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無心)으로써 기도하며, 맛으로써 법(法)의 향기를 전하며

슬기로운 수행생활 · 지견 스님 편



의심 없는 기도의 지혜

달빛이 아름다운 절이라며 한 객스님이 이름 지어 준 ‘월명사’. 이 절의 주지인 지견 스님은 사찰음식 1호 명장인 선재 스님에 이어, 전국 비구니 스님들의 총본부인 ‘비구니회관’의 사찰음식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사찰음식 장인이다.

음식을 대하는 스님의 태도는 법당에서의 기도만큼이나 엄격하다. 음식을 만드는 전 과정이 수행과 같기에, 공양간은 칼을 쥐고 불을 다루는 또 하나의 엄숙한 법당인 것이다. 그러기에 스님에게 음식을 만드는 것은 수행의 또 다른 행위이다. 한편 은사 스님들로부터 받은 지극한 자비를 세상으로 회향하는 일이다.

지견 스님(왼쪽)과 은사 동찬 스님
지견 스님(왼쪽)과 은사 동찬 스님

절에서 살기 시작한 일곱 살부터 익힌 공양간 일은 고되기도 했지만 어른 스님들과 도반들의 인정과 칭찬 속에 즐거움이 되고, 특기가 되었다. 한 복지관의 요청으로 강의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사찰음식 전문가가 되었고, 고운사에서 연수 국장으로 있던 템플스테이 초창기 때는 사찰음식을 템플스테이에 최초로 도입해 사찰음식 대중화에 앞장섰다.

대외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면서도 스님의 삶의 중심축은 언제나 ‘기도’였다. 중심이 단단하지 않으면 외부의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린다. 그러기에 매일 밥을 먹듯, 양치를 하듯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무조건 하는 것. 김연아 선수가 “무슨 생각으로 연습하느냐”는 질문에 “무슨 생각을 하냐, 그냥 하는 거지”라고 답한 것처럼 지견 스님에게 기도는 그러한 것이다.

“무언가 가피를 입거나 목적을 이루겠다는 생각조차 없이, 공기를 마시듯 당연하게 행하는 루틴이 되고 습관이 돼야 해요. 무심(無心)의 상태에서 경전을 읽고 기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 툭 떠오르는 게 있어요. 가령 소식이 끊겼던 신도나 가엾은 인연의 얼굴이 번뜩 떠오르면 어김없이 그 사람에게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와요. 도량에 중대한 결정이 앞두고 있을 때는 기도 중에 지혜의 메시지처럼 명확한 답이 머릿속에 떨어지죠.”

애초에 스님에게 기도는 신심에서가 아닌 ‘나’를 탐구하기 위한 치열한 여정이었다. 남다른 환경에서 자랐기에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본질적 의문이 싹텄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목에서 피가 터져 나올 만큼 매일 다라니를 독송했다.

그러한 내공 덕에 혼신을 다해 올리는 스님의 기도는 대중을 압도한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려는 기도 소리에 반해 절에 다닌다는 신도가 있을 정도이다. 스님들 셋이 돌아가며 서는 철야 기도를 혼자서도 여유롭게 받아내고, 제사를 지낼 때마다 혼신을 다하는 스님의 정진 앞에 신도들은 새삼스러운 경외감을 갖곤 한다. ‘나’를 이해하기 위한 기도의 거친 여정은 이제 스님을 지탱하는 단단한 중심이 되었다.

한불수교 140주년 기념행사에서 한국 전통 장을 활용한 배추샐러드를 시연하는 지견 스님

한불수교 140주년 기념행사에서 한국 전통 장을 활용한 배추샐러드를 시연하는 지견 스님

프랑스인들도 반한 발효의 뿌리, 장맛

스님의 하루는 새벽 5시, 기도로 도량의 고요를 깨우며 시작된다. 몸이 부서질 듯 피곤한 날에도, 과거 코로나에 걸려 고열로 온몸이 들끓던 순간에도 새벽 기도를 거른 적이 없다.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해내는 근성으로 스님은 현재『법화경』을 231번째 완독해 나가고 있다. 7장으로 된『법화경』을 일주일에 한 장씩 읽어 내리길 5년째. 출장이나 만행을 떠날 때도 스님의 바랑 속에는 벽돌 같은 경전이 한자리를 차지한다.

팔순이 될 때까지『법화경』천 번을 완독하겠다는 서원을 세웠기에, 스님은 “이 기도를 성취하기 전까지는 부처님이라도 나를 데려갈 수 없다”며 장수하는 남다른 비책을 귀띔해 준다. 이렇듯 쉼 없이 차오르는 기도의 에너지로써 스님은 절의 제사며 천도재는 물론 사무 업무 및 사찰음식 연구와 강의, 방송, 해외 활동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일들을 거뜬히 해내고 있다.

최근 스님은 한불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프랑스 행사에도 다녀왔다. 문화예술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자리에서 스님은 사찰음식의 거장인 정관 스님을 도와 500명분의 음식을 케이터링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굶고 지내는지, 음식이 세팅되기 무섭게 순삭하더군요.(웃음) 원체 잘들 먹으니 보조였어도 신나게 준비했죠. 미슐랭의 본고장 유명 셰프들이 정관 스님을 지원 사격하는 광경 또한 경이롭고 놀라웠어요. 정관 스님의 거장다운 면모와 사찰음식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죠. 세계인들이 한국의 사찰음식에 갖는 인식이 얼마나 우호적이고 깊은지도 새삼 체감했어요.”

이번 행사에서 스님은 메인 강연으로 우리의 장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간장을 이용한 배추샐러드를 시연했다. 간장에 유자청과 매실청, 참기름을 가미한 소스를 만들었는데, 서양 식문화와도 정갈하게 어우러지는 장맛에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프랑스에 치즈와 와인이 있다면, 우리에겐 발효의 뿌리인 특별한 장 문화가 있어요. 예로부터 우리는 콩과 소금과 물, 곡물, 고추 등의 자연 재료에 시간과 햇빛, 바람이 더해 장을 만들어 왔죠. 장은 단순한 소스나 조미료가 아닙니다.”

조만간 있을 비건 페스티벌에서 스님은 비빔밥에 6년 묵힌 고추장을 선보일 예정이다. 파리 한복판에서 프랑스인들의 입맛과 마음까지 매료시킨 장맛이 비건 페스티벌을 앞두고, 달빛이 유난히 아름다운 월명사 장독대에서 더욱더 깊게, 향기롭게 발효 중이다.

아름다운 맛으로 온정을 나누는 카페

달이 채 저물지도 않은 이른 새벽에 가미향의 불빛이 밝혀진다. 알싸한 가을 공기 속을 유영하듯 은은하고도 짙은 향내가 정신을 일깨운다. 월명사 도량 내에는 신도들은 물론 누구든 오가며 쉬어가는 사랑방 같은 공간, ‘가미향’이 있다. ‘아름다운(佳) 맛(味)은 향기(香)를 전한다’는 의미의 이 특별한 이름을 스님은 새벽 기도 중에 떠올렸다.

겉보기에는 여느 카페처럼 커피와 각종 차향이 흐르고, 한쪽에는 사찰음식 장인의 손맛이 담긴 전통 장과 제철 사찰식품이 손님을 맞이하지만, 이곳의 쓰임은 가미향의 뜻 그대로 아름다운 맛으로 자비와 온정을 나누는 것이다. 매년 쌓인 소박한 수익금의 일부가 곳곳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후원금이나 장학금으로 흘러들어간다.

사찰음식의 정갈한 맛과 정신이 따스한 향기로써 세상에 가닿기를 바라는 온정의 나눔. 그 마음을 스님에게 처음으로 알려 준 분은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엊그제 일처럼 그날, 그 손길을 기억하고 있다.

양조장집 양녀로 지내다가, 절에서 살기 위해 낯선 아주머니를 따라나선 버스 안에서 담임선생님을 만났었다. 절에 살러 간다는 내 말에, 선생님은 한참 동안 아무 말 못한 채 내 손을 꼭 쥐고 놓지 못했다. 어린 나이를 향한 그녀의 진심 어린 걱정과 바람, 애틋함이 여린 손등을 타고 전해졌다. 그것은 생애 처음으로 느껴 본 온정이고 자비였다.

선생님의 간절한 무언(無言)의 축원 덕이었는지, 아이는 어머니와 다를 바 없는 스님들의 보호와 보살핌 속에서 무탈하게 자랐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 엄격한 절집 질서 속에서도 은사 스님들이 부어준 깊은 모성애는 세속의 어머니보다 지극하고 애틋했다.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준 이들의 사랑이 거름이 되어, 아이는 단단하고 위풍당당한 수행자로 성장했다.

남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기며, 힘든 처지의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품어 안는 자비로움은 은사들로부터 물려받은 법(法)의 전승이 아닐 수 없다. 그 귀중하고 아름다운 유산을, 스님은 오늘도 기도로써, 맛으로써 부지런히 세상과 나누고 있다.

※ 한불수교 140주년 기념행사 사진 제공 ·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함영
1998년부터 글을 지어 다양한 매체에 기고했고
, 코리아『빅이슈』에서 편집장을 지냈으며, 글짓기와 기획 및 출판 등으로 곰탕을 끓여 꽃을 꽂고 있다.『밥맛이 극락이구나』, 『곰탕에 꽃 한 송이』, 『노란 문 공양간이 열리면』 등 다수의 책과 연재물을 지어 ‘음식과 사람의 인연을 통한 성찰’이라는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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