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 스님과 함께하는 마음공부
그것은 내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이미지, 상(相)을 붙잡고 살아간다. 그것이 '나'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착한 사람이야', '나는 성공한 사람이야', '나는 자상한 사람이야', '나는 영적인 사람이야', '나는 수행자야',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등등.
'나는 착한 사람이야'라는 상을 붙잡고 사는 사람은 자기 이미지에 들어 맞지 않는 상황이 올 때 괴롭다. 어떻게 사람이 항상 착하기만 할 수 있을까? 때로는 그 착함이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착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남들에게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기 때문에, 결국 하고 싶지 않은 착한 결정을 하게 된다.
그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때로는 그것이 자신을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 사실 나는 착한 사람인 것이 아니라, 착한 사람이라는 이미지, 상을 붙잡고 집착한 것일 뿐이다. 때때로 우리는 내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그 '착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깨뜨림으로써 자유로워지기도 한다.
착한 사람이라는 자아 이미지를 고수하려는 사람이라면, 나쁜 생각은 결코 허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 안에서는 때때로 나쁜 생각들이 올라온다. 나쁜 사람의 역할을 해야 할 때도 때로는 생긴다.
'나는 성공한 사람이야'라는 이미지를 붙잡고 있는 사람에게 실패는 내가 무너지는 경험이다. 그는 실패를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고, 실패와 맞서 엄청난 에너지로 싸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삶에는 당연히 성공만 오는 것이 아니라, 실패도 찾아 온다.
특별한 자아 이미지를 집착하지 않으면 어떨까? 나를 어떤 특정한 이미지에 가둘 필요는 없지 않을까? 사실 우리 인생에는 성공도 필요하지만 실패도 필요하고, 착함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착하지 않음이 허용되어야 할 때도 있다.
특별한 자아 이미지를 고수하지 않는다면, 나는 조금 더 자유로운 존재로 허용될 것이다. 실패도 허용되고, 부정적인 것들도 허용되며, 좌절과 절망도 허용된다. 그것은 결코 나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내가 만들어 놓은 자아 이미지는 깨뜨려지겠지만, 그것은 허망한 자아 이미지였을 뿐이니, 걱정할 것은 없다. 그 어떤 자아 이미지도 진실이 아니다. 자신에게 자유를 선물해 줘보라.
과거와 미래를 빼면, 나는 무엇인가?
우리가 '나'라고 말할 때, 그 나라는 이미지, 개념, 아상, 에고가 생겨날 때, 그 때는 늘 과거나 미래를 생각할 때 뿐이다. 과거나 미래에 기대어서만 '나라는 생각'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말에 대답하려면, 내가 과거에 했던 수많은 행적들을 뒤적인 뒤에, 그런 과거의 나를 종합하여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결론을 낸다. 이처럼 '나'라는 상, 아상은 과거를 통해 만들어진다. 혹은 미래에 어떤 내가 될 것인지를 꿈꾸며 그런 '나'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러면 과거와 미래를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 그 때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일까? 과연 어디에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지금 여기라는 현재에 존재할 때, 그 때 나는 누구인가? 과거 기억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나는 누구인가?
그 어떤 말로도 나를 표현할 수 없지 않은가?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모든 말들은 전부 다 과거에 그런 행동을 했던 사람이라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런 과거를 다 내려놓고, 참된 진실이 드러나 있는 '지금 여기'라는 이 자리에서 나는 누구인가?
입을 열어 답변하려고 하는 순간, 곧장 과거나 미래가 되고 만다. 모든 언어, 말, 개념, 기억들은 전부 다 과거에서 오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지금 이 순간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지금 이대로의 나를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는가?
지금 이 나는 누구인가? 남자, 여자, 키가 크고 작은, 능력 있고 없는, 명함에 씌여 있는, 내가 이룬 것들 그런 것들이 당장에 떠오르겠지만, 그런 것은 전부 과거의 이미지, 상일 뿐이다. 그런 허상 말고, 지금 여기에서의 실상으로 말해 보라.
나는 누구인가? 나는 없다. 알 수 없다. 모를 뿐.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 어떤 생각으로 나를 정의내리고, 그 허망한 생각을 믿느라 쓸모없는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내가 없으면, 거기에 자유가 있다. 고요가 있고, 평화가 있다. 그 자리에서 살라. 거기에 나는 필요치 않다. 그저 지금 이대로 이렇게 살 뿐. 인연따라 살면 되지, 거기에 '나'를 내세울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내가 무엇인지에 대한 갈증
삶에 나타난 것들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취해 ‘나’, 혹은 ‘내 것’이라고 집착함으로써 헛된 자아관념을 만든다.
‘이것이 나인가’, ‘진짜 나는 누구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생각으로 답하지 말고, ‘모른다’는 갈증으로 답을 내 보라.
삶 위로 수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간다. 우리는 그것들 가운데 유독 마음에 드는 것들 몇 가지를 집착해서 ‘내 것’으로 취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나’,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것은 그저 이 삶 위로 흘러가는 것들이었다. 다만 내 스스로 붙잡아 집착한 것일 뿐.
그것들에 ‘이것이 나인가’, ‘내 것이 맞는가’ 하고 질문을 던져 보라. ‘나는 누구인가’하고 계속해서 묻게 되면 거기에 대한 답이 어느 순간 나오게 된다. 생각으로 내는 답은 관념 속의 또 다른 허상일 뿐, 진짜 답이 아니다.
생각이 아닌 간절한 의문으로 알려고 할 때 결국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 생각 너머로부터 답이 나온다.
끊임없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물으라. 답을 찾고자하는 내면의 갈증만을 가지고 온 존재로 질문을 던져보라. 그것이 화두(話頭)고, 그것이 곧 선(禪)이다.
법상 스님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학을 공부하다가 문득 발심해 불심도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여 년 군승으로 재직했으며, 온라인 마음공부 모임 ‘목탁소리(www.moktaksori.kr)’를 이끌고 있다. 현재는 유튜브 ‘헬로붓다TV’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목탁소리 지도법사로서 서울 목탁소리휴 주지, 상주 대원정사 주지로 있다. 저서로 『보현행원품과 마음공부』, 『수심결과 마음공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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