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숨어있다 / 강릉 굴산사지
음력 5월 5일은 단오, 수릿날이다. 일 년 중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이라고 하여, 이날 사찰에서는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소금을 땅에 묻기도 한다. 양기가 왕성한 날, 바다를 상징하는 소금을 땅에 묻으면 불로부터 전각과 도량을 지키고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민간에서 단오는 모내기가 끝나고, 한여름이 오기 전 가장 흥겹고 즐거운 축제였다. ‘단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남자들이 근육을 뽐내며 힘과 재주를 겨루는 모습을 그린 단원 김홍도의 작품 <씨름>과 여자들이 머리를 감고 그네를 타며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을 담은 혜원 신윤복의 작품 <단오풍정>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강릉단오제
고대 시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5월을 맞아 대중이 모여 신에게 제사를 지낸 후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밤새도록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예로부터 설, 한식, 한가위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절로 손꼽혔던 단오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명절로써의 색채가 점점 퇴색되었다. 일제는 조선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어우러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단오의 전통과 문화는 점차 말살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흔드는 흥겨움과 함께 이어온 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강릉에서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단오가 되면 시장에 모여서 작은 규모의 굿과 치성 그리고 유희를 하며 단오제의 명맥을 지켜나갔다. 우리 고유의 민속 축제 원형과 문화를 간직한 강릉단오제는 그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인정받아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으며 2005년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되었다. 현재 강릉단오제는 축제가 열리는 기간 동안 수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유교, 불교, 토속 신앙이 한 자리에
강릉단오제는 유교의 제례와 불교의 문화 그리고 토속 신앙을 대표하는 굿이 어우러진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 음력 4월 5일 신에게 바칠 술을 빚는 신주 빚기와 4월 15일 대관령 치제를 지내면서 축제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대관령 치제의 역사는 936년(고려 태조 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릉 출신의 호족이자 장군이었던 왕순식은 후백제와 일전을 앞둔 태조 왕건을 지원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강릉에서 일선(선산)으로 가는 길에 대관령을 지나면서 사당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 후 왕순식이 군사를 이끌고 합류하자 왕건은 기뻐하면서 전날 밤, 신비한 스님이 삼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오는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태조 왕건이 ‘신비한 스님’이 군사를 이끌고 온 꿈 이야기를 하자 왕순식은 대관령을 넘으며 ‘이승사(異僧社)’에서 제를 올렸다고 말하며 ‘신비한 스님’이 같은 분일 것이라고 답했다. 태조 왕건과 왕순식의 이야기는 <동국여지승람>과 <고려사>에도 기록이 남아 있다. 왕순식이 대관령의 사당에서 올린 제를 기원으로 본다면 강릉단오제는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강릉단오제의 공식 일정은 유교식 제의이다. 축제를 시작하며 강릉시장이 초헌관을 맡아 제의를 올리고, 축제 기간 내내 날마다 같은 시간에 제의를 올리며, 축제 마지막 날에도 유교식 제의로 마무리한다. 유교식 제의는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한마당이 아니라 사당에서 임무를 맡은 인물이 제의에 참여한다. 하지만 강릉단오제에서 가장 중요한 축제는 음력 5월 3일부터 8일까지 닷새 동안 강릉 시내 남대천 단오장에서 열리는 무당 굿이다. 행사마다 빠지지 않는 무당 굿은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볼거리이자 특별한 유희다. 이때 무당들이 부르는 무가(巫歌)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강릉단오제의 주신(主神)은 바로 강릉 출신의 스님인 범일국사이다.
대관령 국사 성황신 범일국사와 굴산사
왕순식이 대관령을 넘으며 제를 올린 사당에 모셔진 스님과 태조 왕건이 꿈에서 본 스님은 바로 범일국사이다. 불교와 토속 신앙 그리고 유교가 융합하며 공존해 온 강릉단오제에서 범일국사는 가장 중요한 존재감을 가진 인물이자 정체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대관령의 국사 성황신이 되기 전, 범일국사는 스님이었다.
통일 신라 말, 범일국사는 당나라로 유학하여 선종 불교의 정수를 깨닫고 신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강릉 굴산사에서 40년을 주석하며 ‘사굴산문’을 개창했다. 이때 신라의 경문왕, 헌강왕, 정강왕이 범일국사를 정중하게 국사의 예로 청했으나 모두 거절하였고 889년, 세수 79세로 입적할 때까지 강릉에 머물렀다. 범일국사가 개창한 사굴산문의 명맥은 송광사로 이어졌고 이곳에서 보조국사 지눌이 배출되었다. 선종 불교 중흥의 기반을 다진 범일국사는 왜 그리고 어떻게 대관령의 성황신이 되고 강릉단오제의 주신(主神)이 된 것일까?
오랜 세월 강릉 지역에서 신앙의 구심점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범일국사는 입적 후 민중의 강력한 요구로 인하여 신이 되었다. 백성들은 범일국사가 주석했던 굴산사가 아니라 대관령을 관장하는 성황신으로 받들었다. 그렇게 범일국사는 ‘대관령 국사 성황신’이 되었고, 매년 음력 4월 15일이 되면 대관령에서 내려와 민중들과 함께한다. 이때 범일국사와 함께 오는 중요한 신들이 있으니 대관령 산신으로 모셔진 김유신 장군과 대관령 국사 성황신의 아내인 대관령 국사 여성황이다.
대관령 국사 성황신 범일국사가 느닷없이 아내를 맞이하게 된 것은 조선시대이다. 단오는 백성들의 축제이고, 음양의 조화가 어우러져야 하기에 사람들은 국사 성황신을 부부로 만들었고, 나중에는 국사성황신 부부의 아들도 등장하여 신으로 모셨다.
범일국사가 주석했던 굴산사지는 강릉단오제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이자 장소이다. 또한 범일국사의 탄생 설화가 담긴 연못, 석천과 학바위 등도 굴산사지에서 만날 수 있다. 설화에 따르면 강릉 호족 문공의 딸은 석천에서 해를 담은 물을 마시고 잉태하여 범일국사를 낳았다. 혼인하지 않은 몸으로 아들을 낳은 여인은 아이를 바위 밑에 버렸다. 하지만 사흘 후 다시 가보니 아이는 건강하게 살아있었고, 하얀 학이 아이를 보살피고 있었다. 놀란 여인은 아이를 다시 데려와 정성을 다하여 키웠고, 아이는 15살이 되던 해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
굴산사는 사라지고 우뚝 선 당간지주만 남았으나 대관령 국사 성황신이 나고 자란 학산과 학바위 그리고 석천은 굽이굽이 이야기로 이어져 신화와 전설이 되었다. 신이 된 스님, 범일국사의 이야기는 ‘강릉단오제’ 속으로 스며들었고, 축제의 정서와 서사를 완성하는 애틋하고 아름답고 소중한 문화가 되어 우리 곁에서 생생하게 함께하고 있다.
조민기|한양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다. 영화사를 거쳐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다가 칼럼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고,『세계일보』에 칼럼 ‘꽃미남 중독’을 연재했다. 현재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조선임금잔혹사』,『3분만에 읽는 조선왕조실록』,『부처님의 십대제자–경전 속 꽃미남 찾기』, 『범일국사』등이 있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