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는 왜 ‘나’가 없다고 했을까

[불교의 오래된 질문, 무아와 윤회]



“무아(無我)라면서 누가 윤회하는가?” 불교를 접한 이라면 한 번쯤 부딪히는 물음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붓다는 왜 하필 ‘나(我, ātman)’를 문제 삼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붓다 재세 시 인도는 우빠니샤드로 대표되는 아뜨만(ātman)설이 사상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몸과 마음의 변화 뒤에 변하지 않고 머무는 자아가 있으며, 그것이 곧 우주의 원리 브라흐만과 하나라는 가르침이다. 『뱀의 비유 경』(MN 22)에서 비판하는 “저것이 세계이고, 저것이 자아이다. 나는 죽은 뒤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나는 영원하고, 확고하고, 상주하며, 변하지 않는 본성을 지니고, 영원토록 바로 그렇게 머물 것이다.”라는 것이 아뜨만설의 핵심이다. 『모든 번뇌 경』(MN 2)이 열거하는 자아, 곧 “나의 이 자아는 말하는 자이며 경험하는 자로서, 여기저기서 선하고 악한 행위의 과보를 경험한다.”도 마찬가지다. 무아는 내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 특정한 ‘자아 개념’에 대한 부정이다.

그러나 붓다의 부정은 형이상학적 반론이 아니다. 『무아상경』(SN 22.59)의 출발점은 이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만일 색(色)이 자아라면 이 색은 병으로 이끌지 않을 것이요, 색에 대해 ‘나의 색은 이러하라, 이러하지 말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몸이 정말 ‘나’라면 내 뜻대로 부릴 수 있어야 하는데, 몸은 늙고 병들며 느낌·지각·의도·의식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고, 그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 것이 옳은가. 무아는 존재론의 결론이기 전에 괴로움에 대한 진단이다. MN 22에서 붓다는 “그대들은 자아론에 대한 집착 가운데, 그것을 움켜쥐어도 슬픔과 탄식과 괴로움과 근심과 절망이 생겨나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라고 묻고, 비구들이 보지 못했다고 답하자 “나 또한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나’를 세우는 순간 그 ‘나’를 지키고 잃을까 두려워하는 괴로움도 함께 생겨난다.

가장 오래된 층에서는 어떻게 말했는가

불교문헌학은 『숫따니빠따』 제4·5품을 가장 오래된 층으로 꼽는다. 흥미롭게도 여기에는 오온도,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정형구도, 무아라는 술어도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세 가지 실천적 부정이 따로따로 나타난다. 첫째는 ‘내 것’의 부정이다. “사람들은 ‘내 것’에 매여 슬퍼하지만, 소유란 영원하지 않다”(Sn 805), “명색(名色)에 대하여 ‘내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고, 없다고 해서 슬퍼하지도 않는 이, 그는 참으로 세상에서 잃을 것이 없다”(Sn 950). 둘째는 ‘나는 있다’는 생각의 부정이다. “‘나는 있다’는[생각, 곧] 희론으로 헤아려진 것의 뿌리를 모두 제거하라”(Sn 916). 셋째는 자아 견해의 부정이다. “늘 사띠를 확립하고 세상을 공(空)으로 관하라. 자아에 대한 견해를 뽑아 버려라, 그리하면 죽음을 건너리라”(Sn 1119). 최고층에서 무아는 이론이 아니라 집착을 내려놓는 수행이다.

‘자아가 있다 또는 없다’고 하는 모든 것은 생각이다

그렇다면 붓다는 “자아는 없다”고 단언했을까. 유행자 왓차곳따가 제기한 ‘자아의 유무’에 대해서 붓다는 침묵했다. 그 까닭을 묻는 아난다에게 붓다는 ‘있다’고 하면 상주론자가 되고, ‘없다’고 하면 단멸론자가 된다고 답하며, 이미 혼란에 빠진 왓차곳따에게 ‘없다’고 답하면 “예전에는 나에게 자아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구나”라며 더 큰 혼란에 빠졌을 것(SN 44.10)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붓다는 한 가지 이유를 더 든다. ‘자아’에 대한 답이 “‘모든 법은 무아다’라는 앎(ñāṇa)이 일어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아는 주장하는 명제가 아니라 수행자가 체득해야 할 지혜이다. 『법구경』이 “모든 법은 무아다”를 “지혜로 볼 때”라는 조건절 안에 두는 것(Dhp 279)도 같은 이치다.

더욱이 『모든 번뇌 경』에서 붓다는 이치에 맞지 않게 사유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여섯 견해를 열거하면서 ‘나에게 자아가 있다’는 견해가 그에게 진실하고 확실한 것으로 일어나거나, ‘나에게 자아가 없다’는 견해가 그에게 진실하고 확실한 것으로 일어나거나, 이 모두는 ‘견해의 밀림, 견해의 광야, 견해의 족쇄’(MN 2)라고 설한다. ‘자아의 유무’를 진실하고 확실한 명제로 붙드는 것 자체가 자기 생각일 뿐이라는 것이다. 왓차곳따가 “존자께는 어떤 견해라도 있습니까”라고 묻자 붓다는 “견해란 여래가 이미 치워 버린 것”이라 답하고 오온의 생멸을 본다고 말한다(MN 72). 무아가 이론이 되어 버리면 그것은 붓다가 그토록 경계한 견해의 그물에 걸리는 것이 된다.

무아인데 어떻게 윤회하는가 ― 질문을 바꾸다

『몰리야팍구나 경』(SN 12.12)에서 붓다가 식(識)이 중생을 지탱하는 자양분이라고 설하자 팍구나 존자가 묻는다. “누가 식의 자양분을 먹습니까?” 붓다는 “옳은 물음이 아니다. 나는 ‘누가 먹는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답하고, 옳은 물음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무엇을 조건으로 촉(觸)이 있습니까’라고 묻는 것이 옳은 물음이다.”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있다. ‘누가 윤회하는가’는 ‘누구’라는 주어를 먼저 세워 놓고 그에게 윤회를 귀속시키는 물음이므로 처음부터 잘못 제기된 물음이다.

이 문답의 뿌리는 오래된 게송에 있다. 마라가 “이 형상은 누가 만들었는가”라고 묻자 셀라 비구니는 “이 형상은 스스로 지은 것도 남이 지은 것도 아니다. 원인을 조건으로 생겨나고 원인이 부서지면 소멸한다”고 답한다(SN 5.9). 나체수행자 깟사빠와의 대화(SN 12.17)는 이를 업의 문제로 풀어낸다. “짓는 그 자가 겪는다”고 하면 상주론에, “짓는 자와 겪는 자가 다르다”고 하면 단멸론에 떨어지므로, 여래는 중(中)으로 연기를 설한다.

그래도 남는 물음이 있다. 실체가 없다면 무엇이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가. 사띠 비구는 “바로 이 식이 옮겨 다니며 윤회한다”고 답했다가 붓다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듣는다. “나는 여러 방편으로 식이 연기한 것이라고, 조건 없이는 식이 생겨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장작을 조건으로 타는 불이 장작불이고 풀을 조건으로 타는 불이 풀불이듯, 식도 조건 따라 안식·의식이라 불릴 뿐, 옮겨 다니는 하나의 불이 없듯 옮겨 다니는 하나의 식도 없다.”(MN 38). 이어지는 것은 ‘나’가 아니라 갈애가 추동하는 조건의 흐름이다. “탐욕이 있고 즐김이 있고 갈애가 있으면 거기에 식이 확립되고 자라나며”, 그때 “미래에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남의 생성”(SN 12.38, 12.64)이 있을 뿐이다.

다시, 붓다는 왜 ‘나’가 없다고 했을까

붓다가 ‘나’가 없다고 한 것은 윤회를 부정하기 위해서도, 자아에 관한 새 이론을 세우기 위해서도 아니다. 윤회하는 ‘나’가 실체로 있다면 윤회는 끝날 수 없고, 윤회가 조건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라면 조건이 소멸할 때 윤회도 소멸한다. 무아와 연기는 같은 지혜의 두 얼굴이다. 『빳짜야 경』(SN 12.20)은 연기를 본 제자가 “나는 과거세에 있었을까”, “나는 미래세에 있을까”, “이 중생은 어디서 왔는가”라는 물음으로 달려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무아인데 누가 윤회하는가”는 이 물음들의 다른 이름이다. 짐을 내려놓은 자에게 짐을 진 자가 누구였는지는 더 이상 물음이 되지 않는다. 무아는 붙들 교리가 아니라 내려놓는 지혜다. 붓다가 ‘나’가 없다고 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필원|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교양융합교육원 부교수, 동 대학 갈등치유연구소 소장, 한국종교교육학회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인도 초기 불교 전공으로, 명상 상담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인생이 묻고 붓다가 답하다』등이 있고, 「자살, 욕망이 지닌 또 다른 얼굴」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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