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이 말하는 진리

 마음을 찾아 떠나는 명상 여행



“어떤 것이 과연 진정으로 지혜로운 이의 마음입니까?”

제자가 묻자 스승이 대답했다.

“길가에 널린 벽돌과 기와, 자갈 같은 것들이다.”

“그들은 생각을 못하지 않습니까?”

스승이 그렇다고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제자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어찌 현자(賢者)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 하십니까?”

스승이 길섶에 버려진 기왓장과 벽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들은 늘 진리를 말하고 있지만 네가 스스로 듣지 못할 뿐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가르침을 주지 않는 것이 없다. 산의 나무와 풀, 들의 꽃, 강가의 조약돌 하나하나, 모든 것이 나름대로 존재 이유와 가치를 지니고 삶의 지혜를 일깨워 주고 있다. 마음에 그들의 존재를 담는 순간, 그 의미가 함께 들어온다. 그를 통해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지혜와 여유가 생긴다.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삼존불에는 석공들의 미소가 배어 있다. 석공들은 바위와 마음을 나누며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그리고 그 위대한 유산은 우리에게 다시 자신을 살피는 지혜를 전한다.

모든 존재와 소통하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마음가짐이 명상 여행의 시작이다.

아직도 업고 있느냐

물살이 거센 개울을 건너던 스승과 제자가 개울을 건너지 못해 쩔쩔매는 젊은 여인을 만났다. 스승은 망설이지 않고 등을 들이대서 여인을 업어 개울 건너에 내려 준 다음, 길을 재촉했다.

한참 후,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수행자로서 어찌 잘 모르는 여인의 몸에 손을 대실 수 있습니까?”

스승은 제자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더니 대답했다.

“나는 여인을 내려놓은 후엔, 그 여인을 업었다는 생각마저도 내려놓았는데, 너는 아직도 그 여인을 업고 있구나.”

모든 공동체는 개인과 공공이 함께 추구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름대로 지켜야 하는 규율이 있다. 불교와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 등 모든 종교도 계율을 정해 지켜나간다. 그러나 계율을 지키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는 순간, 나를 얽어매는 제약으로 작용한다. 마음을 닦는 수행은 깨달음을 이루고 깨달음을 실천함으로써 고통받는 생명을 구하는 것에 참된 목적이 있다. 위대한 수행자로 일컬어지는 경허 선사는 대중의 오해를 감내하면서까지 병에 걸린 여인과 한방에서 지내며 돌보았다.

사회적 인습이나 남들의 시선 때문에 지금 내 발길이 무거울 때가 있는가? 스스로 바른길이라고 생각한다면 주저 없이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겨도 된다.

 

* 『명상여행 마음』 (김충현 글, 고성원 그림, 인북스 刊, 2021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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