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리는 이미 드러나 있다
[법상 스님과 함께하는 마음공부]
지금과 다르게가 아니라, 지금처럼 산다
우리가 깨어있는 자, 깨달은 자라고 말하는 이들은 어떤 삶을 살까? 평범한 우리와는 전혀 다른 도인의 삶이 따로 정해져 있을까? 그렇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금 우리의 삶과 그들의 삶은 똑같다.
사실 삶은 인연 따라 펼쳐지는 것이기 때문에, 연기법대로 펼쳐지는 모든 것들은 자아라는 주체성 없이, 무아로써 그저 인연따라 생겨났다가 인연따라 변해가고 인연따라 사라질 뿐이다.
이 연기법이 바로 진리다. 무수히 많은 상호연결성, 중중무진의 연기에 따라 우리는 매 순간 인연을 만나고, 매 순간 그 인연은 새롭게 변해간다. 그 인연을 내가 주도하고,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여기겠지만, 그것은 하나의 아상, 에고일 뿐이다.
온 우주법계 전체가 중중무진의 연기법에 따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원인과 조건이 불가설불가설 무수한 연결성을 통해 이 평범해 보이는 눈앞의 현실을 만들어낸다.
내가 한다고 느끼지만, 이 온 세계가 연결됨으로써 크고 작은 무수한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무아다. 연기법의 세계에 '나'가 개입될 여지는 없다. 이 무한한 중중무진의 연기 속에서 삶은 저절로 살려진다.
우리가 통상 깨달은 자라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러한 연기법의 세계 속에서 온전히 연기의 법과 하나가 되어 연기된 삶을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산다.
그러니 자기, 자기 주장, 자기 고집이 없다. 내 인생이 이렇게 되어야 해, 저렇게 되어야 해, 안 되면 절대 안 돼 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나가 없이, 그저 흐름을 타고 흘러갈 뿐이다. 그러나 중생들은, 똑같이 그렇게 연기법대로 흘러가고 있으면서도 자기 머리속에서 '내 인생은 이렇게 되면 안 돼', '저렇게 되어야 해', '저 녀석에게는 꼭 이겨야 해' 이런 식의 자기 생각으로 법계의 연기와 다른 삶의 방식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자기 생각과 삶이 다르면, 괴로워하며, 삶을 내가 바꾸겠노라는 야심찬 어리석은 생각을 품고는 삶과 싸우기 시작한다. 삶과 싸우고, 내 식대로 삶을 살겠다는 것은 이 우주 전체와 싸우겠다는 것이다. 연기법을 거스리겠다는 것이다.
주어진 삶, 그것이 진실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진실이다. '지금과 다르게'가 아니라, '지금처럼' 살라.
진리는 단순하다 이미 드러나 있다
보통 사람들은 삶의 진실은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삶은 아주 쉽다. 삶의 진실은 너무나도 단순하고 쉽다. 지금 이대로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다. 그 이면에 숨겨진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명백하게 지금 이대로 모든 진실은 완전하게 드러나 있다.
다만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 분별, 의식으로 세상을 자기식대로 해석하고 분별하고 판단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자기식대로의 세계로 뒤바뀌어졌을 뿐이다.
지금 이대로의 나 자신이 그저 이렇게 있을 뿐이다.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그런데 순간 옆에 있는 남과 비교를 시작하는 순간 나는 우월하거나 열등한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만다.
진실은 아주 단순하다. 그저 지금 이대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라. 끝!
그 이면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분별의식 안에 숨겨진 분별망상이 있는 것일 뿐이다. 삶은 이토록 단순하고 명백하다.
매미소리가 들려온다. 물 흐르는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온다. 숨은 들어오고 나간다. 자판 위에서 손가락이 움직인다. 의자에 앉아 있는 감각이 느껴진다.
이것이 전부다. 다른 무엇을 더 찾을 것인가? 지금 이대로 말고 다른 것을 찾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시도다. 지금 이대로가 100% 전부다. 모든 것은 다 드러나 있다. 더 찾을 것은 없다.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며, 평소 못 보던 것을 보고, 초현실적인 것을 체험하고, 깊은 삼매에 들어가며, 차크라가 열린다는 등의 온갖 이야기가 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 모든 것들은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일 뿐이지 않은가?
심지어 견성(見性) 체험이라는 그 체험 또한 왔다가 가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생멸법(生滅法)일 뿐.
지금 이렇게 언제나 있는 이대로가 진실 아닌가? 지금 이대로, 바로 이것을 빼고 다른 무엇을 더 찾고자 하는가? 이렇게 있을 뿐.
부족함 없는 나의 보물창고
마조는 찾아와 인사를 올리는 대주혜해에게 묻는다.
“무슨 일로 왔는가?”
“불법을 구하고자 왔습니다.”
“어찌 너의 보물창고는 놓아두고 쓸데없이 돌아다니기만 하느냐... 진리를 구하고자 왔다고 말하는 바로 그것이 그대의 보물창고이다. 자네는 일체를 다 갖추고 있어 아무런 부족함도 없다. 또 쓰고자 하면 얼마든 쓸 수도 있다.”
진리를 구하는 그놈이 바로 진리다. 무언가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는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는가? 사실은 당신에게 그 모든 것은 다 구족되어 있다.
그것을 얻고자 한다면, 다만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발심하고, 갈망하라. 그 발심이 당신에게 본래 구족되어 있는 그것을 가져다 준다.
봄을 찾으러 온 산을 헤매다 집으로 돌아오니 집 뜰에 매화가 피어있다는 비유가 있다. 찾는 모든 것은 바로 찾는 거기에 있다.
이 세상 삼라만상이 이 한마음 속에 있다. 삼라만상 온 우주가 당신의 마음 속에서 드러난 환영일 뿐이니, 어디에서 그것을 찾는단 말인가.
법상 스님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학을 공부하다가 문득 발심해 불심도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여 년 군승으로 재직했으며, 온라인 마음공부 모임 ‘목탁소리(www.moktaksori.kr)’를 이끌고 있다. 현재는 유튜브 ‘헬로붓다TV’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목탁소리 지도법사로서 서울 목탁소리휴 주지, 상주 대원정사 주지로 있다. 저서로 『보현행원품과 마음공부』, 『수심결과 마음공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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