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기 좋은 그곳, 깨달음은 반드시 어렵지만은 않으니

아! 적멸보궁! 그 빛과 깨달음 속으로 /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


법흥사의 평화로운 오후


적멸위락(寂滅爲樂)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다

이토록 가까이에 이토록 찬란한 깨달음의 장소가 있다니. 법흥사 가는 길은 멀거나 험하지 않아서 좋다. 멀고 험해서 더 곡진한 깨달음을 주는 곳이 있고, 의외로 너무 쉽고 간단해서 명쾌한 깨달음을 주는 곳도 있다. 법흥사는 후자다. 법흥사는 어렵지 않다. 그래서 더욱 신기하다. 가는 길에 어떤 험난함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법흥사를 다녀오면 마음이 신기하게도 해맑게 가라앉는다. 마치 엄청난 수행이라도 해본 것처럼, 그저 한 번 다녀왔을 뿐인데도 마음 속에 든든한 깨달음의 봇짐이 그득히 쌓이는 느낌이다. 굳이 가르쳐주지 않으려 하는데도 뭔가 저절로 배워지는 느낌. 굳이 깨달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깨달음이 어느새 세포 속으로 저절로 스며드는 느낌. 법흥사는 나에게 깨달음이 반드시 어려울 필요는 없다는 놀라운 가르침을 준 곳이다. 불교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소개해주고 싶은 적멸보궁도 바로 이곳이다. 이곳에는 화엄사 같은 장엄함도, 석굴암 같은 신비로움도 없지만, ‘있어야 할 것’은 다 있다. 복잡한 건축물이나 장엄한 기념물 같은 것은 없지만, 우리가 ‘사찰’이라고 떠올렸을 때 있음직한 모든 것들이 다 있다. 고요함이 있고, 성찰의 기운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아무도 밀어내지 않는 따스한 환대’가 있다. 누군가 갑자기 친절하게 대해주는 환대가 아니라, 아무 말이 없는데도 저절로 느껴지는 환대. 그것은 바로 장소 자체가 선물하는 따스함일 것이다.

오랫동안 내 마음 한구석에 걸려 있던 문장이 있었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 스무 해 넘게 품고 다닌 네 구절의 게송이었다.

"모든 것은 덧없으니, 이것이 나고 사라지는 법이다. 나고 사라짐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고요히 사라짐이 곧 즐거움이다."

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 (『대반열반경』)

앞의 두 구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도 늙고 꽃도 지고 나 또한 언젠가 사라진다는 것. 그것은 굳이 부처님의 입을 빌리지 않아도 삶이 매일 가르쳐주는 진실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네 글자, 적멸위락(寂滅爲樂)만은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요히 꺼져버리는 것이 즐거움이라니. 불이 꺼지고, 욕망이 꺼지고, 마침내 나라는 존재의 불씨마저 꺼지는 것이 어떻게 기쁨일 수 있단 말인가. 나에게 그 말은 삶에 대한 가장 정교한 체념처럼, 뜨거운 것들을 사랑해본 적 없는 사람들의 차가운 위로처럼 들렸다. 나는 뜨거운 것들을 사랑했다. 문장을, 사람을, 늦은 밤의 열정적인 대화를, 글을 쓰다가 작가 자신이 울게 되는 그런 원고를. 그 모든 것이 꺼지는 것이 행복이라면, 나는 차라리 행복하지 않은 채 불타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그 문장을 가슴에 품은 채, 강원도 영월로 향했다. 한국에 다섯 곳 있다는 적멸보궁(寂滅寶宮),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기에 법당에 불상을 두지 않는 그 특별한 곳들 가운데, 깊은 산속에 숨어 있다는 사자산 법흥사로. 이름에 이미 '적멸'이 들어 있는 그곳이라면, 어쩌면 이 오래된 질문의 가시를 뽑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니 적어도 가시가 왜 박혔는지는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서.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중대, 설악산 봉정암, 정선 정암사, 그리고 영월 법흥사. 신라의 자장율사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정골사리와 가사를 받아 돌아와 곳곳에 나누어 모셨다는 전승이 이 다섯 성지를 하나로 묶는다. 법흥사는 선덕여왕 12년, 643년에 자장이 창건하여 처음에는 흥녕사(興寧寺)라 불렸다고 전한다. 신라 말에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獅子山門)의 중심 도량이 되었고, 몇 번의 화재와 폐허를 거쳐 20세기 초에 이르러 오늘의 이름을 얻었다. 흥녕, 즉 '평안을 일으킨다'는 이름이 '법을 일으킨다'는 이름으로 바뀌는 천삼백 년의 시간. 나는 그 이름의 변화부터가 이미 하나의 설법처럼 느껴졌다. 평안은 법으로부터 오는 것이지, 평안을 직접 붙잡으려 해서는 결코 오지 않는다는.

법흥사의 고요한 오후 풍경
법흥사 진입로의 고즈넉한 풍경

산과 바람을 건축의 일부로 삼은 산사의 아름다움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의문이 또 있었다. 계곡을 따라 자동차가 달리는 동안 나는 한 아이의 탄생을 떠올렸다. 기원전 6세기 무렵, 지금의 네팔 땅 룸비니 동산. 카필라바스투의 왕비 마야는 친정으로 가던 길에 아들을 낳았다. 전승은 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한 손은 하늘을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고 전한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天上天下 唯我獨尊)

젊은 시절 나는 이 말이 불편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가르침의 시작이 이토록 거대한 자기 선언이라니. 그러나 이번 길 위에서 나는 이 문장 바로 뒤에 놓인, 경전이 조용히 덧붙이는 사실 하나에 오래 머물렀다. 아이를 낳은 지 이레 만에 어머니 마야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 그러니까 이 '존귀한 나'는 태어나자마자 가장 근원적인 상실을 겪은 아이였다.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 채 이모의 품에서 자랐다. 나는 문득 '유아독존'이 오만의 선언이 아니라, 어쩌면 한 생명이 이 세상에 던져질 때 누구나 짊어지는 절대적 고독의 이름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무도 나를 대신해 태어나줄 수 없고, 아무도 나를 대신해 죽어줄 수 없으며, 아무도 나를 대신해 깨달아줄 수 없다는 것. 그 고독이 존귀한 까닭은, 바로 그 고독 속에서만 각자의 해방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계곡의 물소리가 달리 들렸다. 물은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웅덩이를 만나면 채운 뒤 넘쳐흐른다. 물은 한 번도 다른 물을 대신해 흐르지 않는다. 모든 물방울이 저마다 홀로, 그러나 함께 바다로 간다.

법흥사 경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압도당하지 않는다'는 감각이다. 한국의 산지가람(山地伽藍)이 대개 그렇듯, 이곳의 건축은 산을 정복하지 않고 산의 경사에 몸을 맡긴다. 평지 사찰이 중심축을 따라 탑과 금당을 일직선으로 늘어놓아 권위의 질서를 만든다면, 산지 사찰은 지형이 허락하는 만큼만 터를 닦고 계곡과 능선의 흐름을 따라 전각을 흩어 앉힌다. 서양의 대성당이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솟구치며 인간의 열망을 돌로 증명하려 했다면, 한국의 산사는 수평으로 번지며 산의 품에 안기는 쪽을 택했다. 기술적 화려함이 아니라 자연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택한 것이 아닐까.

이 선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개념이 차경(借景)이다. 경치를 빌린다는 뜻. 한국 건축은 담장 너머의 산, 처마 끝에 걸린 하늘, 기둥 사이로 흘러드는 계곡을 모두 건축의 일부로 끌어들인다. 이렇게 경치를 빌리는 ‘차경’의 사유를 품은 건물은 완결된 오브제가 아니라 풍경을 담는 액자이자, 풍경을 향해 열린 창이다. 법흥사의 전각들 사이를 걸으면, 어디서든 사자산의 능선이 지붕선과 겹쳐 보인다. 처마의 곡선은 산등성이의 곡선을 닮았고, 산등성이는 다시 처마의 곡선을 받아 이어진다. 누가 누구를 흉내 내는지 알 수 없는 이 겹침이야말로 한국 건축미의 핵심이다.

한옥의 처마를 올려다보면, 그것이 결코 직선이 아님을 알게 된다. 정면에서 보면 양 끝이 살짝 들려 올라가는 앙곡(昂曲)이 있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가운데가 안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가는 안허리곡이 있다. 이 두 곡선이 합쳐져, 무거운 기와지붕은 마치 날개를 편 새처럼 가벼워진다. 수 톤의 기와를 이고 있으면서도 지붕 양쪽 날개는 마치 날아오를 듯가벼워보이는 이 아름다운 역설. 건축사가들은 이것을 착시 교정의 지혜로 설명한다. 완벽한 직선의 처마는 멀리서 보면 오히려 가운데가 처져 보이기 때문에, 장인들은 곡선을 넣어 눈이 느끼는 무게를 덜어냈다. 무거운 것을 무겁지 않게 드는 기술, 그것은 곧 삶의 기술이기도 하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는동안, 나는 어느덧 일상의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오직 사찰의 기와와 산봉우리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곡선의 역동적인 움직임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나는 문득 싯다르타가 궁궐의 네 문을 나섰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른바 사문유관(四門遊觀). 아버지 숫도다나 왕은 아들이 출가하리라는 예언을 두려워하여 싯다르타를 세상의 모든 고통으로부터 격리시켰다. 궁 안에는 늙은 이도, 병든 이도, 시든 꽃도 없었다. 그러나 청년은 동문을 나서 허리가 굽은 노인을 보았고, 남문을 나서 병자를 보았고, 서문을 나서 장례 행렬을 보았으며, 마지막 북문을 나서 고요한 얼굴의 수행자를 보았다.

물론 스물아홉 해 동안 늙음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사실보다 깊은 진실을 말한다. 우리 모두는 한때 그런 궁궐 속에 산다. 늙음과 병과 죽음이 '남의 일'인 궁궐.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그것이 나의 일이라는 사실과 정면으로 마주치는 순간이 온다. 사랑하는 이의 병상 곁에서, 거울 속 낯선 흰머리 앞에서, 부고 문자 한 줄 앞에서. 싯다르타가 특별했던 것은 고통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다. 누구나 고통을 본다. 그가 특별했던 것은, 고통을 본 뒤에 다시는 궁궐로 돌아가 문을 닫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싯다르타는 세상의 고통 속으로 몸을 던졌고, 나 혼자만 깨달아 행복한 삶이 아니라, 중생의 고통을 끝까지 함께 하는 드넓은 깨달음의 광야 속으로 걸어갔다.

법흥사 가는 길
적멸보궁 오르는 길
적멸보궁 오르는 길

적멸보궁으로 향하는 소나무 숲길, 나의 지난 열정을 돌아보다

법흥사에서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길은 소나무 숲길이다. 한국 사찰의 진입로는 대개 건축적 장치로서의 '과정'이다.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을 차례로 지나며 속세의 먼지를 한 겹씩 벗겨내도록 설계된 길. 그런데 법흥사의 이 숲길은 인간이 세운 문 대신, 수백 그루의 소나무가 문이 되어준다. 붉은 껍질의 금강송 계열 소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저마다 다른 각도로 몸을 비틀며 서 있다. 곧게 뻗은 나무는 거의 없다. 바람과 눈과 경사가 수십 년, 수백 년에 걸쳐 저 몸들을 휘어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휘어진 나무들이 모여 이루는 숲은 조금도 어지럽지 않다. 저마다의 굽음이 서로를 비켜 가며 빛을 나누고, 그 결과 숲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호흡처럼 균형을 이룬다.

소나무들 사이를 걸으며 나는 내 삶의 고행들을 헤아려보았다. 밤을 새워 쓰던 원고들, 스스로를 몰아세우던 문장들, "이만큼 괴로워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믿음. 나는 오랫동안 고통의 양으로 진정성을 증명하려 했다. 뜨겁게 타는 것만이 살아 있는 것이라 믿었다. 그 믿음이 바로 내가 '적멸위락'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유였음을, 나는 그 숲길 한가운데서 처음으로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나에게 불꽃은 곧 나 자신이었다. 그러니 불이 꺼진다는 말은 내가 사라진다는 말로만 들렸던 것이다. 열정을 마치 산소처럼 호흡해야만 직성이 풀렸던 나의 지난 날은, 아름다웠으나 너무 고되었다. 일에 대한 열정을 피워올리느라 정작 마음 공부는 뒷전일 때가 많았다. 적멸보궁 기행은 나에게 그런 ‘마음 공부’의 틈새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렇게 일상의 리듬을 와락 깨뜨려버려야만 비로소 다가오는 깨달음이 있다. 열정은 뜨거워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나는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던 것이다. 때로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어쩌면 중용을 찾은 것만 같은 그런 고요한 열정도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배우고 있다. 마치 화려하지도 난해하지도 않은, 언뜻 보면 너무도 얌전하고 모범생 같은 법흥사가 나에게 더 많은 깨달음을 준 것처럼.

자장율사가 수도한 토굴과 법흥사 사리탑
법흥사 사리탑

빈 불단 앞에서 염송하는『금강경』

숲길이 끝나갈 무렵, 조그만 샘이 있었다. 약수 한 모금을 마시고 숨을 고르는데, 바람이 소나무 가지를 훑고 지나가며 파도 같은 소리를 냈다. 송뢰(松籟), 옛사람들이 소나무 바람 소리를 부르던 말.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붓다가야의 밤을 떠올렸다. 우유죽으로 기운을 차린 싯다르타는 보리수 아래 풀방석을 깔고 앉아 맹세했다고 한다.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 밤, 마라가 왔다. 욕망과 죽음의 신 마라는 먼저 아름다운 딸들을 보내 유혹했고, 다음엔 무시무시한 군대를 보내 위협했으며, 마지막으로 가장 교활한 질문을 던졌다. "네가 깨달음을 얻을 자격이 있다는 걸 누가 증명해주는가?"

그때 싯다르타는 말없이 오른손을 내려 땅을 짚었다. 대지가 나의 증인이라는 몸짓. 이것이 수많은 불상에서 볼 수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경주 석굴암 본존불의 오른손이 무릎 아래로 늘어뜨려져 손끝이 대좌를 향하는 그 자세. 동남아시아에서는 이때 대지의 여신이 솟아올라 머리칼에서 물을 짜내어 마라의 군대를 휩쓸었다는 이야기로 발전하기도 했다.

나는 이 몸짓이 사무치게 좋다. 마라의 마지막 질문은 사실 우리 모두가 밤마다 듣는 목소리다. "네가 뭐라고. 네가 그럴 자격이 있어? 누가 너를 인정해줬는데?" 인정받지 못한 글, 증명되지 못한 재능,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력 앞에서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거창한 시련이 아니라 바로 이 조그만 속삭임이다. 싯다르타는 그 질문에 논리로 답하지 않았다. 하늘을 가리키지도, 스승의 이름을 대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땅에 손을 댔다. 내가 여기 앉아 있다는 것, 이 땅 위에 이 몸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증거라는 듯이. 싯다르타의 이 몸짓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마치 찬란한 깨달음의 춤사위 같다.

그 밤이 새고 샛별이 뜰 무렵, 그는 깨달았다. 무엇을? 초기 경전은 그것을 연기법으로, 사성제로, 사선정과 삼명(三明)으로 다양하게 전한다. 그러나 가장 먼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기쁨의 게송이었다고 전한다. 수많은 생을 헤매며 이 집을 지은 자를 찾았는데, 이제 너를 보았으니 너는 다시 집을 짓지 못하리라는, 서까래는 부서지고 대들보는 무너졌다는 노래.

"집을 짓는 자여, 이제 너를 보았다. 너는 다시 집을 짓지 못하리라. 너의 모든 서까래는 부서졌고, 대들보는 무너졌다." (『법구경』 제154게)

건축의 은유다. 나는 사찰의 서까래를 올려다보며 이 게송을 되뇌었다. 우리는 평생 집을 짓는다. 나라는 집, 내 이야기라는 집, 내가 옳다는 집,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집. 그리고 그 집을 지키기 위해 괴로워한다. 그 밤 싯다르타가 본 것은 집을 부순 뒤의 폐허가 아니라, 집 짓기를 멈춘 뒤에야 비로소 보이는, 무한을 향하여 드디어 열린 눈부신 하늘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숲이 열리며 적멸보궁이 나타났다. 적멸보궁은 아무도 앉아 있지 않기에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불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 불상이 없기에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만으로 충분하니까, 그 어떤 화려한 불상도 필요없다는 그 발상 자체가 멋지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면, 누구나 한순간 멈칫하게 된다. 불단 위에 부처님이 없다. 대웅전에 들어서면 늘 마주하던 금빛 불상, 그 자비로운 눈과 가느다란 미소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다. 대신 불단 뒤편으로 난 창이 산을 향해 열려 있고, 그 너머 산자락 어딘가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법흥사의 사리는 정확히 어디에 모셔져 있는지 밝히지 않았다고 전한다. 도난과 훼손을 막으려 했다는 현실적 설명이 따르지만, 나는 그 비밀이 곧 가르침이라고 느꼈다. 사람들은 비어 있는 불단 앞에서, 보이지 않는 사리를 향해, 창 너머의 산에 절을 한다.

나는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빈 불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창 너머, 초록이 무성한 산비탈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사리탑도, 불상도, 표지판도. 오직 나무와 바람과, 구월 오후의 비스듬한 빛이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 오래전에 외웠던 『금강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무릇 형상 있는 모든 것은 다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님을 본다면, 곧 여래를 보리라."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금강반야바라밀경』)

그리고 이어지는 더 서늘한 한 구절.

"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려 한다면, 이 사람은 삿된 길을 걷는 것이니 여래를 볼 수 없으리라."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같은 경)

그 순간 나는 이해했다. 아니, 이해했다기보다는, 무엇인가가 조용히 내 안에서 자리를 바꾸었다.

나는 평생 부처님을 형상으로 보려 했다. 금빛 불상으로, 경전의 문장으로, 깨달음이라는 개념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형상으로 보려 했다. 이런 글을 쓰는 사람, 이만큼 뜨거운 사람, 이것을 사랑하는 사람. 그 형상이 꺼지는 것이 두려워, '적멸'을 죽음으로만 읽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빈 불단은 말하고 있었다. 형상이 비어 있는 자리가 가장 충만할 수 있다고. 부처는 이곳에 '없음'으로 가장 강렬하게 '있다'고.

적멸(寂滅)의 '멸'은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열병의 소멸이었다. 나는 뜨거움과 불타오름을 혼동했던 것이다. 삶을 사랑하는 뜨거움과, 삶에 집착하여 스스로를 태우는 불길을. 문장을 사랑하는 마음과, 인정받지 못하면 무너질 것 같은 조바심을.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 사람을 잃을까 두려워 밤새 뒤척이는 불안을.

적멸위락. 고요히 꺼짐이 즐거움이다. 그것은 이제야 이렇게 읽혔다. 열병이 내린 뒤의 이마처럼, 오래 끓던 물이 불에서 내려져 고요히 식어갈 때 비로소 그 물속까지 비치는 맑음처럼. 즐거움은 불꽃 속에 있지 않았다. 불꽃이 가라앉은 뒤에야 보이는, 원래 거기 있던 것들 속에 있었다. 산이, 바람이, 빛이, 그리고 나라는 것이 사실은 처음부터 그 풍경의 일부였다는 사실 속에.

불상이 없는 법당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사리탑을 바라보도록 되어 있다

사라지는 것들을 사랑하는 법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법흥사를 떠나기 전, 나는 경내 한쪽 돌계단에 앉아 사자산의 능선을 오래 바라보았다. 구월 오후의 빛은 전각의 처마 끝을 금빛으로 적셨고, 기와골을 따라 그림자가 한 줄씩 길어지고 있었다. 단청의 초록과 붉은빛이 저녁 햇살 속에서 한층 깊어졌다. 한국 사찰의 단청은 흔히 목재를 보호하는 기능적 장치로 설명되지만, 이 시간의 단청은 기능을 넘어 거의 음악처럼 보인다. 오방색의 반복과 변주가 서까래를 따라 리듬을 이루고, 그 리듬은 처마의 곡선을 타고 흘러 산의 초록 속으로 녹아든다. 인공의 색채가 자연의 색채와 다투지 않고 서로를 비추는 것, 그것이 한국 산사의 단청이 이루어낸 가장 드문 조화다.

그 빛 속에서 나는 부처의 마지막 날들을 생각했다. 여든의 부처는 대장장이 춘다가 올린 공양을 먹고 심한 병을 얻었다. 그 음식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논쟁거리다. 그러나 경전이 전하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그다음이다. 죽음을 앞둔 부처는 아난다에게 춘다를 찾아가 위로하라고 이른다. 사람들이 춘다를 원망하지 않도록, 춘다 자신이 죄책감에 빠지지 않도록. 여래가 깨달음을 얻기 전에 받은 공양(수자타의 우유죽)과, 여래가 완전한 열반에 들기 전에 받은 공양(춘다의 음식)은 똑같이 큰 공덕이 있다고 전하라고. (『디가 니까야』 제16경 「대반열반경」)

나는 이 대목에서 울었다. 삶의 시작에서 받은 한 그릇의 죽과, 삶의 끝에서 받은 한 그릇의 음식을 똑같이 축복하는 마음. 자신을 살린 음식과 자신을 죽음으로 이끈 음식을 구별하지 않는 마음. 그것은 삶과 죽음을, 받은 것과 잃은 것을 둘로 나누지 않는 불이(不二)의 마음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마지막 순간까지 타인의 죄책감을 걱정했다.

사라쌍수 아래 누운 부처에게 아난다는 울며 말했다. 스승께서 떠나시면 저희는 무엇을 의지해야 합니까. 부처는 답했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 머물되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지 말라.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아 머물되 다른 것을 의지처로 삼지 말라."

(『디가 니까야』 제16경 「대반열반경」)

수 같은 삶 속에서 발 딛고 설 수 있는 섬, 그리고 어둠 속에서 스스로 밝히는 등불. 그리고 마지막 말.

"비구들이여, 이제 너희에게 말하노니, 형성된 모든 것은 소멸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

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러니 게을리하지 말라. 나는 예전에 이 두 문장 사이에 놓인 논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애써 정진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러나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그토록 소중한 것이다. 무상(無常)은 허무의 근거가 아니라 간절함의 근거였다.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라면 굳이 오늘 사랑할 필요가 없다. 사라지는 것이기에, 오늘 사랑해야 한다.

법흥사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소나무 숲 쪽을 돌아보았다. 숲 너머, 보이지 않는 적멸보궁. 그 안의 빈 불단. 불단 뒤의 창. 창 너머 어딘가, 누구도 정확한 자리를 알지 못하는 부처님의 사리.

나는 문득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도 저런 적멸보궁이 하나씩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누군가를 잃은 자리, 무엇인가를 포기한 자리, 한때 뜨겁게 타오르다 꺼져버린 자리. 우리는 그 빈 자리를 견딜 수 없어 무엇이든 채워 넣으려 한다. 새 사람으로, 새 일로, 새 불안으로. 그러나 적멸보궁은 가르쳐준다. 그 자리는 채울 필요가 없다고. 그 빈 자리야말로 창을 열 수 있는 자리라고. 불상이 서 있던 자리가 비어 있기에 산이 보이듯, 내가 움켜쥐고 있던 무엇인가가 비워진 자리로 비로소 세계가 들어온다.

적멸보궁의 빈 불단은, 부처라는 형상조차 내려놓으라는 가장 급진적인 설법이 아닐까. 부처를 가장 깊이 만나는 곳에서, 부처는 사라져 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스무 해 동안 걸려 있던 가시가 어느새 빠져나간 것을 알았다. 억지로 뽑아낸 것이 아니었다. 오래 박혀 있던 가시가 살 속에서 서서히 녹아 사라지듯, 그것은 이해의 순간이 아니라 이해가 스며드는 시간 속에서 그렇게 되었다. 적멸위락. 고요히 꺼짐이 즐거움이다. 이제 나는 이 문장을 이렇게 읽는다. 나를 태우던 열이 꺼질 때, 나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세계의 일부로 돌아온다. 뜨거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불길이 아니라 온기가 된다.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비추는 것이 된다. 나는 여전히 문장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늦은 밤의 대화를 사랑할 것이다. 다만 이제는 그것들을 잃을까 두려워 불타는 대신, 그것들이 결국 사라지리라는 것을 알기에 더 고요하고 더 깊이 사랑하고 싶다. 어느덧 밤하늘에 별이 떴다. 싯다르타가 보리수 아래에서 보았다는 그 샛별도, 어쩌면 저 별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별빛은 수천, 수만 년 전에 떠난 빛이다. 그 별은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 빛은 지금 여기, 어두운 산길을 달리는 한 사람의 눈에 닿아 길을 비춘다. 사라진 것이 가장 멀리까지 비춘다. 빈 자리가 가장 환하다.

 

글/정여울__작가. 『데미안 프로젝트』,『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끝까지 쓰는 용기』저자

사진/이승원__작가.『사라져서 아름다운』『공방예찬』,『학교의 탄생』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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