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기를 - 세계적인 명상음악가, 나왕 케촉|세계의 수행자와 밥

서로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기를…

세계적인 명상음악가, 나왕 케촉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에서 음악을 담당했고, 그래미상 후보에도 여러 번 올랐던 나왕 케촉은 리처드 기어의 후원으로 폭넓은 음악활동을 하면서 세계적인 명상음악가로 알려졌다. 그의 음악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유도해 병원에서 산모나 임종직전의 환자들에게도 활용되고있다.

무대 위에 선 그는 강력하고도 평화로운 에너지를 발산하며 신령스러울 만큼 묘한 카리스마가 넘쳤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조용히 눈물만 흘렸다.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듯, 그가 느끼는 슬픔과 연민은 무척이나 깊었다. 한동안 정적이 흐르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마음을 추스른 그가 겨우 다시 입을 뗐다.

“하물며 작은 가시에 손가락을 찔려도 아픔을 참기 힘든데, 자신의 몸을 불태운다는 게 얼마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일이겠어요. 어느 누구도 그렇게 되길 원치 않을 겁니다. 그런 행위가 쓸데없고 자기 생명에 대한 가혹한 행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티베트의 상황은 비참하고 절망적입니다.”

나라를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자신의 몸에 스스로 불을 지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중국의 지배하에 있는 티베트의 분신 희생자 수가 120명을 넘어섰다. 그들의 고통과 신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듯, 그는 말하는 중간중간에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거나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침묵하곤 했다.

나왕 케촉은 여러 악기와 협연해 사람들에게 더욱 큰 감동을 선사해왔다. 지난해에는 한국 스님의 법고와 협연하기도 했고, 평소 피리를 연주할 때는 중간에 자신의 염불 소리를 넣어 남다른 음악세계를 선보인다.

현재 티베트에서는 위험하고 무서운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많은 도시들이 티베트인들보다 중국인들이 훨씬 많은 중국 도시로 변했다. 유목민 문제만 해도 상황은 심각하다. 유목은 티베트 고유의 생활 방식이며 가장 중요한 문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의 유목민 말살정책으로 인해 유목민이 사라지고 있다.

“티베트 유목민은 평화를 좋아하고 높은 산에서도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왔어요. 그런데 갑자기 중국 정부에서 야크나 염소들이 풀을 지나치게 뜯어 먹어 환경을 파괴한다는 구실로 그들을 산에서 쫓아내고 있어요. 처음엔 도시에 집을 지어 살게 하고 생활비를 지원해주는데, 일정 기간이 끝나면 지원비가 끊겨 생활이 무척 힘들어집니다. 산에서 가축을 키우며 살아온 유목민이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겉보기엔 티베트가 중국 덕분에 문명화되고 발전되는 듯 보이지만, 그 안의 모든 이익은 중국에게 돌아가고 이면에 가려진 티베트인의 생활은 불행하고 비참할 뿐입니다.”

티베트는 남극과 북극에 이어 ‘Third Pole’로 불릴 만큼 수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게다가 금과 은, 동뿐만 아니라 기름과 폭탄을 제조하는 광물 등 다양하고 풍부한 자원이 매장돼 있다. 중국 정부가 세계 과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티베트 유목민을 말살하려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자원을 차지해 경제적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지구환경 파괴와 세계의 고유 문화유산이기도 한 유목문화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을 이해할 때 따로따로 구분해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국을 바라볼 때도 그러하죠. 말하자면 중국은 중국 정부와 민족으로 구분해서 생각해야 해요.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이들은 중국 민족이 아니라 정부니까요. 중국 민족도 그들 정부로 인해 평화롭지 못하고 고통받고 불행한 상황에 처한 경우가 많고, 중국 정부 안에서도 티베트인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은 따로 있어요. 그래서 중국을 미워하고 원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왕 케촉은 한국 절과의 인연으로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한 바 있다. 한국을 방문하면 주로 절이나 명상 관련 장소에서 마음의 평화를 위한 작은 연주회를 열어왔다.

‘서로에게 친절한’ 화합의 음식, 비빔밥
그는 피리를 연주하는 음악가다. 피리를 연주하기 전 그는 이와 같은 전주를 들려준다.

“We are all be kind each other…”

평소 자신의 간절한 서원을 나지막한 소리로 읊조리며 그는 강력한 염원을 담아 사람들에게 주문을 걸 듯 속삭인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사람들은 그 순간만이라도 그의 바람처럼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모두 서로에게 친절하기를, 서로에게 사랑을 베풀기를….

그의 음악은 음악이라기보다는 ‘염원’이다. 그리고 ‘자연’이다. 신성하고도 맑은 산의 기운이며, 히말라야의 눈과 바람과 새의 소리이며, 티베트인의 서원을 담고 바람에 나부끼는 룽따의 춤이다. 그러한 에너지와 기억들을 몸으로 간직하고 있는 유목민의 채취이고 향수이며 그리움이기도 하다. 연주 도중 그의 목울대를 타고 흘러나오는 저음의 신묘한 소리는 더구나 그러하다. 그 소리에는 우주의 메시지와 진언이 담겨 있다. 인간의 입으로 내는 소리가 세상 그 어떤 음악보다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의 소리를 통해 알게 됐다. 피리와 염불로 은밀하게 속삭이는 애절하고 간절한 소리, 그 누구와도 뜨겁게 교감되는 소리, 그 누구라도 자비와 평화를 염원하게 하는 소리…. 그에게는 그런 이중의 언어가 있다.

인천의 한 절에서 후원하는 행사에 참여해 연탄을 배달하고 있는 나왕 케촉. 한국에서의 일정 중 가장 보람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일찍이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에서 음악을 담당했고, 그래미상 후보에도 여러 번 올랐으며, 리처드 기어의 후원으로 폭넓은 활동을 하면서 세계적인 뉴에이지 음악가로 알려진 나왕 케촉. 그가 피리를 불면 히말라야의 독수리들이 그 주위로 날아와 앉는다는 전설 같은 일화가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그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실제 그의 음악은 단순한 음악 이상의 의미와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수행자들이 나왕의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고 있고, 티베트 린포체나 스님들도 마음이 불안하고 산란할 때 그의 음악으로 마음을 다스린다고 한다. 미국 시애틀의 한 병원에서는 임종 전 환자들에게 하루 종일 나왕의 ‘콰이어트 마인드(Quiet Mind)’라는 CD를 틀어주어 마음의 평화를 유도하게 하고, 호주에서는 산모들이 나왕의 음악을 들으며 아이를 출산한 결과 출산의 긴장과 불안을 없애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러한 음악들이 순수한 영감과 느낌에만 의존해 즉흥적으로 연주되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왕이 발표한 12장의 CD는 모두 그렇게 만들어졌고, 무대 위에 설 때도 그는 명상을 한 후 영감에 따라 즉흥적으로 연주하곤 한다. 그래서 그는 방금 전 자신이 연주한 곡을 기억하지 못한다. 만일 그가 이전의 음악을 똑같이 재현할 때는, 자신이 연주할 당시 녹음된 자료를 듣고 연습한 결과이다.

음악을 공부하기는커녕 악기를 다뤄본 적도 없고 악보를 읽을 줄도 모르는 수행자가 어느 날 천재적인 음악가가 된 것에 대해, 그는 그저 ‘자연스럽게’ 이뤄진 일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런 음악가에게 가장 소중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를 묻자,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예상외의 답을 했다.

“옛날에 다람살라에서 수행할 때요. 그때는 궁금하거나 의심스러운 게 있으면 존자님(달라이 라마)을 뵙고 직접 질문하고 가르침을 받곤 했어요. 내 생에 가장 소중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죠.”

그때는 무척 가난했지만 행복한 시절이었다. 먹을거리를 해결하기도 힘들어서 처음 수행할 때는 집집마다 탁발이라도 다니며 수행할 각오를 했었다. 그러나 출가한 후 오히려 먹을거리에 대한 염려는 사라졌다. 달라이 라마 망명 사무실의 도움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주식은 인도산 콩을 무르도록 삶아 조리한 ‘달’이라는 음식이었다. 되직한 수프처럼 생긴 달에 밥이나 빵을 찍어 먹거나, 야채를 소로 넣어 만든 ‘로고-모모’라는 빵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수행했다. 은사와 산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수행할 때는 은사를 대접하고자 하는 신도들 덕분에 좀 더 다양하고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수행자에게 음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기에 나왕은 ‘먹는 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저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면 족하다. 그러나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은 음식이 있다. 한국 절에서 먹어본 비빔밥이다. 담백하고 깔끔한 맛도 그러했지만, 고추장을 넣어 여러 야채와 밥을 고루 섞어 먹는 방식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각기 다른 재료들이 하나의 매개체를 통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야 제맛을 드러내는 음식. 말하자면 비빔밥은 ‘서로에게 친절한’ 화합의 음식이다. 피리 소리로 사람들에게 같은 마음, 같은 바람을 소망하게 하는 나왕의 음악처럼, 나왕의 서원처럼….


함영
글짓기를 전생의 업, 내지는 고행으로 생각하는 글쟁이다. 『빅이슈 코리아』 편집장을 지냈으며 글짓기와 출판 기획으로 곰탕을 끓여 꽃을 꽂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밥맛이 극락이구나』, 『인연으로 밥을 짓다』, 『노란 문 공양간이 열리면』, 『스승들이 납시어 어른스크림을 사드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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