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광의 불빛에서 자등명을 떠올리다
세 번의 적멸보궁 기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내 안에는 풀리지 않는 물음 하나가 남아 있었다. 산에서 내려온 뒤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깨달음은 산꼭대기에서 오지만, 삶은 산 아래에서 이어진다. 세 번의 아름다운 적멸보궁 기행도 결국 나를 다시 도시의 소음과 마감과 관계의 매듭 속으로 돌려보냈다. 거기서 나는 또 넘어졌다. 누군가의 무례한 말 한마디에 밤새 두 번째 화살을 쏘았고, 조금 인정받으면 우쭐했다가 조금 외면받으면 무너졌다. 산에서 얻은 것들은 산 아래에서 너무 쉽게 녹아버렸다. 정암사로 가기 위해 숙소를 검색해보다가 나는 이곳이 강원랜드와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장 성스러운 공간이 가장 세속적인 공간 근처에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뭔가 뜻깊은 화두를 전달받은 느낌이었다.
정암사로 가는 길은 고한을 지난다. 고한(古汗). 이곳은 탄광의 땅이었다.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사북과 고한은 한국 산업화의 심장에 불을 지피는 검은 광맥이었다. 전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 산골로 몰려들었고, 광부들은 지하 수백 미터의 막장에서 캔 석탄으로 서울의 겨울 방을 덥혔다. 그러나 막장은 늘 죽음과 가까웠다. 낙반과 가스 폭발, 평생 폐 속에 쌓이는 검은 먼지. 이 땅의 사람들은 타인의 겨울을 덥히기 위해 자기 몸을 태웠다. 1980년 봄 사북에서는 광부들의 절박한 항거가 있었고, 80년대 말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탄광들이 문을 닫자 마을은 순식간에 텅 비었다.
광부들의 안전모에는 캡램프가 달려 있었다. 칠흑 같은 막장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머리에 이고 다니던 작은 불빛. 그것이 꺼지면 서로의 얼굴도, 갱도의 방향도, 무너지는 천장도 볼 수 없었다. 부처님의 마지막 당부, 자등명(自燈明). 스스로를 등불로 삼으라.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추상적인 가르침으로만 읽었다. 그러나 이 땅에서 그것은 은유가 아니었다. 그리고 광부들은 혼자 걷지 않았다. 동료의 불빛이 옆에서 흔들렸고, 그 불빛들이 모여 갱도를 밝혔다. 자등명은 고립의 가르침이 아니라, 저마다의 등불이 모여 서로의 길을 비추는 일이었다. 저마다의 등불이 모여 서로의 길을 비추어줄 수 있다면. 이 머나먼 깨달음의 길도, 이 파란만장한 하루하루의 고난도, ‘자등명’의 따스함으로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지금 고한에는 강원랜드가 있다. 폐광 지역을 되살리겠다며 들어선 내국인 출입 카지노. 해발 천 미터 가까운 산 위에 화려한 호텔과 불빛이 솟아 있다. 한때 검은 석탄을 캐던 산이 이제는 사람들의 욕망을 캐내고 있었다. 한 판의 운에 모든 것을 걸었다가 모든 것을 잃고 이 산골을 떠나지 못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 불빛을 차창 밖으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적멸보궁은 성스럽고 정결한 곳에만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곳, 가장 많은 것을 태우고 잃은 곳 곁에 세워질 때, 그것은 비로소 살아 있는 설법이 되지 않을까.
욕심을 버린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탑
고한 읍내를 벗어나 함백산 자락으로 조금 오르면 계곡을 끼고 정암사가 나타난다. 정암사의 옛 이름은 갈래사(葛來寺)였다고 전한다. 칡 갈(葛), 올 래(來). 칡이 온 절.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모셔 온 진신사리를 봉안하려고 이곳에 탑을 세우려 했으나, 탑은 쌓기만 하면 무너지고 또 무너졌다. 자장이 간절히 기도하자 어느 겨울밤 눈 덮인 산 위로 칡 세 줄기가 뻗어 나와 세 곳에 멈추었다. 자장은 그 세 자리에 수마노탑, 금탑, 은탑을 세웠다. 그러나 금탑과 은탑은 후세 사람들의 탐욕을 염려하여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도록 감추었고, 오직 수마노탑만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 두 탑은 지금도 어딘가에 있지만, 욕심을 버린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고 한다.
법흥사는 도난과 훼손을 막으려 진신사리의 정확한 자리를 밝히지 않았다. 정암사는 탐욕으로부터 지키려 금탑과 은탑을 감추었다. 두 절 모두에서 가장 귀한 것은 숨겨져 있다. 그러나 정암사의 전설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금탑과 은탑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을 뿐이며, 보는 사람의 마음이 바뀌면 보인다는 것.
카지노의 불빛이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서 이 전설을 되새기니, 그것은 더 이상 옛날이야기가 아니었다. 산 아래에서 사람들은 매일 밤 금탑과 은탑을 찾는다. 한 번의 잭팟으로, 한 장의 카드로. 그러나 그들이 찾는 금은 결코 보이지 않는다. 욕심의 눈으로 보려 하기 때문이다. 자장이 이 땅에 천사백 년 뒤 무엇이 들어설지 알았을 리는 없다. 그러나 전설은 때로 예언보다 정확하다. 인간의 욕망은 천사백 년 동안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니까.
정암사 앞을 흐르는 계곡은 찬물에만 사는 열목어의 서식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여름에도 물이 얼음장처럼 차가워, 눈이 붉은 그 물고기가 여기서 산다. 탄광과 카지노의 땅 한가운데, 가장 맑은 물에서만 살 수 있는 물고기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 나는 그것이 적멸보궁의 존재 방식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물가에서, 자장을 부르는 이름 하나를 다시 생각했다. 율사(律師). 솔직히 고백하자면, 불교의 여러 가르침 가운데 내가 가장 멀게 느낀 것이 계율이었다. 무엇을 하지 말라, 무엇을 먹지 말라, 무엇을 입지 말라. 비구에게 250 가지, 비구니에게 무려 348 가지의 계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이 영혼을 옥죄는 쇠사슬처럼 느껴졌다. 원효가 계를 어기고 무애의 춤을 추었을 때 오히려 그것이 진짜 해방처럼 보였다.
그런데 열목어는 맑고 차가운 물에서만 산다. 물이 탁해지고 따뜻해지면 죽는다. 그렇다면 계율이란 열목어를 가두는 그물이 아니라, 열목어가 살 수 있는 맑은 물 그 자체가 아닐까. 계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실라(śīla)는 한자로 시라(尸羅)라 음역하는데, 불가에서는 흔히 이를 '청량(淸凉)', 맑고 서늘함으로 풀이한다. (śīla의 본래 의미는 '습관', '성품', '행위의 규범'에 가깝다는 견해도 있다.) 법흥사에서 나는 적멸이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열병의 소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탐욕의 불, 성냄의 불, 어리석음의 불이 꺼지는 것. 그렇다면 계율은 그 불이 번지지 않도록 곁에 흐르는 찬물이었다. 불을 끄는 것은 한 번의 깨달음이지만, 불이 다시 붙지 않도록 지키는 것은 매일의 계율이다.
부처는 열반을 앞두고 아난다에게, 스승이 떠나면 더 이상 스승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아난다여, 내가 가르치고 제정한 법과 율이, 내가 떠난 뒤 너희의 스승이 될 것이다."
(『디가 니까야』 제16경 「대반열반경」)
불이 다시 붙지 않도록 지키는 것
법과 율. 나는 늘 법만 보고 율은 보지 않았다. 깨달음의 내용만 보고, 그 깨달음이 매일의 삶 속에서 살아 있도록 지키는 형식은 보지 않았다. 산에서 내려온 뒤 매번 넘어졌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나에게는 깨달음은 있었으나 율은 없었다. 자장이 신라에 세운 계율은 차가운 규칙의 체계가 아니라, 산에서 얻은 깨달음을 산 아래의 삶으로 가져가는 다리였다. 매일 아침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 그 작은 약속들의 반복. 내가 찾던 대답이, 내가 가장 멀게 느꼈던 그 계율 속에 있었다. 매일 타인에게 보여주는 글을 읽고 쓰면서도, 매일 내 마음 속의 목소리는 다 읽고 쓰지 못했던 것이다. 내 마음의 소리를 진정으로, 온마음을 향해 듣는 것. 고통받는 타인의 목소리에 괴로워하지 말고, 고통받는 타인의 아픔 그 자체를 직시하는 마음 공부가 나에게는 부족했다. 그 부족함을 깨닫자 비로소 ‘산 아래 내려와서도 어떻게 살 것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더 많은 타인의 눈물을 닦아주자. 더 깊이 타인의 아픔 속으로 들어가자. 그 마음 공부를 게을리 했기에 나는 이토록 ‘나의 글쓰기에’만 과도하게 집착했던 것이다.
적멸보궁 뒤편 가파른 비탈을 오르면, 암반 위에 수마노탑이 서 있다. 칠 층, 높이 구 미터 남짓. 오랫동안 보물이었다가 2020년 국보로 승격되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이 탑이 보통의 석탑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벽돌처럼 작고 반듯하게 다듬은 돌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벽돌탑을 본떠 돌로 쌓은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중국에서는 흙을 구운 전탑이 널리 유행했지만, 좋은 화강암이 풍부한 한반도에서는 석탑이 주류가 되었다. 그런데 몇몇 곳에서 사람들은 돌을 벽돌처럼 잘게 깎아 전탑의 모양을 흉내 냈다. 가장 이른 예로 꼽히는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의 분황사는 자장과 깊은 인연이 있는 절이기도 하다. 정암사 수마노탑은 그 전통을 이으면서 석회암 계열의 회색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쌓았으며, 고려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각 층 지붕돌 끝이 살짝 들려 있어, 칠 층을 쌓았는데도 무겁지 않다. 법흥사에서 보았던 처마의 앙곡처럼, 작은 돌들의 층층이 쌓임이 하늘을 향해 가벼운 호흡을 한다. 꼭대기에는 청동 상륜부가 남아 천 년의 비바람을 맞고도 여전히 하늘을 가리킨다.
'수마노(水瑪瑙)'라는 아름다운 이름에도 전설이 있다. 자장이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마노석을 배에 실어 동해 울진포까지 날라 주었고, 그 돌이 다시 태백산 갈래사로 옮겨져 이 탑이 되었다고. 물길을 따라 온 마노라 하여 수마노라 불렀다고 전한다. 물길로 온 돌. 사실이 아니라 해도 이 전설은 진실을 말한다. 정암사의 가장 귀한 것은 이 땅에서 난 것이 아니었다. 부처님의 사리도, 자장의 가르침도, 불교 그 자체도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바다 건너 이 땅으로 왔다. 그리고 여기에 뿌리를 내렸다. 그러고 보면 이 산골의 사람들도 그러했다. 탄광 시절, 전국 각지에서 먼 길을 건너와 이 검은 땅에 삶을 묻은 사람들. 이 땅의 가장 성스러운 것과 가장 고단한 사람들은 모두 머나먼 곳에서 온갖 간난신고를 뚫고 왔다.
탑 앞에서 두 손을 모았다. 암반 위로 정말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을 맞는 순간, 청량이라는 두 글자가 몸으로 들어왔다. 탐욕의 열기를 식히는 바람. 나는 오래 그 바람 속에 서 있었다.
다시 내려와 적멸보궁 안에 들어섰다. 여기서도 불단에는 부처님이 없다. 불단 뒤 창 너머로, 방금 내가 서 있던 비탈의 수마노탑이 올려다보인다. 법흥사에서는 창 너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산비탈 어딘가 사리가 있다고만 했을 뿐. 봉정암에서는 창 너머 암반 위에 오층석탑이 있었다. 그리고 정암사에서도 창 너머 암반 위에 탑이 서 있다. 여러 적멸보궁을 거치며 나는 한 가지 공통점을 보았다. 부처님은 언제나 창 너머, 법당 밖의 자연 속에 계신다. 우리는 인간이 지은 건물 안에 앉아 창을 통해 그분을 향해 절한다.
이것은 한국 적멸보궁 건축이 도달한 가장 섬세한 공간 해석이다. 건물은 부처님을 가두지 않는다. 다만 부처님을 향한 시선을 모아주는 틀이 된다. 경치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경치를 빌려 오는 차경(借景)의 원리를 신앙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공간. 단지 경치를 빌려 오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원래 계신 자리를 향해 한껏 열린 창문을 언제까지나 닫지 않는 마음.
산을 올라가는 법과 내려가는 법
정선을 떠나는 아침, 차창 밖으로 고한의 거리가 지나갔다. 폐광의 흔적들, 비어 있는 사택들, 그리고 산 위의 카지노. 이 땅은 여전히 상처투성이였다. 그러나 그 상처 곁에서, 고려의 석공이 쌓은 탑이 천 년째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암사에서 나는 산을 올라가는 법뿐만이 아니라, 산 아래로 내려가는 법을 배웠다. 깨달음을 매일의 삶 속에 살아 있게 하는 것은 맑고 서늘한 계율의 바다라는 것을. 그 바다가 맑을 때, 열목어처럼 연약한 것들도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은 삶의 배움이었다. 머리에서 몸으로, 몸에서 삶으로. 내 모든 여정을 함께 해준 이승원작가님은 힘겨운 촬영을 마치고 조용히 운전을 하고 있었다. 이승원 작가님은 이번에『사라져서 아름다운』이라는 산문집을 출간하면서 우리가 함께한 20여 년의 시간을 책 속에 소담스럽게 담았다. 출간 준비와 적멸보궁 촬영이 겹쳐 눈코뜰새 없이 바쁜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 한 번도 불평하지 않고 내 곁을 지켜주었다. 이승원 작가님이 운전하는 푸른 자동차가 함백산을 벗어날 때, 나는 창문을 조금 열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서늘한 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그 바람을 가슴 가득 들이쉬며, 다짐했다. 나 또한 ‘산 아래로 내려와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언제까지나 닫지 않을 것이다. 괴롭다고 해서, 슬프다고 해서, 깨달음을 향해 한껏 열려있던 이 마음의 창문을 결코 닫지 않을 것이다.
글 : 정여울 작가, 『데미안 프로젝트』,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저자
사진 : 이승원 작가, 『사라져서 아름다운』, 『공방예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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