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행일지[대한불교조계종 신행수기 공모전 수상작]
취직 못해 도서관 전전하던 일상, 낙산사 템플스테이 통해서 극복
절할 때마다 느끼는 나태심 직면하며 부족한 끈기와 인내력 길러
합격한 직장 대신 불교대학원…방황 청춘 위한 행복 포교사 서원
취업 실패와 템플스테이의 시작
“오늘도 불합격이네.”
2023년 봄, 나는 열 번째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귀하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라는 문구가 유독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물다섯. 남들은 이미 직장생활 2년 차인 나이에 나는 여전히 도서관과 스터디카페를 전전하며 자소서를 쓰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을 켰다. 대학 동기의 해외여행 사진, 친구의 승진 자축 포스팅이 끝없이 이어졌다.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속은 텅 비어가는 느낌이었다. 새벽까지 잠은 오지 않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습관’ ‘월 천만 원 버는 N잡러의 하루’ 같은 영상들만 정신없이 틀어댔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들, 주말에 엄마랑 절에 좀 가지 않을래? 낙산사에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있대.”
“절은 무슨…. 나 바빠.”
“뭐가 바빠? 맨날 방에만 있으면서.”
엄마의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맞는 말이었다. 결국 엄마의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따라나섰다. 5월의 어느 토요일 새벽, 우리는 낙산사로 향했다. 절 입구 일주문에 적힌 ‘방하착(放下着)’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내려놓으라는 뜻이래.” 엄마가 설명했다.
‘내려놓을 게 뭐가 있다고.’ 가진 것도 없는데 뭘 내려놓으란 말인가.
템플스테이 첫날 저녁 예불 시간. 법당에 들어서자 은은한 향냄새와 낮은 목탁 소리가 울려 퍼졌다. 108배는커녕 삼배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무릎은 아프고, 허리는 뻐근했다.
“스님, 꼭 절을 이렇게 많이 해야 하나요? 마음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지도법사 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럼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몸과 마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절은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교만한 나를 낮추고, 겸손을 배우는 과정이죠.”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예불을 드리는 건 정말 고역이었다. ‘이게 무슨 힐링이야, 차라리 집에서 넷플릭스나 볼걸.’ 둘째 날, 다른 참가자들과 차담 시간을 가졌다. 놀랍게도 20대가 꽤 많았다. 취업 준비에 지친 취준생,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낀 직장인, 진로를 고민하는 대학생. 다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묘하게 이곳의 고요함에 끌린다는 거였다. 핸드폰 없이 보내는 시간이 처음엔 고문 같았는데, 하루가 지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카톡 알림, 인스타 좋아요, 이메일. 그 모든 것들로부터 잠시 벗어나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108배 수행이 만든 작은 변화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뭔가 달라진 건 없었다. 다만 받아 온 ‘일상에서 실천하는 불교 수행법’이라는 책자가 자꾸 눈에 밟혔다. 호기심에 108배를 시작했다. 처음엔 10배도 힘들었다. 3일 하다가 그만두고, 일주일 뒤에 다시 시작하고. 그러기를 반복하다 문득 깨달았다. ‘아, 나는 뭐든 끝까지 해본 적이 없구나.’
그날부터 매일 아침 108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달쯤 지나니 몸의 변화가 느껴졌다. 굽었던 어깨가 펴지고, 만성 두통이 사라졌다. 더 놀라운 건 마음의 변화였다. 38번째 절을 할 때쯤이면 ‘왜 이런 걸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65번째쯤 되면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80번째가 되면 ‘조금만 더’라는 의지가 생겼다. 그리고 108번째 절을 마치고 일어설 때의 그 개운함과 성취감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웠다.
나는 저녁 8시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핸드폰을 꺼두기 시작했다. 템플스테이에서 경험한 그 고요함을 일상에서도 느끼고 싶었다. 처음엔 불안했지만, 막상 해보니 별일 없었다. 오히려 저녁 시간이 길어졌다. 한 달, 두 달이 지나자 주변에서 변화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너 요즘 표정이 좋아졌네?”
어느 날 친구가 물었다.
“야, 요즘 왜 연락이 안 돼? 카톡도 씹고.”
“아, 미안. 요즘 저녁에는 핸드폰 꺼놓거든.”
“뭐? 왜?”
“그냥, 디지털 디톡스? 저녁 8시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는 핸드폰 안 봐.”
나도 느끼고 있었다. 예전처럼 조급하지 않았다. 친구들의 SNS를 보며 비교하는 일도 줄었다.
합격보다 중요한 길을 선택하다
어느 날 면접에서 면접관이 물었다.
“자기소개서에 108배 수행을 한다고 쓰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솔직하게 답했다.
“처음엔 마음이 힘들어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매일 108번씩 절을 하다 보니, 포기하지 않는 힘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행위를 통해, 제 안의 교만함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회사에 가지 않기로 했다. 면접을 보면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나는 동국대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했다. 불교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다.
“취업도 안 하고 왜 또 공부를 하려고 하니?”
아빠의 걱정 어린 질문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빠,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잖아요. 남들보다 늦더라도, 제 걸음으로 가고 싶어요.”
대학원 면접에서 교수님이 물으셨다.
“불교철학을 공부하려는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저는 불교를 통해 제 자신을 만났습니다. 남과 비교하며 조급해하던 제가, 이제는 제 호흡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108배를 하며 매 순간 깨어 있는 법,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법을 배웠습니다. 이런 가르침을 더 깊이 공부하고, 저처럼 방황하는 젊은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 나는 대학원생이 되었다. 여전히 108배는 계속 하고 있다. 가끔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마음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매 순간의 행동 속에, 호흡 속에, 지금 이 순간에 있다는 것을.
매일의 108배, 삶의 방식이 되다
최근에 후배가 찾아왔다. 취업 준비에 지쳐 우울하다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번 주말에 시간 있어? 템플스테이라고 있어.”
후배는 처음엔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결국 따라오기로 했다. 1년 전의 나처럼.
얼마 전 엄마가 말했다.
“너 정말 많이 변했구나. 예전엔 늘 불안해 보였는데, 요즘은 편안해 보여.”
맞다. 나는 변했다. 하지만 특별한 깨달음을 얻은 건 아니다. 그저 매일 조금씩, 한 걸음씩 나아갔을 뿐이다.
불교는 나에게 종교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 되었다. 이 가르침이 주는 지혜를 일상에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찾은 길이다.
지금도 매일 아침 108배를 한다. 1번째 절에서는 오늘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54번째 절에서는 힘들어하는 모든 청춘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108번째 절에서는 발원한다. 오늘도 깨어 있는 하루를 살겠다고.
방황하던 스물다섯의 나는 이제 스물여섯이 되었다. 여전히 미래는 불확실하고, 가야 할 길은 멀다. 하지만 이제는 불안하지 않다. 내 속도로, 내 호흡으로, 한 걸음씩 가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자기 자신의 등불이 되어라(自燈明)” 라고. 나는 오늘도 내 안의 작은 등불을 켜고 길을 간다. 때로는 바람에 흔들리고, 꺼질 것 같아도, 꾸준히 나아간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지금 방황하고 있다면, 한 번쯤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잠시 디지털 기기를 내려놓고, 고요히 앉아 자신의 호흡을 느껴보길. 그 작은 시작이 당신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그 한 걸음을 내딛는 용기, 그것이 시작이다.
* 이 글은 <제12회 대한불교조계종 신행수기 및 제6회 발원문 공모전> 중, 동국대 총장상 수상작이다.
김휘웅(담연)__동국대학교 대학원 재학
.png)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