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 숲은 전나무들로
가득 찬 ‘화엄의 바다’다.
모든 것을 껴안아 포용하는 숲의 바다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된
그물코처럼 존재한다.
정신이든 물질이든 시간이든
공간이든 마찬가지다.
세상에 독립되어 존재하는 건 하나도 없다.
월정사 전나무숲길은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신과 지은탁의 사랑이
가장 깊어지는 장소다.
눈 덮인 전나무숲에서 두 사람의
운명과 사랑이 교차하는 장면이
촬영되어 지금도 많은 팬들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 월정사 천왕문 입구 모습으로 찬란한 숲이 조성돼 있다 |
드라마 ‘도깨비’의 무대가 된 월정사 전나무숲
월정사 숲은 전나무들로 가득 찬 ‘화엄의 바다’다. 모든 것을 껴안아 포용하는 숲의 바다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된 그물코처럼 존재한다. 정신이든 물질이든, 시간이든 공간이든 마찬가지다. 세상에 독립되어 존재하는 건 하나도 없다. 태양이 없으면 (우주계에)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듯 생명실상을 보면 온 세계가 마치 그물코처럼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 그래서 내가 곧 우주요, 우주가 곧 나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내 생명이 아닌 게 없다. 관념 말고 실상을 살펴보면 이 세상 모든 게 나와 연관돼 있다. 우주 문제가 내 문제가 된다. 월정사 전나무숲에서는 울창한 나무와 내가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느낀다. 숲과 내가 하나다. 내가 숲이요, 숲이 나이기도 하다.
온 국민의 감수성을 흔들어 놓은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한 신(神)-도깨비’가 방영된 지 10년이 지났다. 주인공 도깨비(김신, 공유 분)는 흰 눈이 가득한 월정사 전나무숲에서 가슴에 꽂힌 검을 뽑아 달라고 한다. 그 검이 뽑히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도 말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연인(지은탁, 김고은 분)은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월정사 전나무숲길은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신과 지은탁의 사랑이 가장 깊어지는 장소다. 눈 덮인 전나무숲에서 두 사람의 운명과 사랑이 교차하는 장면이 촬영되어 지금도 많은 팬들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김신은 자신의 죽음이 지은탁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면서도 그녀를 놓지 못한다. 이 장면에서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무서워. 너무 무섭다. 그래서 네가 계속 필요하다고 했으면 좋겠어. 그것까지 하라고 했으면 좋겠어. 그런 허락 같은 핑계가 생겼으면 좋겠어. 그 핑계로 내가 계속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 너와 같이.”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동시에 피할 수 없는 이별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장면은 드라마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평가받는다. 그리고 드라마를 대표하는 내레이션이자 월정사 장면과 함께 가장 많이 회자되는 명대사가 나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이 대사는 월정사 전나무숲길의 겨울 풍경과 어우러져 많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사랑이라는 소재로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주인공들의 아련하면서도 슬픈 이야기. 지극히 불교적인 내용이 많아 안성 석남사를 비롯해 촬영하는 곳곳에 사찰이 많았는데 결정적인 순간을 촬영한 곳이 월정사 전나무숲길이었다. 이미 국내 최고의 숲길로 각광을 받고 있는 숲길이 인기드라마 촬영지가 됨으로써 주말마다 몸살이 날 정도로 붐볐다.
탄탄한 극본과 걸출한 배우들의 열연으로 여심(女心)을 강타해 ‘도깨비(공유) 바라기’ 현상이 일어날 정도였다. 감성 가득한 OST(Original Soundtrack, TV 드라마에 삽입된 음악)가 음원시장을 석권하며 뭇사람들의 휴대전화 배경음악으로 저장되기도 했다. 주인공 도깨비가 읽어 내린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라는 김인육의 시(詩)도 아련한 첫사랑의 감성을 일깨우며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 월정사 전나무숲길을 포행하는 수행자의 뒷모습 |
천년의 숲이 들려주는 침묵의 세계
도깨비의 여운이 10년이 지나도 남아 있는 강원도 평창 오대산 월정사를 찾았다. 수령이 400여 년이 넘는 2,000여 그루에 달하는 고령의 전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총총이 서 있다. 드라마에서 온통 눈 세상이었던 월정사 전나무숲길에 눈은 다 녹았다. 사시사철 뿜어내는 피톤치드로 가슴까지 시원하게 해 준다. 봄빛 완연했던 오대산은 오후가 되자 돌연 서늘한 기운을 드리운다.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숲길은 장대했다. 울울창창(鬱鬱蒼蒼)한 전나무숲은 압권이다. 눈빛이 형형한 수행자의 기상처럼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전나무가 도열하듯 서 있다. 반듯하게 서 있는 전나무숲은 대대로 월정사 스님들이 가꾸어 온 숲이다. 자연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면 현재의 숲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자식을 돌보듯이 정성을 기울여 나무의 간격도 조절해 간벌도 하고, 식목도 해 조화로운 현재의 숲을 가꾸어 냈다. 엄밀히 말하면 월정사가 없었다면 전나무숲은 애시당초 없었다. 그래서인지 포행하는 스님들과 숲이 조화를 이루며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과거에는 일주문에서 적광전에 이르는 ‘전나무숲길’만 부각됐으나 근래에는 월정사에서 시작해 상원사에 이르는 5km에 이르는 길인 ‘선재길’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상원사에 봉안돼 있는 문수동자를 착안해 화엄경에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찾아 나서는 유래에서 이름지었다. 상원사로 가는 옛길 일부도 복원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생태관찰로도 새로 만들었다.
숲은 활발발(活潑潑)하다. 단순하게 숲이 형성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하게 살펴보면 생사가 끝없이 반복되는 모습이다.
전나무 숲길에 드니 하늘을 찌를 듯한 전나무들이 나그네를 감싼다. 400년이 넘은 아름드리나무들은 침묵으로 길손들을 맞이한다. 침묵은 무언의 말과 보이지 않는 메시지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 평화의 경지이며 무소음의 세계이고 정적이고 평화로운 세상을 뜻한다. 말로 이루어지지 않은 모든 소통과 의미의 전달이 사실은 침묵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 월정사 후문을 나서면 새로 조성한 선재길 입구가 나온다 |
그렇다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가 침묵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노래나 바다가 들려주는 파도 소리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바람 소리를 통해 우리는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소리가 만들어내는 생의 감각을 절감한다. 우리에게 소리는 삶의 조건이며 이유이고 확인이다.
하지만 영원히, 끊임없이 소리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릴 수는 없다. 만약 침묵이 없다면 소리도 의미가 없다. 우리에게 침묵은 휴식이고 안정이다. 월정사 침묵의 숲에는 물소리도 있고 바람 소리도 있다. 시간의 오램이 빚어내는 중후하고 아름다운 침묵이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길에 장대한 나무들의 도열은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미미한 것인가를 비웃는 듯하다. 아무리 위대한 인간이라 외치지만 월정사 전나무보다 절반도 못 산 초라한 수명을 가진 존재들일 뿐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장대한 모습에는 켜켜이 묻어나는 세월의 무게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다.
| 월정사 선재길에 들기 전 돌탑 |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선재길을 걸으면 만나는 걷기 명상
길은 떠나는 자의 고독의 심연을 부추긴다고 했던가? 술렁이는 마음의 흥분이 코끝에 닿는 숲의 향기와 함께 울렁거리며 미세한 흥분을 일으킨다. 사색은 고독한 자의 특권이다. 맑은 공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식단이다.
전나무숲길에는 2006년 태풍으로 쓰러진 고목 ‘할아버지 전나무’가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 옆에 크고 작은 전나무들이 공생하고 있다. 그 숲을 헤집고 다니는 다람쥐의 먹이활동도 요란하고, 계곡물 흐르는 소리도 봄이 되어 더 커지고 있다.
| 전나무 숲길의 할아버지 전나무가 생을 다해 고사목으로 서 있다 |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로 향하는 선재길에는 녹음이 바다를 이루고 있다. 계곡에는 풍부한 수량이 저마다의 소리를 내며 흐른다. 한번 지나간 물은 다시 오지 않고, 오대천을 따라 바다로 흘러간다. 발걸음을 천천히 움직여 숨을 들이쉬고(아나 Ānā), 숨을 내쉬고(아빠나 Apāna), 잠깐 멈추고(사띠 Sati)를 반복하며 숲길에 젖어든다. 한여름 더운 날씨에 방문객들이 붐비지만 공기는 달고, 청량하다.
상원사까지 20리가 넘는 숲길을 걷는다. 갑자기 먹장구름이 하늘을 휘감는다. 사위가 어두워졌다. 빗방울이 금방이라도 들이칠듯한 상원사로 향하는 음습한 길을 걷노라니 문득 서늘한 두려움에 오싹하기도 한다. 숲길을 찾아 떠난 여행 언제나 혼자 걷는 길이고 침묵으로 일관한 걷기명상(行禪)이다. 그 길에는 언제나 침묵이 있다. 어디선가 읽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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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사한 할아버지 전나무 옆으로 걷고 있는 방문객들 |
| 전나무 숲길 나무에 쓰인 문구 |
“침묵 없이는 말도 태어날 수 없다. 침묵은 말이 움트는 터전이다. 말의 가치는 그 말을 품고 있던 침묵에 의해 결정된다. 침묵이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말은 아름답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말은, 침묵 속에서 나오지 않고 말의 뒤엉킴 속에서 기계적으로 생산된다. 그 말들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 월정사 계곡 옆에 나 있는 숲길 |
| 월정사를 흘러내리는 오대천 모습 |
끊임없이 변하면서도 이어지는 삶과 수행의 길
말들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서나 서로 뒤엉켜있다. 그 뒤엉킴 속에는 뼈와 살이 되는 말도 있고, 독이 되는 말들도 있으며, 들리지 않은 채로 흩어져버리는 공허한 말들도 있다. 문제는 그 뒤엉킴의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뒤엉킴 속에서 길을 잃는다. 말의 포화와 포연은 우리의 정신을 흐려놓는다.
호젓한 길을 걸으면서 정제되는 정신은 계곡을 흘러내리며 맑아지는 물의 자정성과 닮아있다. 나는 상원사를 향해 거꾸로 오르며 맑아지지만 물은 월정사를 향해 내려오며 스스로를 맑힌다. 올라감과 내려옴의 교차성의 대칭이 빚어내는 미묘한 조화다.
상원사 입구에 다다른다. 사찰 입구에 아름드리 전나무가 사찰을 외호하는 신장처럼 당당하게 서 있다. 숱한 수행자들이 이 전나무 그늘을 지나다녔을 것이다. 전나무는 얼마나 많은 수행자들을 제접했을까? 묵묵히 서 있는 그 모습만으로도 올곧은 수행자상을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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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정사 일주문으로 나가는 길에 고목이 서 있다 |
| 새로 조성한 선재길에 아름드리 전나무가 도열하듯 서있다 |
다시 월정사로 내려온다. 저녁 어스름이 산그늘을 드리우며 산사는 저녁을 맞이한다. 천년숲 선재길도 어둑어둑해진다. 흔적 없이 사라졌던 옛길이 복원된 길 위로 겹쳐진다. 천년 옛길에 스며들어 있는 숱한 사연이 길 위를 배회하는 듯하다.
제법 어두워진 길 양측에 아름드리 전나무가 위압감마저 주며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다. 월정사에 드니 중심 전각의 적광전 글씨가 찬란하다. 당대의 선지식이었던 탄허 스님이 일필휘지로 쓴 현판이 살아있는 듯하다.
월정사 전나무숲길과 선재길은 천년세월을 같은 자리를 지키면서도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 속의 지속. 끊임없이 변하면서도 법칙은 이어진다는 삶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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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정사 중심 전각인 적광전과 그 앞에 국보인 팔각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이 앉아 있다 |
글/사진__여태동 시인. 경북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및 동국대 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를, 동방문화대학원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사찰과 전통한옥 고택, 동화, 고승인터뷰, 도시농부 일기 등 10여 권의 책을 출간했고 법정 스님 관련 등 10여 편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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