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행일지[대한불교조계종 신행수기 공모전 수상작]
4살 아래 막내 동생의 느닷없는 죽음…출산한 몸으로 매일 흐느껴
슬픔에 무작정 찾은 절에서 스님의 따듯한 위로, 부처님과의 인연
불교대학 졸업 뒤 포교사 활동…퇴근 후 마주한 수행시간 큰 행복
동생의 죽음 – 보광사 법당 마루에 쓰러지던 날
1998년 4월 3일,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흑흑흑흑~~.” 엄마였다.
“엄마! 엄마! 엄마 무슨 일 있어요?”
한참을 흐느끼신 엄마가 말을 이었다.
“원기가 죽었어!”
‘원기’. 4살 아래인 막내 남동생! 며칠 전에 군대 영장이 나왔다고 전화가 왔었는데…. 잠시 멍~~ 하는 순간 이미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은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슬픔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힘들게 했다. 당시 내겐 두 살짜리 아들과 그해 3월에 출산한 한 달 된 딸아이가 있었다. 아이를 돌봐야 할 때 찾아온 큰 슬픔으로 하루하루가 몹시 힘들었다. 하나는 동생을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슬픔과 두 번째는 그 큰 슬픔이 주는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절이 생각났다. 강원도 속초 영랑호수 옆에 있는 ‘보광사’였다. 절에 가면 주체하지 못할 이 슬픔이 위로받을 수 있을까. 둘째를 업고 ‘보광사’로 향했다. 문이 활짝 열린 곳에 부처님이 보였다. TV에서 본 것처럼 절을 했다. 절을 하려고 바닥에 엎드리는데 눈물이 흘렀다. 절을 하면 할수록 눈물은 더 많이 흘렀다. 옆에서 자던 둘째가 깨서 울었다. 둘째를 안고 엉엉 울고 있는데 스님 한 분이 옆에 계셨다. 절의 주지스님이라고 하셨다.
“무슨 일이 있나요?”
나에게 그렇게 물어보며 스님이 더 당황해하셨다. 내가 주체할 수 없어 더욱더 꺼이꺼이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께서는 내 등을 토닥여주시며 “조금 더 쉬었다가 종무소 옆 찻방에 잠시 들르세요.”라고 하셨다.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을 때 찻방에 계신 스님을 찾았다.
“무슨 일인가요? 뭐가 그리 슬픈가요?”
스님의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니, 스님은 천천히 이야기해도 된다고 나를 다독여주셨다. 마음의 안정을 찾은 나는 스님께 동생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이야기를 마치자 스님은 “차 한잔 들어요”라고 권하신 뒤 ‘천도재’ 이야기를 해주셨다. 당시 남편이 말단 직원이라 살림이 넉넉지 않아 사정을 말씀드렸다. 스님은 괜찮다며 동생의 이름과 생년월일, 제 전화번호를 받아 적으시고 전화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한 2주쯤 지났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스님이셨다.
“여기 보광사예요. 지금 시간 괜찮으면 절에 오세요.”
“네, 스님. 지금 갈게요.”
나는 둘째를 업고 보광사로 향했다.
“조양동에 사업하는 집 외동 손녀가 사흘 전, 생을 다해 장례를 치르고, 천도재를 하려고 어제 절에 찾아오셨어요. 그 손녀가 보살님 동생보다 4살이 적어요. 그래서 동생 이야기를 하면서 영가혼례식과 천도재를 같이 하자고 했더니 그분들도 좋다고 했어요. 그분들께 보살님 사정을 이야기하니 비용도 그분들이 다 하시기로 했어요.”
“그럼 제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요.”
“떡 한 말하고 과일만 좀 올리세요.”
그렇게 해서 그해 4월에 동생의 영가혼례식과 천도재를 보광사에서 지냈다.
초파일마다 사찰을 찾아 등 공양 올리면서 알게 된 불교대학
그 후 매년 초파일이면 동생을 위한 영가등과 가족연등을 올리러 보광사를 찾았다. 초파일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절을 찾았고, 그 사람들 속에 끼여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유심히 보면서 따라 움직였다. 그러면서 절에서 세 번 하는 절이 삼배라는 걸 알았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 초파일이 또 다가왔다. 등을 달러 절에 갔다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초파일에 등을 절 세 곳에 달면 좋다는데….”
그래서 2009년 초파일에는 보광사에 등을 달고 원각사(설악산 신흥사 포교당)를 찾았다. 그곳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법회는 시작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김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해에는 유난히 더 슬펐는지, 눈물샘이 터져 제어가 되지 않을 정도라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엎드려서 훌쩍거리며 울고 있었는데, 법당 내 사람들은 정근을 하면서 줄 서서 관욕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서 날 보는 시선이 부담스럽고 부끄러웠다. 조용히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그날은 다른 날과 다르게 마음이 가볍고 뭔지 모를 후련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2010년 2월 어느 날, 햇살이 좋아 싸리재 약수터에 약수를 뜨러 갔다. 그런데 약수터에 못 보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불교대학 신입생 모집’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고 장소는 ‘원각사’였다. 집에 와서도 현수막이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불교대학! 불교대학! 뭘 배울까? 많이 궁금했다. ‘불교대학에 들어가면 삼배를 왜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같은 건 배우겠지?’
다음 날, 방학 중인 아이들 아침밥을 차려주고 막내는 큰애한테 맡기고 곧장 원각사에 들러 불교대학 입학 신청을 했다. 2010년 3월 2일 원각사 불교대학 입학식 날. 이른 봄의 쌀쌀한 날씨였지만 신입생이 많아서 그런지 법당 안은 훈훈했다. 그해 막내딸은 4살이었는데,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2년을 함께 다니고 졸업식도 함께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의젓한 대학생 청년불자가 되었다. 불교대학에서 불교입문,『숫타니파타』, ‘『금강경』과 마음공부’, 불교미술 외 다수를 배웠는데, ‘『금강경』과 마음공부’는 나의 삶에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준 수업이었다.
지금도 즐겨 읽는 책 ‘『금강경과 마음공부』에 이런 글이 있다.
‘그렇다! 모든 움직임이 그대로 좌선이고 깨어 있음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우리들이 그렇게 찾아 나서던 궁극의 순간인 것.’ 이 글을 나는 참 좋아한다. 현재가 곧 과거가 되는 과정인 걸 잊지 않고 살아야 하며, 과거는 돌이켜볼 수는 있지만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현재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주변의 모든 인연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내 모습! 현재의 내 모습이다. 우리는 감사한 마음이 생겨 인사할 때 고개를 숙인다. 그렇다! 매 순간순간 감사하며 살다 보면 즐거운 일이 많아진다. 우리의 현실은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이다. 그러나 이 반복 속에서도 매번 만나는 사람들과 사물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만나는 인연을 우리는 ‘시절인연’이라 말한다. 인연의 길이를 알 수 없기에 순간순간 만남은 얼마나 소중한가!
공부를 하면서 동생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슬픔을 극복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스님께 여쭈어보았다. “스님! 지금은 아니지만 법당에만 오면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왜 그런 거죠?” 그러자 스님께서 ‘업장 소멸’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업장이 소멸되는 과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울면서 업장이 소멸되는 것도 있으니, 눈물이 나면 많이 울라고 하셨다. 지난날 참 많이도 울었다.
포교사로 활동하며 부처님 공부가 일상이 된 지금, 모든 것이 평온하다
‘낙산사 홍련암’ 100일 기도를 올린 지 올해로 5년 차다. 인등이 꺼지지 않게 매번 기도를 올린다. 기도 속의 간절함이 있는 곳. 기도 속에 감사함이 있는 곳. 기도 속에 평온함이 있는 곳. ‘낙산사 홍련암’은 나에게 그런 곳이다.
나는 이제 오십 대에 접어들었고 포교사가 된 지 만 10년이 되었다. 요즘 나는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노트북을 켜고 유튜브에서 부처님 말씀을 들으며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저녁식사와 설거지까지 마무리하면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다.
아늑한 내 서재에 들어와 잠시 앉아서 5분은 하루 일과를 돌아보고 또 5분은 내일 일정을 생각한다. 그리고 공부를 시작한다. 전날 작업하던 법요집이나 행사 자료 준비가 끝나면 일요일 군법당 법회 준비를 한다. 포교사단에서 진행하는 리플레이 교육 중 ‘문화해설사 1급 자격증’ 과정이 있는데 나는 2024년에 취득했고, 지금은 같이 활동하고 있는 포교사들의 문화해설사 진행 과정을 도와주고 있다.
부처님 공부가 일상이 된 지금 나는 평온하다. 현재의 나로 살 수 있게 도와준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내가 부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내가 부처님을 만날 수 있게 사랑하는 제 동생이 다리를 놓아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불교에 입문해 만난 분이 ‘고 박광희 포교사님’이었다. 내가 포교사의 길을 걸을 수 있게 길을 열어주시고 불자로서의 품행과 언행 그리고 포교사의 포교를 실천하며 보여주신 ‘고 박광희 포교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부처님 공부는 나와 내 가족 모두에게 복을 주는 것이니, 불자님들의 일상이 되어 늘 평온함이 항상 함께하시길 발원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내 동생 ‘원기’ 그리고 ‘고 박광희 포교사님’ 극락왕생하소서.
* 이 글은 <제12회 대한불교조계종 신행수기 및 제6회 발원문 공모전> 중,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주상 수상작이다.
김해숙(선희주)__문화해설사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