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교 이야기
어머니 치맛자락 잡고 따라간 절에서 시작된 불교 인연
나는 유난히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시장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신기했고, 부산의 어느 시장에서 차력과 마술을 하던 사람을 보고 오래 생각했던 기억도 있다. 그 궁금증과 사유의 습관이 결국 나를 철학과 불교로 이끌었다.
불교와의 첫 인연은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드는 것에서 시작했다. 절에 가지고 갈 공물을 이고 산을 오르시는 어머니를 따라다녔고, 생일이면 방문을 닫고 손바닥을 비비며 중얼거리시는 어머니의 기도 소리를 살짝 엿들었다. 조계종에서 가르치는 절하는 방식과는 달랐지만, 자식을 향한 그 깊은 사랑과 부처님의 가피에 대한 믿음을 어린 나는 가슴 깊이 간직하게 되었다.
대학 입시에 한 번 낙방하고 조계사 맞은편 종로학원을 다니던 시절, 서글프고 우울한 날이면 점심 후 조계사 법당 마루에 앉아 있곤 했다. 그때 느낀 그 청량감이 아마 나에게는 불교·사찰·수행, 모든 것에 공통되는 상징적 감정일 것 같다. 열반을 뜻하는 니르바나, 치성한 불꽃이 식는다는 그 말의 의미를 그 마루 위에서 몸으로 어렴풋이 이해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바로 찾은 곳이 불교학생회였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이 지금까지 도반이 되었다. 써클룸 일지에 누군가 써놓은 ‘공든 탑도 무너진다’는 말이 스무 살의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 탑도 무너진다―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다른 탑이 세워지겠지, 라는 그 짧은 순간에 무상과 허무의 느낌이 희망의 느낌으로 바뀌었다. 그 무렵 도반들과 함께 부산에 계시던 백봉거사님을 찾아뵙고 졸면서 참선도 했다. 동래온천에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던 길, 꼼장어 굽는 냄새가 가득하던 그 거리의 기억도 지금껏 선명하다.
불교와 철학 사이에서
원래 자연계 전공으로 진학했다가 1학년 말 원치 않던 학과로 배정받으면서, 나의 삶의 축은 결국 불교와 철학 쪽으로 옮겨갔다. 힘든 전공 수업을 이수하면서도 기를 쓰고 철학과 수업을 청강했고, 4학년을 통째로 철학과 대학원 입시 준비에 바쳤다. 당시 철학과 학부생들이 거의 모두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문에 정진하던 시기여서 타과, 특히 자연과학 전공에서 이쪽으로 전공을 바꾸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합격 통지를 받던 날 아버지께서는 “네가 아들이면 막걸리 한 잔 받아줄 텐데”라고 하셨다. 부모님은 내가 불교철학을 전공한다는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셨고, 그 마음이 오래 나를 지탱해 주는 지주가 되었다.
심재룡 교수님과 길희성 교수님의 지도로 석사논문을 쓰고, 박사과정 중 미국 유학을 떠났다. 석사논문으로 「『대승기신론』에서의 깨달음의 구조」라는 제목의 논문을 썼다. 나는 석사논문으로 꽤 좋은 평가를 받은 덕분에 결국 박사과정에 진학했고, 공부 중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서른에 가족을 두고 6년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그만큼의 기간을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2004년, 마흔여섯에 모교로 부임하기 위해 귀국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인생에서 크게 의지했던 지도교수님이 돌아가셨다.
서울대에서 불교를 가르친다는 것
2023년에 퇴임할 때까지 말 그대로 질풍노도 같은 삶을 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빴을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도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씁쓸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에서 불교를 가르친다는 것은 다른 어떤 학문을 하는 것보다도 무거운 일이었다. 나의 학문과 교육, 대학 내 보직 활동뿐 아니라 학내외에서 해야 할 일이 끝없이 많았다. 한국 불교계와 관련한 여러 사업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고, 국제적으로도 내가 맡아야 한다는 주변의 기대와 요청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또한 철학과의 유일한 여교수로서, 불교를 전공하는 교수로서 한국 불교 여성을 국제적으로 대표하는 일도 그중 하나였다.
서울대에서 불교를 가르친다고 하면 거의 어김없이 “그러면… 혹시 불교신자이신가요?”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질문에는 대개 질문자가 기대하는 대답이 있다. 그러니 나의 대답은 늘 애매해질 수밖에 없다. “네”라고 하면 학문적 객관성이 흔들릴 것이고, “아니오”라고 하면 불교를 단순한 연구 대상으로 폄하하는 인상을 줄 것이다. 결국 나는 불교의 철학적 성격과 학문의 공적 엄정성, 그리고 신앙이란 나 개인이 소중히 간직하는 사적인 것이라는 이야기로 그 질문을 마무리하곤 한다.
무상 속에서 수행자의 길을 찾다
나이가 들수록 고(苦)·무상(無常)·무아(無我)에 대해 깊이 사색하게 된다. 며칠 전 시민강좌에서 이런 말을 했다. 자아에 대한 집착, 스스로 만든 스토리, 나의 정치관과 가치관, 주위 사람과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강고한 해석―그것이 결국 스스로의 감옥이 되니, 그것을 깨고 자유를 얻을 필요가 있다고. 그 말이 60대, 70대 청중에게 작은 울림을 주는 것 같았다.
10년 전부터 고엔카 선생의 위빠사나 명상을 주된 수행으로 삼고 있다. 진안, 태국 치앙마이, 인도 뭄바이에서 수련을 했다. 고요히 앉아 있다 보면 때때로 큰 물속에 첨벙 빠지는 듯한, 혹은 무한한 허공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감각을 느낄 때가 있다. 이제 남은 저술과 논문을 마무리하고 나면 더 먼 곳으로 눈을 들어, 수행자의 길을 다시 떠나볼 생각이다.
조은수|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석사를 마치고 미국 U.C. 버클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철학과(불교철학 전공)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동 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미국 미시간대 조교수, 불교학연구회 회장, 서울대 여교수회 회장, 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지역 세계기록문화유산 출판소위원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Language and Meaning』과『불교와 근대, 여성의 발견』,『마음과철학』(공저) 등이, 번역서로『불교윤리학 입문』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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