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세계, 죽음 이후를 묻다 - 종교와 과학이 말할 수 있는 것]
윤회와 사후세계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나
이 글의 목적은 불교의 무아윤회를 연기법과 양자역학적 원리로 그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윤회나 사후세계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신으로 생각하고 이런 것은 과학 연구의 주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연구가 과학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그 연구 방법이 과학적이냐 아니냐에 달린 것이지 그 연구 주제가 무엇이냐에 달린 것은 아니다. 임사체험자들이 경험한 사후세계나 윤회에 관한 연구는 세계 3대 의학 저널인 NEJM(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 란셋(The Lancet), JAMA(미국의사협회지)에도 실리고 있다. 코스모스의 해설가로 널리 알려진 천체 물리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 1934 ~ 1996)은 사이비 과학을 타파하기 위해서 쓴 그의 저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p.345)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윤회는 비록 여전히 의심스럽지만, 최소한 약간의 실험을 통해 지지되고 있다. 물론 내가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윤회나 사후세계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한다고 보이는 여러 가지 사례를 수집하고 사후세계가 아니라면 이 사례들을 설명할 수 있는 합리적 개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 물음에 대해 사후세계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20가지 가까운 대안론을 내놓았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수집된 사례들을 모두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도 주류 신경과학자들은 ‘두뇌상태=심적상태’를 주장하며 ‘두뇌가 없는데 어떻게 의식이 활동할 수 있는가?’라 묻고 사후세계의 존재를 부정한다. 사후세계의 존재에 대해 대립되는 견해를 가진 두 전문가 집단은 결국 상주론과 단멸론의 대립이다. 상주론은 불멸의 의식이 몸은 죽어도 계속 활동한다는 것으로 정신-물질의 이원론을 지지하는 것이고, 단멸론은 몸이 죽으면 그것으로 의식의 활동은 끝난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옳든 ‘두뇌상태=심적상태’라는 것으로 사후세계를 부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비유하자면 이런 것이다.
귀납적 추론에 의해 학계에서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어떤 학자가 숲에서 흰 까마귀를 발견하고 “흰 까마귀도 있다.”라고 주장했다고 하자. 이 주장을 반박하려면 그가 흰 비둘기를 까마귀라고 착각했거나 그의 관찰에 어떤 잘못이 있음을 밝혀야지 “까마귀는 본래 검은데 희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논리적으로 “당신 말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틀린 것이다.”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는 논점을 진실로 가정한 것으로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Begging the question)를 범한 것이다. 사후세계의 존재를 말하는 것은 ‘의식이 두뇌 없이도 활동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두뇌상태=심적상태’이기 때문에 사후세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면 이것은 논리적으로 ‘사후세계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후세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윤회나 사후세계의 존재를 부정하려면 그것을 입증하는 사례라고 제시한 것에 대해 그 사례의 잘못이나 연구 방법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해야 하는 것이다. 비판자들은 유물론을 신봉하기 때문에 이런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사실 물질만이 실체라는 유물론도 정신과 물질 둘 다 실체라는 정신-물질 이원론도 모두 세상은 어떤 실체(實體, substance)로 이루어졌다는 실체론인데, 윤회나 사후세계의 존재와 같은 문제는 실체론을 떠나야 진실을 보게 된다.
사후세계를 둘러싼 과학과 철학의 논쟁
불교를 제외한 이 세상 모든 종교와 철학과 과학은 모든 사건과 존재에는 제일 원인(the first cause)이 있다고 본다. 제일 원인은 자신의 존재를 위해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실체를 뜻한다. 세상에 실체가 있다면 그것은 신(神)이겠지만, 신은 과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없으므로 철학과 과학이 생각할 수 있는 실체는 정신-물질 이원론, 유물론, 관념론이다. 이 세 가지 실체론 중 19세기 이래 과학계에서 압도적으로 성행해 온 것은 유물론이다. 그러나 세상 사물은 꼭 실체론적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체론은 철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문제가 있다. 불교의 연기법과 양자역학은 세상이 실체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지 않는다.
양자역학은 객관적 실재를 부정한다. 물리계는 관찰자의 관찰에 의해 변하기 때문이다. 관찰 전의 물리계는 확률파(確率波)일 뿐 관찰 전에는 입자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다. 입자라는 실체는 관찰(측정)과 더불어 만들어지는 것이다. 확률파는 관찰자가 특정 상태에서 입자를 관찰할 확률을 뜻한다. 이것은 물리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가운데 어느 쪽이 더 실재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한다. 양자 중력의 연구로 이름 있는 물리학자 리 스몰린(Lee Smolin, 1955 ~ )이 그의 책 『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에서 l.한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양자역학의 세계관을 정리하겠다.
“세계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물이 있는 것 같다. 돌멩이나 깡통처럼 그 성질만 나열해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다른 하나는 과정으로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사람이나 문화 같은 존재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전개되는 과정들이다. --- 그러나 이렇게 사물을 ‘어떤 것’들과 과정으로 나누어 보는 것은 착각이다. ‘어떤 것’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서서히 변하는 것과 빨리 변하는 것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 우주에는 사물과 과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빠른 과정과 느린 과정이 있을 뿐이다. --- 우주가 사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환상은 고전역학을 구성하는 바탕이 되었다. --- 상대론과 양자론은 우리 우주가 과정들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우주는 많은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 사건은 과정의 가장 작은 부분 또는 변화의 가장 작은 단위로 구성될 수 있다. --- 사건들의 우주는 관계론적인 우주다. 모든 성질들은 사건들 사이의 관련성을 통해서 기술된다. 두 사건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관계는 인과관계다.”
연기법으로 풀어보는 무아윤회의 원리
스몰린이 한 말은 불교의 연기법이 말하는 세계관과 아주 비슷하다. 연기법은 제일 원인을 부정한다. 세상 모든 것은 상호의존적으로 서로가 서로의 원인인자 결과로서 존재한다고 본다. 따라서 정신과 물질을 포함하여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실체일 수 없다. 이 세상 그 어느 것에도 실체가 없는 것을 가리켜 불교에서는 무아(無我) 또는 공(空)이라고 한다. 실체가 없어 공이라고 하지만 다른 것과의 관계를 통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을 아무것도 없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닌 존재이기에 불교에서는 이를 유-무 중도라고 한다. 상주와 단멸도 마찬가지다. 연기의 이치에서 보면 실체가 없기에 모든 것은 변해가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 스몰린이 말한 바와 같이 세상을 존재 중심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고 사건 중심으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윤회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사건이 인과관계를 맺고 일정한 시간동안 지속되면 우리는 거기서 무엇이 존재한다고 보게 되는 것이다. 무아윤회라고 하면 존재 중심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무아라면 ‘나’라는 것이 없는데 무엇이 윤회한다는 말인가 하고 무아와 윤회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연기법과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보면 세상에 불변의 존재는 없다. 10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 사이에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같은 것이 없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인과로 연결된 연속성이 있다. 즉 동일성은 없으나 연속성은 있다. 이것이 윤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전생의 ‘나’와 현생의 ‘나’ 사이에는 동일성은 없어 무아라고 하지만 인과로 연결된 연속성은 있다. 이것이 바로 무아 윤회의 이치다. 무아윤회는 상주-단멸의 중도를 뜻한다. 전생의 ‘나’와 현생의 ‘나’사이에 동일성이 없어 상주론을 부정하지만 전생의 ‘나’와 금생의 ‘나’ 사이에는 인과로 이어진 연속성이 있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단멸론도 부정한다. 중도는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개념을 모두 부정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물질계를 놓고 보면 입자-파동의 이중성에서 알 수 있듯이 물질계는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개념의 조화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를 양자역학에서는 상보성 원리(相補性原理, complementarity principle)라고 부른다. 양자역학의 창시자들 중 한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하이젠베르크와 파울리는 정신과 물질을 같은 실재의 상보적인 측면으로 볼 것을 제안했다. 정신과 물질을 같은 실재의 상보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의식이 두뇌를 떠나서도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아직 우리는 정신과 물질을 함께 다루는 과학을 갖고 있지 않다. 윤회와 사후세계의 존재에 대한 과학적 자료가 더 쌓이면 정신과 물질을 함께 기술하는 새로운 과학이 탄생할 것이다. 그때 새로운 과학은 상보성 원리를 기본 원리로 삼고 윤회와 사후세계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김성구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에서 박사 학위(Ph.D, 소립자 물리학 이론)를 받았다.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를 지냈고, 퇴직한 후 동국대 불교학과 및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이화여대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아인슈타인의 우주적 종교와 불교』,『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풀어본 반야심경』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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