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가신 불일암 대숲길에는 서늘한 바람만이 ‘스스슥…’ 불어오네, 송광사 불일암 무소유 길

 - 천년사찰 숲길 걷기명상


불일암으로 향하는 무소유 길 이정표

인적 드문 곳에 발길이 잦아져
길이 만들어진 대숲 길에 바람이 분다.
하늘 볼 일이 없는
서울 생활에 찌든 ‘도시 번뇌’를
녹여내기 위해 하늘을 본다.

순천 조계산 송광사 불일암에 오르며
하늘을 쳐다보며 언어의 장벽에 막혔다.

명상은 열린 마음으로
귀 기울이고 바라봄이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뒤끓는 번뇌를 내려놓고 빛과 소리에
무심히 마음을 열고 있으면
잔잔한 평안과 기쁨이 그 안에 깃들게 된다.

무소유 오솔길

송광사에서 불일암으로, 무소유에 이르는 길

구름이 흘러간다. 하늘이 일렁인다. 바람이 분다. 하늘을 쳐다보며 어떤 표현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순천 조계산 송광사 불일암에 오르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며 언어의 장벽에 막혔다. 초여름 뭉게구름 흘러가는 모습을 보며 딱 맞는 표현을 하려다가 낭패만 당했다. 모든 게 ‘무(無)’요, ‘공(空)’이다.

초여름 송광사를 찾아 푸른 하늘을 많이도 봤다. 하늘 볼 일이 없는 서울 생활에 찌든 ‘도시 번뇌’를 녹여내기 위해서다. 송광사를 찾아 기도도 올렸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다.

‘수고했다, 나 자신.’ ‘함께 해 주어서 고마워요, 내 이웃.’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는 불교의 가르침은 연기법(인연법)이다. 송광사를 방문했다면 돌아봐야 할 암자가 불일암이다. 법정 스님이 머물렀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송광사와 순천시가 ‘송광사 무소유 길’이라는 명칭으로 숲길을 조성해 놓았다. ‘무소유 숲길’이라고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특별하지는 않다고 했다. 법정 스님이 머물렀던 불일암을 오르는 길이다. 문득 법정 스님의 저서 『서 있는 사람들』 표지사진이 생각났다. 승복에 대님을 말끔히 매고 서 있는 모습이다. 불현듯 스님이 수시로 오르내렸을 불일암 길이 상상 속에 아른거렸다.

송광사 불교용품점에서 불일암 가는 길을 물었다.

“요 아래로 가셔서 개울 건너 쭉 올라가쇼잉. 왕복 2시간이면 충분할 것이요.”

계곡 돌다리를 건넜다. 조계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옥수(玉水) 같다. 바닥을 보니 1급수에만 산다는 버들치가 유유히 논다. 누가 잡으려 들지 않으니 느긋하기조차 하다. 종무소 아래 전각에는 신행단체인 ‘송사모’ 팻말이 있다. ‘송광사를 사랑하는 모임’이다. 예전에는 수련대회라는 이름으로 수행을 했는데 지금은 템플스테이라는 명칭을 쓴다. 시설도 과거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여건이 좋아졌다.

송광사는 예로부터 훌륭한 스님들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한국불교의 승보종찰’로 불렸다. 과거에는 16국사가 나올 정도였으니 이렇게 불렀을 법하다. 계곡을 끼고 내려오는 우측에는 템플스테이 공간이 큼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감로암을 오르다가 짐짓 길을 잘못 택했음을 직감하고 길을 물어 밑으로 내려왔다. 광원암과 불일암이란 팻말이 적힌 대숲이 나타났다.

‘아! 무소유 길이 여기군.’

법정 스님이 들려주는 삶의 가치를 찾는 성찰

인적 드문 곳에 발길이 잦아져 길이 만들어진 숲길이 ‘무소유 길’이다.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자전거도 다니지 못하는 작은 오솔길이다. 몇 걸음 들어가니 ‘무소유 길’이라는 팻말이 나온다. 길에서 만난 팻말이 반가웠다. 길이 더 의미 있어 보였다. 팻말에 적힌 글귀를 음미하며 마음속으로 읽어 내려갔다.

무소유 길 팻말

“당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 그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이라. 그래서 당신의 인생을 환하게 꽃피우라.”(법정 스님 ‘오두막 편지’ 중에서)

숨을 내쉬고 들이쉬고를 반복하며 알아차림을 하며 걷다가 마주한 글에 무릎을 “탁!” 치고 싶을 정도로 공감이 된다.

젊은 날 얼마나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방황했던가? 문학청년으로 번민의 밤을 지새운 날도 많았고,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두꺼운 껍질을 깨고자 고뇌도 했다. 결국 삶과 관련된 일을 찾아 지금까지 진력하고 있지만 삶의 가치를 찾아 하고자 하는 일은 한켠에 두고 있다. 이런 고민을 할 겨를도 없이 세상에 내몰리는 요즘 세대의 청년들에게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불일암으로 오르는 조계산 돌길

가파른 산길이 눈앞에 들어온다. 본격적 산행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그 한켠에 또 하나의 팻말이 자리하고 있다.

“명상은 열린 마음으로 귀 기울이고 바라봄이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뒤끓는 번뇌를 내려놓고 빛과 소리에 무심히 마음을 열고 있으면 잔잔한 평안과 기쁨이 그 안에 깃들게 된다.”(법정 스님 ‘오두막 편지’ 중에서)

팻말의 글을 화두로 삶아 그 의미를 되새김질한다. 생각을 내려놓는다. 머리가 하얀 백지상태가 된다. 다가오는 사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육근(눈 귀 코 혀 몸 의식)을 열어놓는다. 길은 길로 이어져 있다. 사람이 다니던 길은 동물이 다니는 길과 연결돼 있다. 그 길로 빗물이 흘러 내린다. 사람이 다니고 동물이 다닌다. 바람이 다니는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무소유 길’이라는 명칭도 무색해 보인다. 모두가 인간에 의해 이름 지어진 것이기에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보라색 엉겅퀴꽃

한동안 길 이름을 뇌리에서 지워버리고 걸어본다. 이름이 없어도 아무 제약도 없다. 오히려 그냥 바라보고 걸어가는 길이 더 친근하다. 길섶에 몇 포기 엉겅퀴가 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피는 들꽃이다. 그 옆으로 꿀풀도 피고, 개망초도 앞다투듯 하얀 꽃대를 올려 숲의 일원으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사이에 하나의 팻말이 또 보인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법정 스님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많은 것을 가지려는 세상에 무소유의 가르침을 일깨운 법정 스님의 일성이다. 넘치는 부(富)보다 맑은 가난이 값지고 고귀하다는 가르침을 세상 사람들은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들꽃은 이미 자신이 필요한 것만 최소한 취하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지내다가 저마다의 꽃을 피운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자연은 그 자체가 무소유의 삶이거늘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는 사람은 그 뜻을 알아차리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영영 모르고 살다가 가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법정 스님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무소유 길 대숲 계단
대숲 길섶에 돋아나는 죽순

불일암으로 들어가는 대숲 길 초입에 아로새겨진 팻말이 나그네의 발길을 또 머물게 한다. 작고 소박한 것에 깃든 행복과 아름다움을 설파하는 법정 스님. 당신의 삶이 그러했기에 가신 뒤에도 더욱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대숲에 들어서는 길에도 스님의 주옥같은 가르침이 팻말에 새겨져 있다.

국가유산청 예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법정 스님의 나무의자

법정 스님의 나무의자에 앉아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무리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법정 스님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나무 관도 없이 평소에 입던 가사 한 벌만 입고 피안의 세계로 가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이 세상 어떤 수행자의 마지막 모습보다 파격적이고,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불일암 건물 외관
불일암에서 정진하던 법정 스님

서걱거리는 대숲바람 소리를 들으며 불일암에 든다. 적요하다. 소박하고 검소했던 법정 스님의 가풍을 잇고 있는 암자는 가시기 전과 좀 변했다. 하사당이 새로 지어졌고, 자동차가 오르내릴 수도 있게 됐다. 스님의 부도탑도 만들어졌다. 법정 스님의 나무의자는 국가유산청의 예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암자 앞 나무 아래에는 ‘법정 스님 계시는 곳’이란 명패가 붙어 있다. 나무의자 책갈피에 눈을 갖다 대어 본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애초의 그 하나마저도 잃는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에 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늙음이 아니라 녹스는 삶이다.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법정 스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중에서)

초여름 불일암 입구에는 큰 감나무가 몇 그루 서 있다. 감꽃을 떨어뜨린 뒤 열린 감도 바닥에 상당히 떨어져 있다. 나무가 지탱할 수 있는 감만 남기고 필요 없고, 감당 못하는 감은 자연에게 돌려주고 있다. 불필요한 것은 취하지 않고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만을 취하는 감나무에서 법정 스님의 가르침이 보인다.

 

글/사진__여태동 시인. 경북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및 동국대 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를, 동방문화대학원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사찰과 전통한옥 고택, 동화, 고승인터뷰, 도시농부 일기 등 10여 권의 책을 출간했고 법정 스님 관련 등 10여 편의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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