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신화 속 최고의 미녀를 극복하라 | 자현 스님의 비하인드 팔상도

인도 신화 속
최고의 미녀를 극복하라

수하항마상도(樹下降魔相圖)

자현 스님
중앙승가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중국은 미녀, 선녀, 인어가 최고라면 인도엔 마왕의 딸이 최고 미녀다?
중국인이 생각하는 최고의 미녀는 누굴까? 중국의 4대 얼짱 하면, ① 월나라의 서시 ② 한나라의 왕소군 ③ 『삼국지연의』의 초선 ④ 당나라의 양귀비를 꼽는다.

서시는 동시효빈(東施效顰)과 서시빈목(西施嚬目) 및 경국지색의 사자성어로 알려져 있다. 미모의 스파이로 오나라의 국력을 쇠하게 해 무너뜨린 인물이다.

왕소군은 소군출새(昭君出塞)라는 회화 소재로 유명하며,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소군원(왕소군의 원망)>에는 그 유명한 “춘래불사춘(봄이 와도 봄 같지 않네)”이라는 구절이 들어 있다.

초선은 소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해 동탁 세력을 붕괴시킨 미녀다. 그러나 정사 『삼국지』에는 등장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이다.

양귀비는 글래머로 당 현종에 의해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뜻의 ‘해어화(解語花)’라는 미칭을 들은 미녀다. 이후 해어화는 기생에 대한 별명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보다 단계가 높은 미녀가 있으니, 선녀다. 그런데 더 웃긴 건, 선녀를 압도하는 게 인어라는 설정이다. 선녀와 인어를 도대체 어떻게 보고 판단한 걸까? 중국의 4대 미녀에 초선이라는 가공의 인물도 들어가니, 중국은 분명 흥미로운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인도의 최고 미녀는 누굴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마왕의 딸이다. 마왕 하면 악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불교의 마왕은 먹튀로 공분을 샀던 론스타와 같은 지능이 높은 신이다.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 정의를 왜곡하는 대형 로펌의 수장 정도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이 때문에 마왕의 딸이 최고 미녀일 수 있는 것이다.


붓다의 위대한 수행에 위기 느낀 마왕의 방해와 대결, 항복 그린 <수하항마도>
통도사 <수하항마도>는 붓다의 위대한 수행에 위기를 느낀 마왕이 자신의 세 딸을 보내 유혹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부분은 그림의 ① 좌측 아래에 있다. 붓다의 앞쪽에 세 미녀가 있고, 붓다가 왼손으로 이들을 가리키자 늙고 추한 몰골로 바뀌는 모습이 확인된다. 그 옆의 글에는 붓다가 “‘너희는 한낱 더러운 것을 담아놓은 가죽 주머니에 불과하거늘, 어찌 사람의 눈을 어지럽히는가!’라며 그녀들을 가리키자, 흰머리의 노인으로 바뀌어 회복될 수 없었다”고 적혀 있다. 미녀들이 순간의 변화에 놀라, 얼굴을 부여잡고 거울을 보는 등의 표현이 흥미롭다.

이 부분의 붓다 표현에는 머리에 물줄기 같은 빛이 뿜어나와 아래의 마왕궁으로 들어가는 것이 있다.

그림의 ② 우측 아래에는 세 딸의 유혹이 실패하자, 마왕이 직접 마군을 이끌고 붓다에게로 진군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마왕은 세 개의 얼굴을 하고 칼을 든 채, 여섯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를 탄 모습이다. 주변에는 기괴한 모습의 마군들이 병장기를 갖추고 북을 치며 진군하는 것이 표현되어 있다. 옆의 글에는 “붓다께서 미간에서 광명을 놓아 마왕의 궁전을 두루 비추니 마왕 파순이 꿈속에서 32가지의 악몽을 꾸게 되었다. 이때 자신의 궁전과 모든 것이 퇴락하는 모습을 보고 두려워 즐겁지 않았다”라고 적혀 있다. 즉 이 부분이 마왕과 붓다가 양립할 수 없는 빛과 어둠의 대칭이자, 마왕이 붓다의 깨달음을 방해하는 원인이라고 하겠다.

그림의 ③ 오른쪽 위에는 마왕과 붓다의 대결이 그려져 있다. 후광을 두른 붓다의 옆에는 머리가 세 개에 칼을 든 마왕이 바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마왕의 군대는 기치창검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실상 밧줄에 묶은 작은 물건을 옮기는 것에 전군의 역량이 집중되어 있다.

내용인즉슨, 마왕의 군대가 붓다를 바다로 던져버리겠다고 호언하자, 붓다는 코웃음을 치며 바위에 물병을 놓고 ‘너희가 이 병은 움직일 수 있겠느냐?’라고 되묻는다. 이로 인해 코끼리까지 포함된 거대한 줄다리기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붓다의 물병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마군은 당황하게 된다. 이는 ‘마왕+마군’이 붓다의 물건 하나도 어찌할 수 없다는 압도적인 차이를 나타낸다. 시쳇말로 게임도 안 되는 상황의 표현인 셈이다.

그러자 마왕은 최후로 붓다와 영혼의 맞짱을 뜨고자 한다. 상황 파악 못 하는 어리석음이라고나 할까?

붓다는 마왕에게 ‘너는 전생에 벽지불에게 공양한 복덕으로 지금 마왕이 되었지만, 나는 수많은 세월 동안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으로 지금 붓다가 되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네가 나를 막을 수 있겠느냐?’라고 말한다. 그러자 마왕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 ‘누가 그것을 증명해주겠느냐?’고 반문한다.

이때 붓다께서 오른손으로 땅을 짚자, 대지의 신이 나와서 이 내용을 증명한다. 이 대목은 그림의 ④ 왼쪽 위에 배치되어 있다. 이를 보면 오른손으로 대지를 짚은 붓다와 땅에서 몸을 반쯤 드러내고 있는 땅의 신들, 그리고 그 옆에는 항복해서 무릎 꿇고 싹싹 빌고 있는 모습의 마군이 나온다.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깨달음의 수인인 ‘항마촉지인’의 유래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인도 문화에는 우리가 ‘하늘에 대고 맹세한다’와 같은 맹세 방식으로 땅을 증거 삼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부분이 신화적인 윤색을 통해 수용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④의 부처님 뒤쪽에는 푸른 잎의 보리수가 그려져 있다. 또 그 위로는 좌측에 붓다의 마왕 항복을 기쁘게 관람하는 천신들의 모습이, 그리고 우측에는 천둥과 번개의 신 등이 바위와 번개를 떨어뜨려 마군을 공격하는 전투 양상이 확인된다. 천둥의 신(뇌신 雷神)은 날개 달린 모습에 손과 발로 여덟 개의 북을 치고 있으며, 심벌즈 같은 요발(바라)을 든 번개의 신(뇌모 雷母)은 요발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바위를 움직여 마군을 공격하는 모양새다.

이렇게 붓다는 가장 혼란한 밤을 마치고 새벽에 샛별, 즉 금성을 바라보며, 최상의 완벽한 깨달음을 성취하게 된다.

자현 스님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율장), 동국대 미술사학과(건축), 고려대 철학과(선불교), 동국대 역사교육학과(한국 고대사), 동국대 국어교육학과(불교 교육), 동국대 미술학과(불화), 동국대 부디스트 비즈니스학과에서 총 일곱 개의 박사 학위를 받았다. 60여 권의 저서와 180여 편의 학술진흥재단 등재지 논문을 수록했다. 현재 문화재청 동산분과 전문위원, 조계종 성보보존회 성보위원, 사)인문학과 명상연구소 이사장, 월정사 교무국장, 그리고 중앙승가대 불교학부 교수 등을 맡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헬로붓다TV’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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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1. 더할나위없이 자태가 곱디 고운 선녀를 보고 더러움을 담은 가죽주머니라 하시니 부처님께 미인계는 통하지 않는걸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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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마치.. 한편을 영화를 보는 듯하게 흥미진진 하게 당시 상황을 상상하면서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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