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 | 현대적으로 이해하는 불교 경전 길라잡이

현대적으로 이해하는 불교 경전 길라잡이|『능엄경』 (2)


『능엄경』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


명법 스님 

해인사 국일암 감원



모든 이야기에는 발단이 있다. ‘발기인연’이라고 불리는 경전의 도입부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잘 보여주는데, 승원의 일상적인 생활을 배경으로 탁발 후 공양을 마친 부처님에게 수보리가 질문함으로써 시작되는 『금강경』의 차분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하안거를 마친 대중이 파사익 왕의 공양 청을 받아 승원을 비운 사이 홀로 탁발을 나간 아난에게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건을 계기로 설법이 시작되는 『능엄경』은 시작부터가 매우 파격적이다. 다문제일인 아난과 주술사인 마등가녀의 스캔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애욕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통해 여래장자성청정심과 보살도 수행이라는 대승불교의 두 가지 중심 테마를 경의 주제로 끌어들이기 위한 설정이다.

자신의 수행이 부족함을 절감한 아난이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었던 사마타, 삼마, 선나의 최초 방편을 묻는 것으로 본격적인 설법이 시작된다. 부처님은 그의 질문에 곧장 대답하는 대신 출가 동기를 묻는다. ‘칠처징심’ 장에서 여래의 삼십이상을 보고 애락하는 마음에서 출가했다는 아난에게 일곱 번의 문답을 통해 좋고 싫음의 분별을 내는 식심이 본래 없다는 사실을 설파한다. 식심을 문제 삼으면서 신랄하게 잘못을 지적하는 까닭은 애락하는 마음을 참된 마음이라고 여기는 전도된 생각을 꺾지 않으면 정견이 확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진감은 이 단락을 공여래장에 대한 설법이며 사마타의 최초 방편을 지시한 것으로 보았다. 

이제 대상에 반연하는 망심이 없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해하는 대중을 위해 부처님은 상주하는 진심의 존재, 즉 불공여래장을 드러낸다. 보는 것이 눈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주장을 비롯한 10가지 주장을 통해 상주하는 진심이 있음을 증명하고, 그것이 견문각지의 작용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라 견문각지 그대로 불생불멸하는 묘각명체임을 드러내어 깨달음의 본체임을 밝힌다. 

마지막으로 ‘여래장묘진여성이 본래 청정하다면 어떻게 만법의 차별이 발생하는가’와 ‘사대가 각각 법계에 두루 차 있다면 어떻게 서로 용납할 수 있는가’라는 부루나의 질문에 대해 청정한 여래장묘진여성으로부터 세계상속과 중생상속, 업과상속이 일어나며, 지수화풍의 성품이 공하므로 서로 장애하지 않고 법계에 두루 퍼져 있다고 대답한다. 만법의 근원을 깊이 성찰해 여래장묘진여성의 실체를 드러냄으로써 공불공여래장을 밝힌다. 

이상이 사마타에 대한 설명으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아난을 비롯한 대중은 몸과 마음이 걸림이 없고 마음이 시방에 가득하며 오온, 육입, 십이처, 십팔계뿐 아니라 칠대 만법 등 생멸하는 모든 것이 그대로 여래장묘진여성임을 깨닫는다. 이것이 바로 여래가 깨달음을 얻은 밀인이다.

여래장 사상에서 가장 큰 난점은 ‘여래장묘진여성을 깨달은 수행자에게 수증의 과정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이다. 따라서 정견을 확립한 대승보살이 올바른 수행의 문으로 들어가서 자성본정(自性本定)을 증득하려면, 인행(因行)을 닦을 때 낸 발심과(果)를 받을 때 깨달음과 같은가 다른가를 자세히 살펴야 한다. 생멸하는 마음으로 불생불멸의 불승(佛乘)을 구할 수 없으므로 생멸이 없는 성품을 얻어 그것을 인지(因地)의 마음으로 삼을 때만 과지(果地)의 수증을 원만하게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명암, 동정 등 유위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번뇌의 근본을 잘 살펴서 누가 업을 짓고 과보를 받는가를 관찰해야 한다.

이렇게 수행자로서의 기본자세를 갖춘 뒤, 비로소 수행의 요체로 들어간다. 먼저 번뇌에 의해 맺힌 매듭을 풀어야 한다. 번뇌의 고통은 육식의 작용 때문이며 육식의 근본은 육근이므로 깨달음을 얻어 해탈하려면 매듭을 풀 듯이 육근의 결박부터 풀어야 한다. 매듭을 풀기 위해 육근과 육진이 번뇌의 근본이자 해탈의 근본이므로 속박과 해탈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수행해야 하며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을 성취한 후에는 그 둘마저 버려야 제법의 본성에 계합해 무생법인을 이룰 수 있다. 

다음으로 원통에 들어가야 한다. 관음, 문수, 보현, 미륵, 지장 등 25명의 대승보살과 아라한이 삼마지를 얻은 방편인 25원통 수행은 타력 신앙으로 이해되던 보살 신앙을 자력의 수행으로 전환시켜 타력 신앙과 자력 수행을 회통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데, 육진, 육근, 육식, 칠대를 모두 수행의 문으로 전환시켜 세계 전체가 수행의 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중 관세음보살의 이근원통이 가장 뛰어나며 하나의 문에서 원통을 얻어도 육근이 모두 청정해진다.

25원통을 수증한 수행자가 몸과 마음을 다잡기 위해 사종율의를 지키고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해탈을 얻을 수 있도록 능엄주를 지송해야 한다. 사종율의란 음란한 마음을 갖지 말고 산목숨을 죽이지 말고 허락 없이 남의 물건을 가지지 말고 큰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계행을 지키면 마음으로 짓는 삼업과 입으로 짓는 네 가지 업이 생길 인연이 사라지고, 업이 생기지 않으면 마음을 잘 섭수하게 되어, 정(定)이 생기고 정으로부터 지혜가 생기게 된다. 

능엄주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은 제7권에 나오지만 이미 서분에서 아난을 혼미하게 한 마등가녀의 주문을 깨뜨리기 위해 문수보살이 신주를 사용하는 장면을 통해 능엄주가 범천의 주문을 무력화할 정도로 위력적임을 보여주었다. 능엄주를 지송함으로써 삼마지를 얻기 쉽고 곧장 정토에 들어갈 수 있는데, 현재의 업은 쉽게 제어할 수 있으므로 수행으로 막을 수 있지만 숙세의 습기는 제거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주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다. 『능엄경』은 한편으로 올바른 선정수행을 가르치면서 다른 한편으로 밀의를 담고 있는 능엄주의 지송을 권장하면서 선정 수행과 밀교가 융합된 독특한 수행 체계를 제시하는데, 여기까지 삼마지 수행에 대한 설명이다.

이제 본격적인 보살도를 수행할 차례다. 여기서 삼점차(三漸次), 건혜지(乾慧地)로부터 십신(十信),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廻向), 사가행(四加行), 십지(十地), 등각(等覺)에 이르는 보살의 55계위를 밝혀 아난이 질문한 선나에 대해 답한다. 삼점차란 보살이 수행하는 최초의 세 단계로서, 첫 단계에서 오신채를 먹지 않고, 두 번째 단계에서 살생과 도둑질, 음행 등을 범하지 않는 등 계율을 지키고, 세 번째 단계로 육근의 경계에 끌려다니는 현업(現業)을 어겨서 몸과 마음을 안온하게 하는 등 조인(助因)을 제거하는 수행이다. 

마지막으로 천당과 지옥 등 칠취가 마음이 짓는 것임을 밝혀, 마음을 가다듬어 섭지하게 하고, 선정의 깊이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경계를 오음과 연관시켜, 각각 열 가지씩 50마장에 대한 설명이 제시된다. 거친 색음정에서 미세한 식음정이 소멸할 때까지 나타나는 경계에 만족하거나 그것을 성인의 경지로 여겨 집착하면 마경계가 된다. 이렇게 50가지 마장을 극복하고 미망에서 깨어나 금강건혜지(金剛乾慧地)에 들어가고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사가행을 초월해 금강십지와 등각을 얻어 여래의 묘장엄해에 들어가 보리를 원만하게 해 열반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제 『능엄경』에서 말하는 수능엄삼매를 살펴보자. 수능엄삼매란 앞에서 말한 사마타, 삼마제, 선나를 총괄하는 이름으로, 처음에 마음과 경계가 둘이었다가 순숙해져야 일여하게 되는 지관(止觀)과는 달리 자기 마음에 본래 갖추어진 원정(圓定)을 일컫는다. 수능엄삼매는 “일체사구경견고(一體事究竟堅固)”하므로 움직이거나 무너지지 않는 철저한 법의 근원이며 시방의 여래가 깨달음을 이룬 방법이다.  

자기 마음에 본래 갖추어진 원정을 그대로 취한 것이 사마타가 된다. 이 수행은 마음을 일으켜 경계를 대처하는 지관수행과 달리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앎이 분명해지면 조체(照體)가 바로 나타난다. 천태지의가 『능엄경』을 만나보기를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능엄경』에서 말하는 사마타는 사유수습(思惟修習)을 취하는 관(觀)이 아니기 때문에 천태지관과 구별하기 위해 ‘미밀(微密)’이라는 말을 덧붙여 ‘미밀관조(微密觀照)’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상으로 교감진광의 주석에 의거해 간략하게나마 『능엄경』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능엄경』은 수행자들이 부딪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대체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하는 한편, 단도직입 자기 마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여래장묘진여성을 깨달음의 원인과 결과라고 주장해 여래장 사상과 선수행을 회통시키고 있다. 이러한 관점이 인위적으로 마음을 고요하게 하거나 오래 앉아서 고요한 경계를 집착하는 선정 수행을 타파하고 ‘지금 여기에서 활발발하게 깨어 있는 마음을 보라’고 한, 당시 중국에서 성행했던 선종 수행법과 일치했던 까닭에 선 수행승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을 뿐 아니라 무극의 미발로부터 견문각지라는 이발의 발생을 설명해야 했던 송대 신유학자들에게도 널리 수용되었다. 견문각지가 그대로 자성청정심이라는 『능엄경』의 주장은 여래장 사상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철학적인 난제를 일거에 해결했을 뿐 아니라 단도직입 깊은 선정으로 들어가게 하는 등 실천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아마도 이것이 위경이라는 판정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능엄경』이 널리 유통되는 이유일 것이다. 



명법 스님 해인사 국일암에서 성원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운문승가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운문승가대학 회주 명성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았다. 서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미학과에서 독일미학으로 석사, 동양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스미스 칼리지에서 박사 후 과정 연수를 마쳤다. 서울대 미학과 강사, 동 철학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동국대 불교대학원 명상상담학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해인사 국일암 감원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 『선종과 송대사대부의 예술정신』, 『미학의 역사』(공저), 『미국 부처님은 몇 살입니까』가 있고, 「서양 현대 예술에 나타난 선과 오리엔탈리즘」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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