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의 32상(相) 80종호(種好) 장엄
[붓다의 상징, 32상 80종호]
부처님의 몸에 새겨진 서른두 가지 초월적 흔적들
불교 경전의 나침반을 따라가다 보면, 석가모니불의 몸이 일반인과 확연히 구분되는 서른두 가지의 초월적 흔적, 즉 ‘32대인상(大人相)’으로 장엄되어 있었음을 보게 된다. 물론 경전마다 이를 기술하는 시선과 순서에는 저마다의 결이 있다. 어떤 경전은 대지에 뿌리박은 발끝에서부터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는 상향식(上向式)의 서사를 그리기도 하고, 다른 경전은 지혜가 깃든 정수리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하향식(下向式)의 변주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거룩한 신체의 기록은 시간이 흐르며 더욱 세밀하고 미시적인 ‘80종호(種好)’와 결합한다. 결국 불교적 사유 속에서 부처님은 형이상학적 완벽성을 성징하는 ‘32상 80종호’를 온전히 구족(具足)한, 우주의 거대한 깨달음 그 자체[大覺者]로 마주하게 된다.
경전은 이 서른두 가지 대인상을 품고 태어난 인물에게 오직 두 갈래의 거룩한 길만이 허용된다고 확언한다. 하나는 세속의 경계 안에서 칼과 창의 무력 대신 오직 정법(正法)의 수레바퀴로 사해(四海)를 평화롭게 다스리는 최고 통치자, 즉 ‘전륜성왕(轉輪聖王)’의 길이다. 다른 하나는 세속의 붉은 먼지를 털어내고 출가하여, 무명(無明)과 집착으로 어두워진 세상의 장막을 걷어내고 인류를 건지는 ‘부처님’의 길이다. 왕관을 쓸 것인가, 아니면 왕관마저 버리고 법왕(法王)이 될 것인가 하는 성스러운 선택인 셈이다.
이러한 32상의 개념은 역사 속 한 인간이었던 고타마 싯다르타를 넘어, 그를 초인(超人)이자 신성한 존재로 추앙하는 신앙의 토양 위에서 피어났다. 때문에 역사적 사실성을 짚어내던 초기 불교의 시대를 지나, 타인을 향한 눈물겨운 이타심과 보살행을 전면에 내세운 대승불교 시대에 이르러 사상적 개화를 맞이하게 된다.
부처님의 생애를 신화적·종교적 서정으로 물들인 불전(佛傳) 문헌과 대승 경전 속에서 32상에 대한 가장 풍부하고 입체적인 표현이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육신은 왜 이토록 장엄한 흔적들을 성취하게 되었을까. 그 근원은 아득한 과거 무량겁의 세월 동안 쌓아 올린 지극한 선업(善業)의 발현에 있다.
『대지도론』의 한 구절은 이 인과의 이치를 한 편의 시처럼 서술한다. “마치 무거운 물건을 한 사람의 힘으로는 멜 수 없고 반드시 여러 사람의 힘을 모아야 하는 것처럼, 이 거룩한 상(相)의 인연을 심는 것 역시 단 한 번의 성긴 생각으로는 불가능하다. 반드시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큰 마음(大心)과 수많은 선한 의지(多思)가 겹겹이 화합해야 비로소 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백복상(百福相)이라 부르니, 백 가지 큰 마음과 생각이 복덕의 밭을 일구었기 때문이다.”
초기 경전과 미술사로 추적하는 부처님의 32대인상
부처님이 지닌 서른두 가지 대인상의 비밀을 풀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펼쳐 들어야 할 나침반은 초기 경전인 『디가 니까야』의 「락카나 수타(Lakkhana Sutta, 삼십이상경)」이다. 이 성스러운 기록은 5세기 초, 불타야사와 축불념의 거룩한 손길을 거쳐 『장아함경』의 「대본경(大本經)」으로 한역되었으며, 부처님의 생애와 불타관을 관통하는 역사적 사유들을 포괄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 경전이 지닌 진정한 가치는 부처님의 신체적 특징을 그저 신비롭게 묘사하는 단순한 기술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경전은 서른두 가지 상이 아득한 전생에 지은 구체적인 선업과 어떻게 인과적으로 맞물려 작동하는지를 지극히 명밀하고 논리적인 구조로 증명해 낸다. 즉, 여래의 거룩한 몸[佛身]이야말로 불교의 핵심 진리인 ‘업설(業說)’이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된 성전(聖殿)임을 명징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그 인과의 흔적들 중에서도 대지에 굳건히 뿌리내린 편평한 발바닥과 그 속에 아로새겨진 천 개의 바퀴살 문양[천폭륜상(千輻輪相)], 그리고 중생을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구원하겠다는 서원이 깃든 손발가락 사이의 얇은 막[수족망만상(手足網縵相), 그림 1]은 초기 불교미술이 가장 먼저 주목했던 거룩한 상징이다.이에 더해, 탐욕을 여읜 성자의 초월성을 보여주는 말의 그것처럼 감추어진 성기[음마장상(陰馬藏相)], 번뇌의 불길이 꺼진 평온함을 투영하듯 자마금빛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색 몸[금색상 (金色相), 그림 2], 두 눈썹 사이에서 온 우주의 어둠을 비추며 희고 부드럽게 피어난 백호[백호상(白毫相)], 그리고 지혜의 결정체로서 정수리에 성스럽게 솟아오른 육계[육계상(肉髻相)]에 이르기까지….
이 신성한 도상들은 인도 고대 불교미술의 태동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부처님이라는 지고의 존재를 시각적으로 구현해 내는 가장 핵심적인 미학적 기준이자 이정표로 자리 잡게 되었다.
부처님의 정수리는 왜 혹처럼 솟아올랐을까
부처님의 형상이 타 종교의 성상(聖像)과 구별되는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바로 정수리에 성스럽게 솟아오른 ‘육계상(肉髻相)’이다. 왜 부처님의 머리 위에는 마치 혹과 같은 독특하고 신비로운 형상이 자리 잡게 되었을까? 「삼십이상경(三十二相經)」에 따르면, 부처님은 전생에 늘 선행의 선두에 서서 진리를 실천하는 데 온 삶을 바치셨으며, 그 지극한 수행의 공덕이 마침내 정수리로 발현된 것이 바로 육계상이다.
그 구체적인 인과적 근거는 『디가니카야』 「삼십이상경」의 한 대목에서 더욱 명확히 확인된다. 경전에 따르면 여래는 과거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 몸과 말과 마음으로 선법(善法)을 행하고 보시와 지계를 실천하며, 부모와 성현, 연장자를 공경하는 등 ‘열 가지 유익한 법’에 늘 앞장섰던 우두머리였다. 이처럼 쌓은 공덕으로 사후 천상에 태어나 다른 신들보다 열 배나 뛰어난 천복을 누렸으며, 마침내 인간 세상에 다시 올 때 오랜 시간 수행의 결정체로서 정수리에 육계가 솟은 거룩한 대인상(大人相)을 얻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처럼 경전은 부처님의 신체적 특징이 우연의 산물이 아닌, 지극한 공덕의 결과물임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불상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미학적 반전이 존재한다. 초기 불상 제작의 두 축이었던 중인도의 마투라 불상(그림 3)과 간다라 불상(그림 4)의 육계는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한국 불상의 육계와 사뭇 다른 결을 보여준다. 초기 인도와 간다라의 장인들은 당시 수행자들이나 귀족들이 머리카락을 묶어 올리던 실재적인 ‘상투’의 모습을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로 치환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인간 고유의 생활 양식이 성스러운 도상에 그대로 투영된 결과였다.
반면, 세월의 강을 건너 동아시아를 거쳐 정착된 한국의 불상(그림 5)은 육계를 단순한 머리카락이 아닌, 오랜 수행과 전생의 복덕이 빚어낸 결정체, 즉 ‘살상투[肉髻]’ 그 자체로 인식했다. 이 거룩한 신앙의 안목 속에서 인간적인 상투의 형태는 점차 추상화되었고, 마침내 정수리 위에 지혜와 복덕이 성스럽게 솟구쳐 오른 초월적인 혹의 형태로 승화되었다. 인간의 소박한 머리 모양에서 출발해 우주적 공덕의 상징으로 진화한 한국 불상의 육계는, 형상 너머에 깃든 불교의 인과법을 오늘날 우리에게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웅변하고 있다.
유근자
국립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하며 조선시대 불상의 복장 기록과 간다라 불전 미술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시대 왕실발원 불상의 연구』와 『조선시대 불상의 복장기록 연구』,『간다라에서 만난 부처』(공저), 『한국불교사 조선·근대』(공저)가 있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