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재가 불자의 계를 말하다 | 21세기 보살계 4

21세기 보살계 4


21세기 재가 불자의

계를 말하다


이병욱 

고려대학교 강사



오늘날의 재가 불자는 어떤 생활 자세로 보살계를 지키고, 또 행해야 할 것인가? 이런 문제에 대해 정확한 대안을 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범망경』을 중심으로 대체적인 방향성에 대해서 관찰해본다.

대승계(보살계)는 삼취정계(三聚淨戒), 곧 율의계, 섭선법계, 요익유정계를 말한다. 첫째, 율의계(律儀戒)는 대승불교 이전의 부파불교의 계를 지키는 것이다. 둘째, 섭선법계(攝善法戒)는 선을 행하는 것이다. 셋째, 요익유정계(饒益有情戒)는 다른 중생에게 도움이 되도록 실천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중생이 가난에 처해 있으면 필수품을 보시하고, 악을 범한 사람이 있으면 자비심으로 그 사람을 질타해서 반성하도록 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삼취정계는 『해심밀경』과 『유가사지론』의 「보살지」에서 제시된 것이다.

인도의 대승불교가 중국에 전해졌고, 그에 따라 중국에서는 『범망경』이 등장했다. 이 『범망경』은 중국 찬술 경전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범망경』은 10가지 중계(重戒)와 48가지 경계(輕戒)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중계’는 비중 있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그래서 ‘중계’를 범하게 되면 나쁜 과보가 발생한다. 그에 비해 ‘경계’는 약간 가벼운 내용을 소개한 것이다. 그래서 이 ‘경계’는 참회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범망경』이 대표적인 보살계 경전이다. 


재가 보살의 생활 자세 

불자는 일상생활에서 큰 자비의 마음으로 생활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불교에 귀의하도록 권하고, 동물에게도 배려의 마음을 베풀어야 한다. 또한 이 세상 어떤 곳에 산다고 해도 중생이 보리심을 일으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제45 경계). 


또 불자는 원(願)을 세워야 한다. 이때 ‘원’의 내용은 좋은 스승과 도반과 선지식을 만나기를 원하는 것이고, 대승의 가르침을 배워서 제대로 수행하기를 원하는 것이며, 계율을 굳건히 지키기를 원하는 것이다(제35 경계). 이러한 ‘원’이 제대로 성립된다면 일상생활에서 어떠한 역경의 파도를 만나더라도 그 역경의 파도는 그 사람의 ‘원’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불자가 큰 자비의 마음으로 생활한다면, 이러한 생활 태도는 자연스럽게 복수를 기약하지 않는 생활 태도로 연결된다. 불자가 폭력을 당했다면, 그만큼 폭력으로 갚아주는 복수를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 이 대목에 대해 『범망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자는 화내는 것을 화내는 것으로 보복하지 말고, 폭력을 폭력으로 보복하지 말 것이다. 만약 부모와 형제와 육친이 살해당했다고 할지라도, 복수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라의 임금이 다른 사람에게 살해당했다고 할지라도, 또한 복수하지 말아야 한다. 살생에 대해서 살생으로 복수하는 것은 효도의 길이 아니다(제21 경계). 


그리고 앞에서 말한 내용은 『범망경』의 다른 대목에서도 확인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범망경』에서는 전쟁의 무기와 사냥의 도구를 주변에 두지 말라고 하며, 불자는 부모를 죽인 사람에게도 복수하지 않아야 하는데 하물며 중생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제10 경계).

또 『범망경』에서는 위의 내용에 더해서 더 자세히 일상생활의 생활 자세, 곧 경제적 활동이나 관청의 권력에 관한 태도에 대해 밝히고 있다. 우선 불자는 일상생활에서 평화 지향적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불자는 무기를 판매해서 경제적 이익을 상당히 얻을 수 있다고 할지라도 무기를 판매해서는 안 된다. 또 불자는 경제적 윤리를 준수해야 한다. 불자가 상인이 되었을 때 눈금을 속인 저울과 용량을 속인 그릇으로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해도, 이런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불자는 권력의 힘을 경제적 이해관계나 시기심으로 인해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불자가 관청에 아는 사람이 많아서 다른 사람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해도, 그 영향력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재물을 근거 없이 취득하려고 해도 안 된다. 또 불자는 경찰이나 검찰의 인맥을 통해 다른 사람을 무고해서 그 사람이 이룩한 성과를 무너뜨리려고 해서도 안 된다. 이러한 내용은 『범망경』에 소개되어 있는 것이다.  


불자는 칼, 몽둥이, 활, 화살을 판매하지 말 것이며, 눈금을 조작한 저울이나 용량을 조작한 그릇을 사용하지 말 것이다. 그리고 불자는 관청의 세력에 의존해서 다른 사람의 재물을 취하지 말 것이며, 또 관청의 세력에 의존해서 해치려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결박해서 그 사람이 이룩한 성과를 파괴하지 말라.(제32 경계) 


재가 보살의 의식주 생활의 추구 방향

의식주 생활에서 불자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은 어떠한가?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을 구하기 위해서 천태 대사의 견해(25방편)를 참조하고자 한다. 우선 옷의 경우, 천태 대사는 상급, 중급, 하급의 3등급 수행자로 나누어서 살피고 있다. 최상의 수행자는 몸만 가리는 정도로 만족한다. 중급의 수행자는 3벌의 옷으로 만족한다. 하급의 수행자는 101가지 옷을 수용하지만, 소욕지족(少欲知足), 곧 욕심을 줄여서 만족할 줄 안다. 이런 내용을 재가 불자의 삶에 적용한다면, 재가 불자는 옷을 여러 벌 가지고 있지만, 비싸고 좋은 옷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욕심을 줄여서 만족할 줄 아는 데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범망경』에서는 몸에 걸치는 옷을 모두 괴색(壞色), 곧 아름답지 않은 색깔, 다시 말해서 여러 가지 색깔을 혼합한 색깔로 물들이라고 한다(제40 경계). 이는 재가 불자의 옷을 말한 것이 아니고 승려의 가사를 말한 것이지만, 이 내용을 재가 불자의 옷에 적용한다면, 옷에 욕심내지 말고 실용성에 주목해서 옷을 입으라는 것이 될 것이다. 

음식의 경우에도 천태 대사는 상급, 중급, 하급의 3등급으로 수행자를 구분해서 살피고 있다. 최고의 수행자는 깊은 산속에서 과일, 물, 채소를 먹거나 송백(松柏: 소나무와 잣나무)을 먹는다. 중급의 수행자는 걸식을 행한다. 하급의 수행자는 시주가 보낸 음식을 먹고, 또 승가에서 청정하게 만든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이런 내용을 재가 불자의 삶에 적용한다면, 재가 불자는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이나 수행에 방해가 되는 음식을 피하는 쪽으로 식사를 하면 좋은 것이다. 

또 천태 대사는 25방편의 다른 대목에서 수행자는 음식을 조절할 것을 권하는데, 여기서는 병, 수면, 번뇌가 증진되도록 하는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하고, 몸을 편안히 하고 질병을 고쳐주는 음식을 먹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 음식을 조절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굶주리거나 포식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내용은 재가 불자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범망경』에서도 먹지 말아야 음식에 대해 말하고 있다. 『범망경』에서는 오신채를 먹지 말라고 한다(제4 경계). 오신채는 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다. 또 『범망경』에서는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고(제3 경계).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한다(제2 경계). 그런데 필자는 이러한 내용이 어느 경우에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아니다. 여기서는 현대적 관점에서 재가 불자의 일상생활에 접근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러한 음식(오신채, 고기, 술)이 병, 수면, 번뇌를 늘리는 쪽으로 기능한다면 먹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 이러한 음식(오신채, 고기, 술)이 몸을 편안히 하고 질병을 고쳐주는 쪽으로 기능을 한다면, 반드시 금지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주하는 곳(집)의 경우에도 천태 대사는 상급, 중급, 하급의 3등급으로 구분한다. 최고의 수행자는 깊은 산속에서 수행한다. 중급의 수행자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수행한다. 하급의 수행자는 조용한 사찰에서 수행한다. 이러한 내용을 재가 불자의 삶에 적용한다면 거주할 집은 비싸고 고급스러운 주택(또는 아파트)일 필요는 없고, 수행하기 좋은 곳이면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범망경』에서도 좌선과 여러 가지 수행을 할 수 있는 곳을 마련하라고 한다(제39 경계). 이러한 내용을 재가 신도의 일상생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거주할 집에서 불교의 수행을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나머지 집의 경제적 가치 등은 중요한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한국 불교가 앞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려고 한다면, 현대 사회에 부합하는 보살계 정신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 내용은 불교의 근본적인 정신에 부합하면서, 또 시대의 정신과도 충돌하는 것이 아니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런 고민 속에서 재가 불자를 위한 보살계의 정신에 대해 간단히 생각해보았다.  


이병욱 한양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 문학 석사 및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와 중앙승가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천태사상연구』, 『고려시대의 불교사상』, 『불교사회사상의 이해』, 『인도철학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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