 무수한 보살들로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보현의 행원 (行願)이야말로 세계의 모든 곳에서 끊임없이 부처의 세계로 향해 들어가고, 다시 그곳에서 끝없는 세계로 나아가 자비의 활동을 펼치는 무애자재한 장엄의 총체를 나타내는 구체적인 행(行)이 되는 것이다. 보현행은 이처럼 대우주의 영원한 상생 (相生)의 생명 활동에 동참하게 되면서 깨달음의 세계를 펼치는 행인 것이다.

권탄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과 불교대학원 겸임교수, 일본 고마자와대학 불교학부 교환연구원, 금강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및 불교문화연구소장・대학 원장, 한국불교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금강대 불교인문학부 명예교수, 한마음선원 부설 대행선연구원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화엄경의 이해』, 『불교의 이해』(공저) 등이 있으며, 『화엄경』 연구에 전념해 관련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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