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님 앞에번뇌까지 씻어주는서해 낙조가 펼쳐지다
BTS도 다녀간 강화 낙가산 보문사
BTS(방탄소년단)도 다녀간 기도처
관세음보살은 ‘한량없는 중생이 모든 괴로움을 받을 적에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곧 그 음성을 관(觀)하고 다 해탈케’해 주시는 분이라 했다. 관세음보살께서 중생의 근기에 따라 다양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보문시현(普門示現)’이다. 강화의 낙가산 보문사는 관세음보살이 머무시는 보타낙가산에서 따온 낙가산과 보문시현에서 따온 보문사로 절 이름을 지었으니, 이름 그대로가 관음 도량이다. 절은 신라시대에 세워졌다. 어부가 꿈을 꾼 뒤 불상과 나한 석상 22구를 바다에서 건져 석굴에 봉안했다는 흥미진진한 설화가 전하는 곳이다. 근대에 쓰인 보문사 법당 중건기에는 ‘신라 때 회정 선사가 금강산 보덕굴로부터 이 산으로 옮겨와 절을 건립’했다고 했다. 그러나 관음보살과 인연이 깊은 회정 선사는 고려시대 인물이다. 일설에는 ‘고려 성종 시대 회정 선사가 청마굴을 개척하고 가람을 창시해 보문사라 명명’(<명승과 고적>, 『조선일보』, 1931.09.27.)했다고 한다. 유점사 본말사지에는 ‘보덕굴은 고려 의종 때 회정 선사가 중창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관음 기도 성지로 유명했던 금강산 보덕굴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신 고려의 회정 스님이 보타낙가산을 찾아 강화 석모도로 오셨고, 낙가산이라 이름 짓고 나한 도량 보문사를 관음 도량으로 일신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오랜 옛날부터 보문사는 자녀를 원하는 이들의 간절한 바람을 이뤄주는 송자 관음 기도처로 유명하다. 그런 인연 때문일까? 학부모들에겐 영험 있는 입시 기도 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방탄소년단이 참배하면서 해외 팬들의 발길까지 이어지는 명소가 되었다.
불모(佛母)로서 마애관세음보살좌상을 모신 화응 스님
1925년, 강화도 보문사 주지는 화응(華應) 스님(최근 이주민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이 2020년에 발표한 논문 「일제 강점기 강화보문사 마애관음보살좌상 연구」를 신선하게 접했다. 화응 스님 대목은 이 논문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했음을 밝힌다.)이셨다. 불화와 단청의 맥을 잇는 불모이기도 했던 스님은 낙가산 눈썹바위 아래에 관음보살상을 모실 원력을 세운다. 눈썹바위 아래 공간은 높이 10m에 40도 가까운 경사진 바위라 고민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예배 공간마저 협소해 참배자가 바라볼 때의 시각적인 왜곡 문제까지 헤아려야만 했다. 불사를 위해 스님은 철원의 보개산 석대암에서 1,000일 기도를 올렸다. 이때 바위에 조성할 관세음보살의 초(草)를 완성한다. 스님은 초를 그리는 단계에서부터 과감하게 두상을 키워 신체와의 비례를 1:1로 작업했다. 그래야 참배자의 눈높이에서 올려다볼 때, 두상과 신체의 비례가 0.6:1이 될 수 있다.
화응 스님은 관음보살 초를 들고 당대의 화승 금호당 스님을 찾아뵈었다. 쓸 만하면 고쳐주시고 고칠 수 없으면 초를 새로 내주십사 했더니 금호당 스님께서 한참 살펴본 뒤 “이 그림은 신력으로 그린 그림이니 손댈 데가 없다”고 평하셨다. 금호당 스님의 비문에 따르면 화응 스님이 머무는 방에선 가끔 한밤중에 상서로운 기운이 넘쳐 빛이 뿜어져 나오는[瑞氣放光]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다.
불사를 위해 화주로도 분주히 활동하던 화응 스님에게 1928년 1월, 금강산 마하연 주지 발령이 난다. 스님은 서둘러 보살상 조성에 들어가야 했다. 100여 명이 넘는 시주자가 후원에 참여했다. 보문사에 새로 부임한 주지 벽파 스님도 불사에 적극 도움을 주셨다.
관세음보살상은 높이 32척, 너비 12척이다. 높이는 관세음보살의 32응신을, 너비는 12면 관세음보살을 상징한다. 화응 스님은 40도 경사면 때문에 발생하는 ‘관점의 왜곡’을 최소화하기 위해 움직임을 절제한 좌상에 대칭을 이용, 형태의 단순화에 주력했다. 그럼에도 스님의 불모다운 재능은 당초 문양을 내고 모서리마다 장식을 단 화려한 보관과 내의(內衣) 끝단과 띠 매듭의 세밀한 문양, 발목 쪽 장식화된 옷 주름을 통해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구름이 중첩되어 피어오르는 듯한 문양과 광배의 빛이 반사되는 듯한 문양도 화응 스님만의 불화적 표현 기법이다.
1928년 동안거 해제 일에 시작된 대작 불사는 불과 석 달 열하루가 소요된 5월 26일에 점안식을 갖는다. 마애관세음보살좌상이 조성되면서부터 이를 친견하려는 여행단이 붐을 이뤘다. 관광 탐승지의 인기 속에 보문사는 ‘3대 관음 기도 성지’로서 명성을 얻기에 이른다. 흥미로운 건, 간송 전형필 선생의 후원 아래 1937년에 참배 공간이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이후 오늘날 규모로 정비된 것은 1985년의 일이다.
보문사 전경 사진|하지권 |
눈썹바위 암벽에 조성된 보문사 마애석불좌상(인천유형문화재) 높이 9.2m 폭 3.3m에 이른다. 사진|하지권 |
눈썹바위 아래, 꼭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조성된 관세음보살상
걷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을 때[行住坐臥 語默動靜]에도 간절히 또 간절히 그 이름을 부르면 응답하신다 했다. 가파른 400여 계단을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오른다. 가쁜 숨 몰아쉬다 돌아보면 아, 아, 광활한 서해바다가 품 안 가득 들어온다. 번뇌까지 씻어주는 서해 최고 해넘이의 명소가 바로 이 자리일 터이다. 석모도가 섬이던 시절엔 일몰 전, 막배를 놓치지 않으려 황급히 떠나야 했지만 연륙교가 놓인 뒤론 눈썹바위 아래에서 강화 최고라는 장엄한 낙조의 비경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절하고 올려다보니 노을에 붉게 물든 관세음보살님이 싱긋, 자애로운 미소로 응답하신다.
글|이윤수
방송작가. 문화 콘텐츠 전공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사)문화예술콘텐츠진흥원 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연등회의 역사와 문화콘텐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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