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적멸보궁! 그 빛과 깨달음 속으로 / 영축산 통도사
도시의 소음이 귀를 먹먹하게 만들고, 스크린의 빛이 눈을 피로하게 하며, 수천 개의 알림이 마음의 고요를 조각조각 잘라낼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진다. 그 어딘가가 반드시 머나먼 곳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거리가 아니라 방향이다. 바깥으로 향하던 시선을 안으로 돌리는 것, 그것이 진짜 여행의 시작이다.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행정 주소로는 이렇게 건조하게 표현되지만,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 어떤 주소도 의미를 잃는다. 영축산의 품 안에 …
하늘에서 본 아름다운 우리 절 / 인제 설악산 백담사
‘백담사’에서는 ‘시’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뻔히 아는 결과에 기댄 비약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이 절이 없었다면, ‘님의 침묵’이라는, 우리말이 이룬 빛나는 성취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일제 강점기의 우리 역사와 우리말의 처지는 지금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남루했을 것입니다.
백담사는 만해 한용운 스님이 정식으로 계를 받은 출가 본사입니다. (1905년 1월 26일) 이후 스님의 행적을 이 지면에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줄로 압니다. 백담사와 만해…
남효창 박사의 나무 이야기
정확한 날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의 인상은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다.
아까시나무의 꼬투리를 조심스레 열었을 때, 그 안에서 마치 정갈하게 놓인 작은 존재들이 서로 기대듯 모여 앉아 있었다.
올망졸망,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씨앗들.
그 모습은 단순한 무작위의 배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의 의도가 담긴 구성, 질서와 유대, 연결의 감각이 배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봉선(縫線)을 따라 태좌(placenta)라 불리는 자리에서 영양분을 받고, 기대고, 성장하고 있었다.
그 구조를 보는 순간, …
천년사찰 숲길 걷기명상
경내를 천천히 둘러본 뒤
약사전 뒤편으로 향하자
본격적인 숲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 초입에는 작은 계곡이 흐르고
여름비를 머금은 계곡물은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고
주변에는 습기를 머금은 풀들이
싱그럽게 자라고 있었다.계곡을 향해 오르면 보호수
한 그루가 우람한 모습으로 서 있고
위쪽으로는 전망대가 조성돼 있었다.
전망대에 오르자 삼각산 봉우리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인수봉과 백운대, 만경대가
선명하게 드러났고 원효봉과 노적봉도
가까이 다가와 있는 듯했다.
초여름 숲이 품고 있는 고양 흥국사와 숲 명상길절 …
사찰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숨어있다 / 김천 청암사
최근 화제의 드라마 <멋진 신세계>의 여주인공 강단심(신서리) 캐릭터는 장희빈을 모티브로 삼았다. 조선시대 악녀가 갑자기 현대 사회로 떨어지게 되면 어떨까, 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것이다. 드라마에서 왕은 실제 역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안종’이고, 여주인공은 ‘강희빈’으로 등장하지만 궁에서 사약을 받는 장면이 등장하는 순간, 누가 보더라도 그녀가 ‘장희빈’을 모델로 했음을 알 수 있다.장희빈과 인현왕후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악녀의 대명사는 ‘장희빈’이다. 그리고 장희빈과 정반대…
불교 핫플레이스
전주에는 가볼 만한 사찰이 없다고 생각했다.천년고찰이라 하면 해인사나 통도사, 송광사 같은 이름이 먼저 생각났고, 전주는 한옥마을과 비빔밥의 도시 정도로만 여겼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전주에는 특별히 찾아갈 만한 사찰이 없다고 말하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정작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천 년 넘게 지켜온 사찰들을 알지 못한 채 그런 말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사고사찰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동고사, 서고사, 남고사, 북고사. 전주의 동서남북에 자리한 네 개의 사찰을 통틀어 사고사찰이라…
태백산 정암사 적멸보궁 / 한국의 수행처 순례
지금도 아홉 구비를 돌고 돌아야 당도할 수 있는 강원도 두메산골 정선은 산이 성벽처럼 둘러싸여 있어 여전히 산은 높고 물은 맑아 봄부터 가을까지 각종 야생화가 피고 지며 노래하는 매우 아름다운 곳입니다. 오랜 옛날에는 남한강의 상류인 아우라지 물길을 따라 뗏목을 이용해 목재를 운반하던 중요한 나루터일 때도 있었고 석탄 산업과 더불어 나무와 물과 집이 온통 검댕을 뒤집어쓰고 있을 때도 있었으나 태백산 정암사는 구절양장(九切羊腸)처럼 구불구불 돌아치는 물굽이를 끼고 1,400여 년 동안 …
남효창 박사의 나무 이야기
작지만 완전한 생명, 씨앗의 전략씨앗은 작지만, 숲을 만든다. 그 멋짐은 크거나 화려해서가 아니라, 끝까지 자기 리듬을 지키는 데서 온다. 그리고 그 리듬 속에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오래된 방식이 있다. 숲은 그것을 알고, 우리에게도 가르쳐준다. 이제 나는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나무와 씨앗이 어떻게 소리 내지 않고 세상을 바꾸는지를.소리를 남기지 않는 말나무는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침묵 속에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바람이 불면 가지를 피하는 방식, 비를 맞으면서도 잎을 오므…
천년사찰 숲길 걷기명상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이
명상 아닌 게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무량사 설잠 스님(김시습) 길에는
왠지 모를 애잔함이 스며 있다.
시대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한평생 올곧은 지조를 지키다가
생을 마감한 설잠 스님의 서늘한
체취가 들어있기 때문이다.개인의 영달과 이익을 좇아
불나비처럼 떠도는 정치의 시대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설잠 스님의 애달팠던 삶을 보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화두가 발끝에서 뇌리로 전해진다.
느티나무 숲길 부여 무량사와의 깊은 인연을 찾아서오월 중순인데도 덥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