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의 연기와 현대 생명과학의 만남
[업(業),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다]
유전자는 운명의 설계도인가
“사람은 타고난다”는 말을 흔히 한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가 외모와 체질뿐 아니라 질병에 걸릴 가능성, 성격과 행동의 경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때 유전자는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생명의 설계도’처럼 여겨졌다. 좋은 유전자를 타고나면 건강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가능성이 높고, 좋지 않은 유전자를 물려받으면 그 반대의 삶을 피하기 어렵다는 식의 유전적 결정론이다.
이러한 생각은 업(業, karma)에 대한 오래된 오해와 묘하게 닮아 있다. 지금의 나를 과거의 업이 만들었고 그 업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업은 일종의 운명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유전자를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생물학적 숙명으로 이해한다면 “유전자가 곧 업인가?”라는 질문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불교도 현대 생명과학도 이러한 결정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모든 현상이 수많은 원인과 조건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고 변화한다고 본다. 이것이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이다. 현대 생명과학 역시 유전자가 생명현상의 중요한 조건임은 인정하지만, 유전자만으로 한 사람의 삶이 결정된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한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다.
같은 유전자도 다르게 사용된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들은 대부분 동일한 유전정보, 즉 같은 DNA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떤 세포는 신경세포가 되고, 어떤 세포는 근육세포나 간세포가 된다. 같은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 전혀 다른 모습과 기능을 갖는 것은 세포마다 필요한 유전자를 선택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유전자는 활발하게 켜져 사용되고, 어떤 유전자는 꺼져 있거나 그 활동이 억제된다. 이처럼 중요한 것은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있느냐뿐만 아니라, 그 유전자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사용되느냐이다.
유전자는 항상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유전자는 활발하게 발현되고 어떤 유전자는 억제된다. 후성유전학은 DNA 염기서열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유전자 발현이 조절되는 현상을 연구한다. 대표적인 기전으로 DNA 메틸화(DNA methylation), 히스톤 변형(histone modification), 그리고 microRNA(miRNA)에 의한 유전자 발현 조절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기전들에 의해 특정 유전자에서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 즉 유전자 발현이 조절된다. 이처럼 동일한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더라도 어떤 유전자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발현되는가는 다양한 조절 기전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유전자 조절이 환경과 밀접하게 관계한다는 것이다. 음식과 영양 상태, 운동, 수면, 스트레스, 독성물질에 대한 노출 등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 생활습관이 세포의 신호전달과 대사과정을 거쳐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DNA 염기서열을 하나의 ‘악보’에 비유한다면, 실제 생명현상은 악보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같은 악보라도 어떤 음을 강하게 연주하고 어떤 음을 약하게 연주하는가에 따라 음악이 달라지듯이, 같은 유전정보도 어떤 유전자가 언제, 어느 정도 발현되는가에 따라 생물학적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이것이 후성유전학이 유전적 결정론에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이다. 우리는 유전자를 물려받지만, 유전자가 우리의 모든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연기에서 바라본 유전자
이러한 생명현상은 불교의 연기적 관점에서 보면 더욱 흥미롭다. 연기란 어떤 현상이 하나의 독립적인 원인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원인과 조건이 서로 의존하여 일어난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 역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에 의해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유전적 조건, 성장 환경, 음식, 교육, 인간관계, 경험, 행동 등 수많은 조건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유전자도 이 관계망 속의 한 조건이다.
예를 들어 어떤 질병에 취약한 유전적 소인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그 질병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적 소인과 함께 나이, 영양, 운동, 스트레스, 생활환경을 비롯한 여러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실제 질병의 발생 가능성에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유전적으로 비교적 유리한 조건을 타고났더라도 생활환경과 습관에 따라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
따라서 생명현상을 단순히 ‘유전자 → 결과’라는 직선적인 인과관계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보다 정확한 모습은 유전자와 환경과 행동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망이다.
불교의 연기 역시 바로 이러한 관계적 세계관을 강조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조건이 변화하면 그 조건에서 일어나는 결과도 변화한다. 인간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형성되고 변화하는 존재이다.
내가 행한 신·구·의 행위가 다시 나를 만든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업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불교에서 업은 흔히 신·구·의(身口意), 즉 몸으로 하는 행동, 말로 하는 행동, 마음으로 하는 행동과 관련하여 설명된다. 이러한 행위가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은 다시 다음 행동을 만들어 낸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행동이 외부 세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행위하는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시 변화시키는 조건이 된다는 점이다.
현대 생명과학의 관점에서도 이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먹는가, 얼마나 움직이는가, 어떻게 잠을 자는가, 지속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는가와 같은 일상의 행동은 신경계와 내분비계, 면역계와 대사계를 변화시킨다. 이러한 생리적 변화는 DNA 메틸화, 히스톤 변형, microRNA 등 후성유전적 조절 기전에 영향을 미쳐 다시 우리 몸의 유전자 발현을 변화시킬 수 있다.
마음의 상태 역시 몸의 건강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지속적인 불안이나 분노,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스트레스 호르몬과 자율신경계, 면역계의 변화를 동반한다. 반대로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안정적인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생활은 건강에 유익한 생리적 환경을 만들어 낸다.
최근에는 알아차림 명상이나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 이후 염증 및 스트레스 반응과 관련된 유전자 발현이나 후성유전적 표지의 변화가 보고되고 있다. 아직 연구 대상과 규모, 연구방법에 따라 결과가 다르고 장기적인 의미 역시 더 밝혀져야 하지만, 행동과 생활환경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태도 신경계·내분비계·면역계 등의 생리적 경로와 후성유전적 조절 기전을 통하여 우리 몸의 생물학적 과정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즉, 신·구·의 행위가 나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내가 다시 다음 행위를 한다. 이것은 일방적인 인과관계라기보다 끊임없이 순환하는 관계이다.
후성유전학에서 발견하는 업의 생물학적 근거
후성유전학의 발견은 불교의 업을 현대 생명과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물론 불교에서 말하는 업의 모든 의미를 유전자 수준의 변화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이 반복해서 행하는 행동과 생활습관, 그리고 마음의 상태가 자신의 몸을 변화시키고, 그렇게 변화된 몸이 다시 미래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업의 작동 원리를 생물학적 차원에서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라고 볼 수 있다.
불교에서 업은 신·구·의(身口意)의 행위가 단순히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남기고, 그 결과가 다시 이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인과적 과정이다. 현대 생명과학은 이러한 행위의 결과가 추상적인 차원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신체에도 흔적을 남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음식, 운동, 수면과 같은 생활습관은 물론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마음의 상태도 신경계·내분비계·면역계 등의 생리적 경로를 거쳐 유전자 발현과 후성유전적 조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내가 행한 행위가 다시 나를 만든다는 업의 원리는 후성유전학에서 하나의 생물학적 대응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과거의 행동과 환경은 현재의 생물학적 조건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현재의 행동은 다시 미래의 몸과 삶을 구성하는 새로운 조건이 된다. 업을 고정된 운명으로 이해하기보다 끊임없이 형성되고 변화하는 인과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후성유전적 변화 가운데 일부가 세포분열을 거쳐 유지될 수 있으며, 특정 조건에서는 세대를 넘어 전달될 가능성도 연구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부모 세대의 환경과 경험이 자손의 생물학적 조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인간에서 후성유전적 변화가 여러 세대에 걸쳐 안정적으로 유전된다는 문제는 아직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그럼에도 생명은 부모에게서 받은 DNA 염기서열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경험의 흔적까지 포함하는 훨씬 역동적인 과정이라는 사실은 분명해지고 있다.
따라서 후성유전학을 업 그 자체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후성유전학은 신·구·의의 행위가 행위자 자신의 몸에 영향을 미치고, 그 변화가 다시 이후의 삶을 구성하는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업의 인과적 구조를 생물학적 차원에서 보여주는 과학적 근거라고 이해할 수 있다. 불교가 오래전부터 강조해 온 “내가 행한 것이 다시 나를 만든다”는 통찰을 현대 생명과학이 생물학의 언어로 새롭게 조명하고 있는 셈이다.
업은 운명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만약 모든 것이 태어날 때 받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면 우리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과거의 업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면 수행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미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가 수행을 강조한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에게 변화의 가능성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말하며,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조건이 만들어진다.
후성유전학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생명의 모습도 흥미롭게도 이와 닮아 있다. DNA는 고정되어 있어도 그 DNA가 사용되는 방식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유전자는 환경 속에서 작동하고, 그 환경의 일부를 우리의 환경과 신·구·의 행동이 만들어 간다.
따라서 “유전자는 업을 결정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유전자도 업도 인간의 운명을 미리 작성해 놓은 각본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수많은 조건을 물려받지만, 그 조건 속에서 지금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여전히 열려 있다.
불교의 연기는 우리에게 조건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 조건을 바꾸면 그로부터 생겨나는 결과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전자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다.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오늘 무엇을 먹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말을 하며, 어떤 마음을 반복할 것인가는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다음 순간의 나를 만드는 새로운 조건이 된다.
업은 이미 결정된 운명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삶의 조건이다.
유전자는 우리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말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가까지 모두 결정하지는 않는다. 불교의 연기와 현대 생명과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결국 하나이다.
삶은 주어진 것이면서 동시에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문일수|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대학원에서 미생물학 석사 학위를, 캐나다 뉴브런즈윅 생물학과에서 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한국생명과학회 회장, 동국대 의과대학 부학장(연구)을 역임했다. 현재는 동국대 의과대학 신경해부학 교수(뇌신경과학)로 있으면서. 싸띠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붓다의 깨달음과 뇌과학』, 『뇌과학자가 본 붓다의 마음』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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