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 곧 정토라고요?: 백운경한이 말하는 '지옥의 역설'

백운어록 / 백운경한(白雲景閑)


지옥이 바로 정토

법좌에 올라앉아 "제바달다(提婆達多)1)가 지옥에 떨어져 있을 때, 세존께서 아난을 시켜 물었다. '그대는 지옥의 고통을 참고 받아들일 만한가?' '제가 비록 지옥에 있기는 하지만 삼선천(三禪天)2)과 같은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다시 아난을 시켜 물었다. '그대는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세존께서 지옥에 떨어지시면 제가 벗어나겠습니다.' 아난이 말했다. '세존은 삼계(三界)의 중생을 이끄는 위대한 스승3)이시거늘 어찌 지옥에 떨어질 일이 있겠는가!' '세존께서 지옥에 떨어질 일이 없다면, 저인들 어찌 지옥에서 벗어날 일이 있겠습니까!'"4)라는 이야기를 제기하고,

백운선사가 말했다. "말해 보라! 제바달다는 어떤 이유로 이렇게 말했을까? 천당과 지옥이 모두 정토라는 뜻일까? 마땅히 법계의 본성을 관찰해야 하며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고 알아야 한다5)는 뜻일까? 이 경계에 이르면 무엇을 부처라 하고, 무엇을 마구니라 하겠으며, 무엇을 천당이라 하고, 무엇을 지옥이라 하겠는가? 잘 알겠는가?"6) 법좌에서 내려왔다.


上堂, 擧, "提婆達多在地獄中, 世尊令阿難傳問云, '汝在地獄中, 可忍受否?' 達多云, '我雖在地獄, 如三禪天樂.' 世尊, 又令阿難傳問, '你還要出地獄麽?' 達多云, '待世尊入地獄, 我卽出.' 阿難云, '世尊是三界大道師, 豈有入地獄分!' 達多云, '世尊旣無入地獄分, 我豈有出地獄分!' 且道! 達多因什麽恁麽道? 莫是地獄天堂, 皆爲淨主7)耶?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耶? 到這裏, 喚什麽作佛? 喚什麽魔? 喚甚麽天堂? 喚什麽地獄? 還委悉麽?" 便下座.


1) Devadatta. 조달(調達)이라고도 한다. 부처님 재세 시, 부처님께 대적하고 악행을 저지른 비구. 부처님으로부터 교단을 빼앗아 장악하고자 하는 욕심을 품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부처님을 해치는 악행을 범하였다. 특히, 부처님께서 기사굴산에 계실 때 바위를 굴려 떨어뜨려 그 파편으로 부처님 몸에 상처를 입혀 피를 흘리게 한 죄[出佛身血], 코끼리에게 술을 먹여 사나워진 코끼리로 하여금 부처님을 해치게 하려고 한 죄[放狂象], 제바달다의 죄를 꾸짖는 연화색비구니를 때려죽인 죄[殺蓮華色比丘尼], 부처님의 수행을 모욕하고 승단의 파괴를 꾀한 죄[破和合僧], 독약을 바른 자신의 열 손톱으로 부처님 발을 찔러 부처님을 해하고자 한 죄[十爪毒手] 등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면적으로 거역하고 해친 오역죄(五逆罪)를 저지른 것으로 유명하다.

2) 색계(色界) 사선천(四禪天) 중에서 제3천. 심사(尋思)가 없는 즐거움을 누린다.

3) 대도사(大導師). mahānāyaka. 음사어는 마하나야가(摩訶那耶迦). 원문의 道는 導가 옳다. 다른 문헌에는 도사(導師) 또는 대사(大師)로 되어 있다.

4) 『禪門拈頌』 17則 韓5 p.31a9, 『宗門拈古彙集』 권2 卍115 p.20a18, 『禪林類聚』 권12 卍117 p.152b16 등의 공안집(公案集)에 수록되어 있다. 부처님의 몸에서 피가 나게 하는 등의 오역죄(五逆罪)를 지어 지옥에 떨어진 내용은 『大方便佛報恩經』 권4 大3 p.148b8 등에 전하지만, 이 문답은 그것을 소재로 하여 하나의 화두로 창안된 것이다.

5) 80권본 『華嚴經』 권19 大10 p.102b1 참조.

6) 이 공안에 대한 백운선사의 평가는 대혜종고(大慧宗杲)의 그것과 유사하다. "벗어날 일이 없고 또한 떨어질 일이 없다면 무엇을 석가노자라 하고, 무엇을 제바달다라 하며, 무엇을 지옥이라 할 것인가? 잘 알겠는가? 스스로 병(甁)을 들고 막걸리를 사러가더니, 도리어 적삼을 입고 나타나 주인 행세를 하는구나."(『大慧語錄』 권7 大47 p.839c12. 旣無出分, 又無入分, 喚甚麽作釋迦老子, 喚甚麽作提婆達多, 喚甚麽作地獄? 還委悉麽? 自攜甁去沽村酒, 卻著衫來作主人.)

7) '主'는 '土'의 잘못된 표기. "地獄天堂, 皆爲淨土"라는 문장은 『宗鏡錄』 권82 大48 p.869a19, 『無門慧開語錄』 권하 卍120 p.516a2 등에 보인다.


백운경한(白雲景閑 1299~1375)
백운의 선법은 꾸밈없고 자연스럽다. 그는 어느 종파나 조사의 선법을 강조하지도 않았고 그때그때마다 종지에 부합하는 내용을 빌려와 활용하면서도 자신의 견해를 무리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당시 유행하던 간화선의 경우 몇몇 구절의 화두가 등장할 뿐 화두 참구의 방법을 애써 강조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백운은 원나라에 들어가 견문을 넓힌 이래로 꾸준히 선사상의 정보를 비축함으로써 당대 조사선의 선법을 충실하게 전한 것으로 보인다.

 

* 이 글은 『정선선어록』 (역주 김영욱, 엮은 곳 대한불교조계종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 2009년)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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