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상징, 32상 80종호]
불교의 법 중심주의와 불신(佛身) 인식의 필요성
불교에서는 법(法; dharma) 중심의 교리 체계1)로 인하여 석가모니 부처님의 육신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한 경향이 있으나, 인간은 육신을 가진 세속 내의 존재로서 인식의 대부분을 육신의 감각기관을 통하여 하고 있으므로 직접적인 인식 대상이 되는 불신(佛身)에 대하여도 잘 알 필요가 있다.
부처님의 육신이라면 정상의 육계(頂上肉髻:Uṣṇīṣa:살상투), 미간의 백호(白毫) 그리고 금색신을 연상하게 되지만, 그 외에도 32상 80종호를 출생 시에 아시타 선인이 감별한 것2), 머리 하나가 더 큰 키와 훌륭한 체격을 갖추신 것 등 신체적 특징도 다수 경전에 기록되어 있다.
후대에 불상이 만들어지면서 석가모니 불상의 기준이 자세히 정해졌고, 비로자나불 등 제불(諸佛)의 조성에도 원용되었다.3)
사리나 불상과 불화에 대하여는 방광이나 현몽 등 이적(異蹟)도 허다히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40개의 치아, 무릎에 닿는 긴 팔, 손발가락의 물갈퀴 등 특이한 내용이 있고4), 형상과 소리로는 부처를 볼 수 없다는 경책도 있다.5)
형상과 인격의 상관관계: 동서양 관상학 및 현대 과학과의 비교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하여 사람을 판단하는 첫째 기준으로 외모를 꼽아 왔다. 관상학이 골상·체상·수상·족상·성상(聲相)·심상·기색(氣色) 등으로 세부적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서구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신체는 영혼의 상태를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언급한 이래, 골상학이나 체형론 등 외형과 인격의 상관관계를 밝히려는 시도가 지속되어 왔다.
히포크라테스도 신체 외형이 그 사람의 기질(담즙질, 우울질 등)을 반영한다고 보았다. 르네상스기에 이르러 지암바티스타(Giambattista della Porta)는 사람과 동물의 얼굴을 정밀한 삽화로 비교한 『인간 관상학』(1586) 저술로 관상에 관한 고대의 지식을 집대성했고, 라바터(Johann Caspar Lavater) 목사는 “관상은 하나님이 인간의 내면을 외면에 새겨놓은 신호”라고 주장하면서 1772년 눈·코·입의 각도와 길이 등을 분석한 저술을 했다. 갈(Franz Joseph Gall)은 “마음은 뇌의 여러 부위에 분산되어 있으며, 특정 능력이 발달하면 해당 뇌 부위가 커져 두개골의 겉모양에 변형을 일으킨다”면서 “머리뼈의 굴곡을 측정하여 그 사람의 범죄 가능성·지능·성격 등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여 골상학(Phrenology)을 발족시켰고, 윌리엄 셀든(William Sheldon)은 체격과 성격 사이에 태생학적 상관관계가 있다고 하면서 ‘내배엽형·중배엽형·외배엽형’을 주장하였다. DNA 과학이 발달하면서 형상과 성격이 DNA로 결정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근자에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외형과 심리학적 상관관계 연구도 되고 있다.
이러한 신체적 결정론은 근세의 인권사상과 보통선거 제도로 인하여 정치적으로 배격되어 개성미·추미(醜美) 등의 새로운 개념도 주장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인대회가 개최되고 성형수술비가 뇌수술비를 능가하는 등 종래의 표준도 작동되고 있다.
이와 같이 비불교문화에서도 형상과 인격의 관계는 깊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것은 대체로 ‘외형이 성격을 규정한다’는 방향이라면, 불교는 ‘내면의 공덕이 외형을 형성한다’는 역방향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32상 80종호의 유래와 전승: 경전적 근거와 불상 제작의 역사
불경에는 여러 곳에 부처님의 32상6)과 80종호7)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어떠한 업으로 인하여 그러한 상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하여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8)
이것들은 인도 고대의 ‘마하푸루사(Mahapurusa, 大人) 관상학’ 또는 ‘전륜왕상’에 연유한다고 하고9), 후대에 불상을 제작하게 되면서 불상제작의 기준으로 구체화되었다.
부처님께서 생모를 제도하기 위하여 도리천에 다녀오시는 동안 우다연(Udayana)왕이 최초로 불상을 만들었다고도 하나10), 부처님 재세 시는 물론이고, 그 후에도 오랫동안 불상은 제작되지 않았고, 부처님 묘사는 빈 의자·발자국(불족적)·보리수 나무나 잎·수레바퀴(법륜)·사리탑 등에 그쳤다. 금강경 등에는 형상 등에 얽매이는 것을 배격하는 가르침이 있고,11) 불상제작을 금기시한 율장도 있다.12)
불상은 그리스 문화의 영향으로 기원전 1세기경 간다라·마투라 지역13)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기원후 3~4세기 이후 굽타왕조에서 불상 제작이 고도로 정형화되면서, 기존의 32상 기록과 인도 수학·미학을 결합하여 경전의 형태로 집대성된 『불설조상량도경』14) 등 지침서 등에 32상과 80종호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었다. 그중에는 관행으로 정해진 삼도(三道: 목 부분의 세 주름), 티베트 밀교에 연원을 둔 수인(手印, 손과 손가락의 모양) 등 32상 80종호 이외의 불상 기준도 있고, 부처님의 신장이 ‘장육(丈六)’이라는 후대의 해석도 들어 있다.15)
상호(相好)를 대하는 올바른 수행자의 자세
부처님께서는 32상 80종호를 갖추고 태어나신 것이 분명하다. 매우 논쟁적이었던 인도에서 명백한 허위 사실을 주장하는 경전이 전승되는 것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라는 점도 주요한 이유이다. 형상과 음성을 경계한 『금강경』에도 32상을 갖추지 않아 성불한 것 또한 아니라고 밝혀져 있다.16) 부처님의 좋은 상호는 무량 공덕의 결과로 얻으신 것일 뿐만 아니라, 아마도 중생 제도를 위하여 가장 알맞은 형상을 취하셨을 것이므로, 불상 등 부처님 상호를 공경하는 수행은 결국 제상(諸相)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는 해탈의 길이 될 것이다.
거꾸로 32상과 80종호가 부처나 진리의 증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형상이나 음성으로 부처를 구하는 것은 사도(邪道)로서 부처를 볼 수 없다는 금강경의 말씀 외에도, 『수능엄경』 ‘오음마(五陰魔) 상음(想陰)’ 부분의 “불가사의한 광명과 부처의 형상을 나타내나, 이는 마음이 법을 잘못 집착하여 마왕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라는 구절,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의 “마왕 파순이 부처의 형상을 하고 32상을 갖추어 나타나, ‘부처님은 이런 것을 허용하셨다’고 하거든 마땅히 경과 율에 비추어 보라.”라는 구절, 대지도론(大智度論)의 “부처의 모습으로 나타나더라도 그 설법이 탐(貪)·진(嗔)·치(癡)를 여의게 하지 못하면 그것은 마(魔)이다.”라는 구절 등 형상 등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하는 많은 가르침이 있다.
불상은 점안을 거쳐야만 봉안할 수 있게 되는데, 점안의식에서는 먼저 강력한 결계(結戒)와 퇴마(退魔)를 거쳐 사천왕과 호법신을 소청하여 마군(魔軍)의 침입을 막은 다음 개안(開眼)을 통하여 무명을 타파하고, 법신을 화현시킨다. 이와 같이 32상과 80종호도 부처님의 법에 부합할 때만 의미가 있다. 사리(舍利) 기타 성물 숭배 역시 그것을 통하여 부처님을 갈앙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하는 데에 매진하는 것이 올바른 신행일 것이다.
1) 경전에는 ”법은 내가 이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도 있었고 내가 죽은 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자기에게 의지하라. 법에 의지하라. 자기를 등불로 삼아라. 법을 등불로 삼아라.”라고 설해져 있다.
2) 부처님 상호에 관한 첫 기록은 아시타(Asita) 선인의 예언에 나온다. 그는 싣달타 태자의 탄신을 알고 방문하여, ‘불꽃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천체처럼 맑으며, 구름 한 점 없는 가을의 태양처럼 밝은’ 왕자를 보자 환희가 솟아나 큰 기쁨을 얻었고, 지혜에 능통한 그가 ‘인상’을 살피고는 기쁜 마음으로 ‘이 분은 위없는 님, 인간 중에서 가장 뛰어났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부처가 될 것으로 예언하였다. 또한 자신은 부처님 성불시까지 살 수 없어 슬피 울었고, 생질 날라까(Nalaka)에게 성불하시면 가르침을 받도록 시켰는데, 그는 후에 아지타(Ajita)로 개명하고 부처님께 귀의하여 철저히 수행하였다. 그가 바로 미륵(Maitreya)이라고도 한다. 〔전재성 역주(2020개정본), 『숫타니파타』, 한국빠알리성전협회, 날라까 경 270~278면〕. 이 내용은 『불본행집경』, 『관불삼매해경』 등에서 더 상세히 되면서 32상 80종호가 명기되었고, 32상 80종호는 라카나 숫타(32相經)〔각묵 옮김(2009), 『디가 니까야3』, 초기불전연구원, 261~307면〕, 대본경〔김윤수 역주(2019), 『장아함경Ⅰ』, 운주사, 91~96면〕, 32상경〔김윤수 역주(2019), 『중아함경Ⅱ』, 운주사, 17~24면〕, 세친의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용수의 『대지도론』 등 많은 경전에 상세히 해설되었다.
3) 화엄경 세주묘엄품에는 “부처님의 몸은 법계에 가득 차서(佛身充滿於法界), 모든 중생 앞에 널리 나타나신다(普現一切衆生前)”고 되어 있고, 여래출현품 등 여러 부분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화엄경 찬불게 중의 “불신보변시방중(佛身普遍十方中) 삼세여래일체동(三世如來一切同) 광대원운항부진(廣大願雲恒不盡) 왕양각해묘난궁(汪洋覺海妙難窮)” 구절은 사찰의 주련(柱聯)에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그 의미는 ‘부처님 몸은 온 세상에 두루하며,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모두 같으시네. 광대무변한 원력의 구름은 항상 다함이 없고, 넓고 깊은 깨달음의 바다는 오묘하여 궁구하기 어렵도다’이다). 이와 같이 법신불 비로자나 부처님의 몸은 ‘온 우주 자체’이므로 사람의 형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 수 있지만, ‘모든 부처님의 법성이 동일하다’는 점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형상으로 모든 부처님의 불상을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수인(手印) 등 부처님들마다의 다른 특징도 있다.
4) 인공지능은 인간의 치아는 보통 32개이지만 40개도 예외적이기는 하나 인간 DNA로도 생길 수 있고, 40개의 치아가 가지런한 수려한 두상과 무릎에 닿으면서 팔을 펼 때 키와 같은 길이가 되는 특이한 신상모형도 조성할 수 있어, 32상 80종호가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한다. 후광(後光) 등 몸의 광채는 수련된 사람의 일반적 특징으로서, 기독교 성상에도 형상은 좀 다르지만, 널리 표현되고 있다.
5) 대표적으로 금강경 제26분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의 사구게(四句偈)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 즉 만약 모양(색신)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한다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하는 것이니 결코 여래를 볼 수 없으리라.; 또한 병상에 누워 부처님의 육신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하는 왁깔리 비구에게 부처님은 “왁깔리야, 이 썩어 없어질 몸을 보아 무엇 하겠느냐?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라고 하셨다.〔각묵 옮김(2009), 『상윳다 니까야3』, 초기불전연구원, 347면〕. 그 외에도 잡아함 제262 천다경, 중아함 상적유경, 법구경 제148 게송 등 여러 곳에 “형상은 덧없으니 매달리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다.
6) (1) 평평한 발바닥(足下平安立相) (2) 발바닥에 2개의 바퀴(足下二輪相) (3) 긴 손가락(長指相) (4) 넓고 평평한 발(足廣平相) (5) 손발가락 갈퀴(手足指網相) (6) 유연한 손발(手足柔軟) (7) 복스러운 발등(足跌高滿) (8) 단단한 어깨(伊泥膊相) (9) 무릎 닿는 손(正立手摩膝相) (10) 감추어진 성기(陰藏相) (11) 키와 팔길이가 같음(身廣長等相) (12) 터럭이 위로 남(毛生上向) (13) 구멍마다 터럭 있음(一孔一毛生) (14) 금색 몸(金色相) (15) 광채 나는 신체(丈光相) (16) 흙이 묻지 않는 몸(細薄皮相) (17) 손․발․어깨․정수리가 둥글고 단정(七處降滿相) (18) 보기 좋은 겨드랑이(兩腋下降滿相) (19) 사자 같은 상체(上身如師子相) (20) 똑바로 섬(大直身相) (21) 둥근 어깨(肩圓好相) (22) 40개의 치아(四十齒相) (23) 가지런한 치아(齒齊相) (24) 흰 어금니(牙白相) (25) 사자 같은 얼굴(師子顔相) (26)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모습(味中得上味相) (27) 긴 혀(大舌相) (28) 아름다운 목소리(梵聲相) (29) 연꽃 같은 눈(眞靑眼相) (30) 소 같은 눈시울(牛眼腱相) (31) 정상 육계(頂髮相) (32) 미간 백호(白毛相)
7) 32상보다 더 구체적으로 모습을 세분한 것으로 수상(隨相)•소상(小相)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①높고 곧으며 긴 코(鼻直高好孔不現) ②초승달 같고 짙푸른 유리색 눈썹(眉如初生月紺琉璃色) ③쳐진 귓바퀴(耳輪成) ④ 구족한 위의(容儀備足) ⑤평안하고 위엄스러운 용모(住處生意和悅輿語,威震一切) ⑥깊은 목소리(音響深) ⑦분명하고 곧고 길며 연속된 손금(手文明直,手文長,手文不斷) ⑧털구멍과 입에서 향기가 남(毛孔出香氣,口出無上香) ⑨붉고 깨끗한 터럭(毛紅色, 毛潔淨) ⑩넓고 긴 눈(廣長眼) ⑪묵중하고 장대한 신체(身持重,身分大,身長) ⑫빛 나는 몸(邊光各一丈,光照身而行) ⑬중생을 평등하게 보고, 가볍게 보지 않음(等視衆生,不輕衆生) ⑭중생의 언어로 맞는 설법을 함(隨衆生語言而爲說法, 一發音報衆聲) 등이다.
8) 예컨대 10선업도를 비롯하여 신구의의 선행을 하고, 보시 지계하고 포살일을 준수하며, 부모와 사문과 바라문 그리고 연장자를 공경하는 것 등 많은 공덕을 지어 ‘발바닥이 평평한 상’을 얻었고,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고 두려움과 공포를 몰아내고 법답게 살피고 보호하고 여러 가지를 구비한 보시를 베풀어서 발바닥에 바퀴(輪)들이 있는 상을 얻었다는 등〔위 주2)의 32상경 참조〕.
9) 대인상‧전륜성왕상이 부처님 탄신 전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나, 부처님의 상호는 그러한 기준에 맞추어서 사실과 다르게 묘사된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탄생 시에 그러한 상호를 갖추고 태어나셨다는 것이 경전기록의 취지이다.
10) 아함경에는 부처님께서 마지막 하안거 3개월간 생모를 제도하기 위하여 도리천에 가셨는데, 그동안 부처님 계신 곳을 알지 못하여 지상에서는 큰 불안이 발생하여, 특히 카우샴비 (Kauśāmbī) 국왕 우다연(Udayana, 우전왕)은 부처님을 그리워하다가 병이 생겨 죽을 지경에 이르러 전단향 나무로 150㎝ 높이의 부처님 모습을 조각하게 했고, 코살라 국의 파사익 왕도 같은 모습의 금 불상을 조성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목건련이 도리천을 다녀왔다는 내용과 불상과 사원을 조성한 사람의 공덕이 기재되어 있다.〔김윤수 역주(2019), 『증일아함경Ⅲ』, 운주사, 제36 청법품 244~265면〕; 420년경 불타발타라(Buddhabhadra)가 번역한 『관불삼매해경』에는 목건련이 목공 3명을 도리천에 3회나 데리고 가서 부처님 형상을 정확히 조각할 수 있게 했고, 부처님께서 상카시아로 하강하실 때 우다연의 전단향 불상도 부처님을 맞이하였으며, 부처님께서는 “참으로 기특하구나. 네가 나중에 부처가 없는 세상에서 큰 교화를 펼칠 것이며, 나의 제자들은 너에게 의지하여 도를 이룰 것이다.”라고 말하셨다고 되어 있다. 그 얼마 후 사리불은 부처님의 허락을 받고 고향 날라카(Nalaka, 이는 아지타의 첫 이름과도 같다)로 가서 모친을 제도한 다음 입적하였고(그곳에 세워진 사리불의 사리탑을 중심으로 후에 날란다 대학이 건립되었다), 그 보름 후에 목건련이 살해되었으며, 이듬해 2월에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다.
11) 앞의 주5) 참조.
12) 십송율 제48에는 급고독 거사가 기원정사를 조성함에 있어서 벽화에 그릴 내용을 여쭈었을 때 부처님께서 ‘음욕을 일으키는 남녀의 상’을 금지하시고 야차·본생담·오도륜 등을 그리라고만 하시고 부처님의 형상은 포함시키지 않으심으로써 묵시적으로 이를 금지하셨고, 이어서 급고독은 부처님께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형상이야 조성해서는 안 되지만, 원컨대 부처님을 모시는 보살의 형상만큼은 제가 조성할 수 있도록 부처님께서 청허하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려 불상제작이 금기임을 표명하고 있다.(『한글대장경 십송률』 동국대학교 역경원)
13) 간다라(Gandhara) 지역은 현재의 파키스탄 북부와 아프가니스탄 동부 일원으로서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인근의 탁실라(Taxila), 아프가니스탄 동부의 바미안(Bamiyan, 그곳에 있던 거대 마애불은 2001년 파괴) 등이 중심이었고, 마투라(Mathura) 지역은 인도 수도 뉴델리(New Delhi)에서 남동방 150km가량이다.
14) 건륭7년(1742) 청의 공포차부(工布查布, Gombojab)가 티벳 대장경 『단주이(丹珠爾, Tengyur)』에 수록된 조상량도(造像量度) 관련 내용들을 바탕으로 번역•편찬한 불상 조성에 관한 표준서. 부처님의 신체 각 부분의 비례를 ‘지(指, 손가락 폭)’라는 단위로 세밀하게 규정했다.
15) 32상 중의 '신수광등상(身手廣等相)' 혹은 '니구율상(尼拘律相)'은 가로와 세로(키와 펼친 팔의 길이)가 똑같이 대칭을 이루는 큰 몸이라는 뜻일 뿐 신장에 관한 직접적 표현은 아니다. 세친(Vasubandhu)의 『구사론(俱舍論)』과 『대비바사론』에 “부처님의 신장은 보통 사람의 배”로 기재된 것이 중국에 전수되어 부처님의 키는 16척(丈六: 4.8m)으로 통용되고 있다. 후한 명제(明帝)가 몸이 황금색이고 머리에서 빛이 나는 거인을 본 꿈을 꾸었을 때, 신하 부의(傅毅)가 "서방에 '불(佛)'이라 불리는 성자가 있는데 그 키가 장육이며 황금색입니다"라고 답하였다는 기록이 있고(後漢書,,魏書 釋老志), 삼국유사에는 진흥왕 35년(574년) 황룡사에 인도의 아육왕(아쇼카왕)이 보낸 황철과 금으로 ‘장육존상(丈六尊像)’을 조성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부처님의 키는 보통 사람보다 머리만큼 더 큰 약 180~190cm로 추정된다〔기원정사의 부처님 처소인 간다쿠티(Gandhakuti, 香室)가 가로·세로 약 3~4m 정도의 소박한 사각형 방인 점, 부처님 거처의 문 크기, 불상을 만들기 전에 조성된 사르나트·산치 등에서 발견된 ‘발자국(佛足石)’의 크기가 30~40cm 정도인 점, 율장(Vinaya)에 기재된 부처님 가사 규격 등에 의함〕.
16) 『금강경』 제27 「無斷無滅分」 중 “須菩提 莫作是念 如來不以具足相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구상진|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검사 생활을 했고, 서울시립대 법학과 교수 및 동 대학 로스쿨 원장, ‘법조불교인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변호사, ‘헌법을생각하는변호사모임’ 명예회장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한국불교와 자유민주주의』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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