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백운경한이 전한 선의 한마디

 다시 읽는 선어록 / 백운어록



봄의 자취

법좌에 올라앉아 말했다.

“불성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그때마다의 시절에 나타난 인연을 관찰해야 한다.¹⁾ 시절이 무르익으면 그 이치는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²⁾ 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사계절은 운행되고, 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만물은 발생한다. 또한 마치 봄이 모든 나라에서 시작되면 곳곳이 어느 곳이나 한결같이 봄기운이지만 봄은 어떤 자취도 남기지 않는 것과 같고, 달이 포구에 떨어지면 어느 물결에나 동시에 나타나지만 달은 나누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³⁾ 앞에서 ‘봄은 어떤 자취도 남기지 않는다.’라고 한 말을 통하여 그 본체를 알 수 있고, ‘달은 나누어지지 않는다.’라고 한 말을 통해서는 그 작용을 알 수 있다. 만일 아직도 모르겠다면 내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⁴⁾ 거듭 그대들에게 들어주겠다. 춘삼월, 버드나무 늘어선 연못과 꽃 핀 언덕에 따사로운 햇빛 비추고 온화한 바람 부는데, 봄은 어디에 있으며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도리는 아주 분명히 드러나 있다.”5⁾

1) 불성은 현상의 저편에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기에 드러나 있는 구체적인 대상들 속에 있다는 『대반열반경』의 설에 기초한 말이다. 곧 ‘시절형색(時節形色)을 관찰해야 한다’라고 한 말에 근거한다. “우유 중에 수·락(酥酪)이 있는 것과 같이 중생과 불성의 관계 또한 이와 같다. 불성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시절의 형색을 관찰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어서 진실로 허망하지 않다.’라고 설한다.”(『大般涅槃經』 권26 大12 p.777a3. 乳中有酪, 衆生佛性, 亦復如이. 欲見佛성, 應當觀察時節形色. 是故, 我說一切衆生悉有佛性, 實不虛妄.) 선종에서 상당법문 등을 행할 때 건추(犍椎)를 울린 다음 “제일의(근본적인 뜻)를 관찰하시오”라고 선언하는 의식도 여기서 유래한다. 이것을 백추(白椎)라 하며 법문을 마치면서 행하는 의식은 결추(結椎)라 한다. 『백장청규』에서 하나의 의식으로 규정되기 시작했다. “모든 산문의 상수(上首) 중에서 백추의 소임을 맡은 스님이 나와 건추를 한 번 울리고 ‘법석에 앉은 대중들이여! 마땅히 제일의를 관찰하시오.’라고 말한다. …… 설법을 마치면 백추를 담당하는 스님이 다시 건추를 한 번 울리고 ‘법왕의 법을 자세히 관찰하시오! 법왕의 법은 이와 같습니다.’라고 말한다.”(『百丈淸規』 권3 「開堂祝壽條」 大48 p.1126a19. 諸山上首, 出白椎, 鳴椎一下云<法筵龍象衆, 當觀第一義.> …… 結座, 白椎人, 復鳴椎一下, 白云<諦觀法왕法, 法王法如是.>)

2) 이상의 구절은 조사선의 상용구로서 『圜悟語錄』 권8 大47 p.749b5, 『大慧語錄』 권6 大47 p.835c25, 『續傳燈錄』 권31 「鳳棲慧觀傳」 大51 p.684b22, 『嘉泰普燈錄』 권15 「圓通秀章」 卍137 p.227b17 등에 나오며 대체로 법문을 시작하는 도입부에 나온다.

3) 이 부분은 『禪林僧寶傳』 권2 「雲門文偃傳」 卍137 p.451a12에 “如月臨衆水, 波波頓見, 而月不分. 如春行萬國, 處處同至, 而春無跡. 蓋 그 妙處, 不可得而名狀.”이라는 구절을 따르고 있다. 문장의 앞뒤 순서가 다를 뿐 내용은 거의 같다. 이것은 저자 혜홍(惠洪)이 운문문언(雲門文偃)을 찬미한 것이다.

4) 불석미모(不惜眉毛). 눈썹을 아끼지 않는다는 말. 불법을 잘못 이해하여 말하면 눈썹과 수염이 모두 떨어진다는 설에 따른다. 잘못 말하거나 보잘것없는 견해를 담은 한마디일지라도 피력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또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혹은 부끄러움을 무릅쓴다는 말로서 결정적인 말을 할 때 겸손하게 이르는 상용구이다.

5) 『從容錄』 54則 「頌評唱」 大48 p.262a12에 나오는 구절.

 

백운경한(白雲景閑 1299~1375)
백운의 선법은 꾸밈없고 자연스럽다. 그는 어느 종파나 조사의 선법을 강조하지도 않았고 그때그때마다 종지에 부합하는 내용을 빌려와 활용하면서도 자신의 견해를 무리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당시 유행하던 간화선의 경우 몇몇 구절의 화두가 등장할 뿐 화두 참구의 방법을 애써 강조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백운은 원나라에 들어가 견문을 넓힌 이래로 꾸준히 선사상의 정보를 비축함으로써 당대 조사선의 선법을 충실하게 전한 것으로 보인다.

 

* 이 글은 『정선선어록』 (역주 김영욱, 엮은 곳 대한불교조계종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 2009년)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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