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교 이야기
내가 불교를 선택한 이유
해인사가 있는 합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 부산으로 이사했다. 그 이듬해부터 집에서는 어머니와 누나 사이에 작은 ‘종교 전쟁’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철저한 기복신앙을 가진 불자였다. 부처님께 기도해 아들 셋을 얻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에, 누나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혹여 부처님이 노하여 세 명의 남동생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하셨던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불교와 기독교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고등학생이 되자 직접 교회와 절에 가보겠다고 마음먹었다. 학교에서는 불교 동아리에 가입해 매주 토요일이면 절에 갔고, 일요일에는 누나를 따라 교회에 나갔다.
나는 불교와 기독교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고등학생이 되어 교회와 사찰에 나가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불교 동아리에 가입하여 매주 토요일이면 절에 가고, 일요일에는 누나를 따라 교회에 나갔다. 내 판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교회에서 한 달간 교리를 배웠는데 매번 하는 말이 같았다. 나의 질문에 목사님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 외에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에 비해 불교는 인생을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한 달 만에 교회 나가기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불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불교 동아리에서 부산 인근 산사로 2박 3일 수련회를 갔다. 1080배를 하고 발우공양을 배우는 일정이었다. 처음 해보는 절이라 108배만으로도 온몸이 힘들었다. 마지막 날 밤에는 108배를 세 번, 총 324배를 해야 했는데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그렇게 1080배를 마친 뒤 우리는 산꼭대기로 올라가 밤이 새도록 춤추며 놀았다. 그리고 새벽 3시, 예불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법당에 모였다. 조용하고도 거룩한 그 순간,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중학교 2학년 가을소풍 때 송정 근처 산에 올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상에 서자 눈앞에 끝없는 바다가 펼쳐졌다. 항구도, 배도 없이 오직 바다만 있었다. 그 장면에 압도되어 저녁 무렵 전체 학생이 집합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바다만 바라보았던 적이 있다. 새벽 예불에서 느낀 전율은 바로 그때와 같았다. 그리고 나는 불교의 적극적인 신자가 되었다.
격동의 시간을 지나 불교를 배우고 살아내다
1988년, 동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했다. 진리를 탐구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를 품고 상경했지만, 공부보다 ‘민주주의’에 더 마음이 쏠렸다. 결국 1991년 수배자가 되어 양산 신흥사에 들어가 1년을 머물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머리로만 배우던 불교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아침·점심·저녁 예불에 빠지지 않았고, 스님이 계시지 않을 때는 혼자 예불 의식을 모시기도 했다. 거의 매일 1080배를 하며 지냈다. 그렇게 1년 동안 행자 같은 생활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1993년 여름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1998년 여름 대학을 졸업했다. 잠시 직장생활을 했지만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이후 서울 가회동 대승사에서 사무장을 맡고, 동시에 큰수레 출판사 편집장을 겸하며 숙식을 해결했다. 다시 절에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사무장과 편집장이라는 직함은 제법 거창했지만, 사실 내 밑에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교 일을 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었다.
불교동아리를 다시 세워 대학 현장에서 불교 전하다
2000년에는 동국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 입학했다. 신문지국에서 숙식하며 새벽마다 신문을 돌리고 학교에 갔다. 다행히 2학기부터 불교대학원 조교를 맡게 되면서 학교 근처 고시원에 방을 얻어 생활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석사를 마친 뒤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했고, 자연스럽게 전공은 한국불교사가 되었다.
2010년 박사학위를 받고 동국대 불교학술원에서 근무하다가, 2014년 9월 국립순천대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순천대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불교 동아리를 다시 세우는 일이었다.
불자교수회 교수님들의 도움을 받아 2015년 불교동아리 ‘연(緣)’을 재창립했다. 처음에는 회원이 2~3명뿐이었다. 매주 목요일 점심시간에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활동의 전부였다.
조금씩 회원이 늘어나 감당이 어려워질 즈음, 순천시 사암연합회 스님들께서 십시일반 후원금을 보내주셨다. 2018년부터는 해마다 10여 명의 학생을 선발해 해외 성지순례를 가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 일본, 중국, 대만의 사찰을 순례했다.
이제는 불교동아리에 가입하면 의미 있고 유익한 활동이 많다는 소문이 퍼져 지원자가 크게 늘었다. 지금은 면접을 통해 30여 명을 선발할 정도가 되었다. 물론 매년 초가 되면 지도 법사 스님과 나는 해외 성지순례 경비를 마련할 방법부터 고민하게 된다.
기도에서 깨달음으로 나가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하면 불교를 만난 지 벌써 40년이 되었다. 30대에 한국불교사를 전공하기 시작했고, 40대 중반에 교수가 되었다. 이후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불교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일이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나는 기독교, 유교, 도교와 비교하며 불교가 결코 어려운 종교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기독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아 천당에서 영생하고자 하는 종교이고, 유교는 훌륭한 지도자를 길러 현실 속 이상사회를 구현하려는 가르침이다. 반면 불교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됨으로써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종교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불교란 매 순간 자기 성찰을 통해 작은 깨달음을 이어가고, 마침내 대오각성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한다.
한국불교사를 전공하는 교수로서 나는 종교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불교가 가장 보편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고 믿기에,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그 장점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평온한 마음으로 학생들에게 불교와 불교사를 전하고 싶다.
이종수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 등을 역임하고, 현재는 국립순천대 사학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흥국사』, 『논쟁으로 보는 조선시대 불교사상사』, 역서로 『운봉선사심성론』, 『월봉집』 등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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